시간이 조각한 수석들 바라보며 탄성...조선시대부터 수십년전까지 교과서 한자리 유럽 각국 화려한 자기들 시선 사로잡아...우리의 삶과 함께한 옹기는 정감더해
과거와 현재·동양과 서양을 만나다
부천시립박물관 외관이 둥글다. 옹성처럼 생긴 둥근 벽면에 옹기관, 교육관, 유럽자기관, 수석관이라 새겨져 있다. 옹기와 교육자료와 유럽자기, 그리고 수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면서 교육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성주산에 야생 복숭아나무가 자랐다고 하는데, 197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부천의 ‘소사복숭아’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복숭아의 전통은 매년 5월에 열리는 ‘복사꽃 축제’로 연결된다. 급성장한 공업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부천시는 민선 시장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첨단산업과 역사문화를 융합한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어느새 부천은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만화축제’를 여는 품격 높은 문화도시다. 부천시박물관(관장 김대중)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옹기와 교육, 그리고 유럽 자기와 수석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특화한 박물관이다.
■ 부천, 나눔의 정신이 빛나는 도시
“부천은 ‘논개’라는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 선생의 고향입니다. 변영로 문학관을 곧 개관할 것인데, ‘수주’라는 선생의 호는 고려 시대에 부천을 부르던 이름이지요” 김대중 관장은 역사 전공자답게 부천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부천은 고대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우휴모탁국 땅이었지요. 이후 고구려가 차지하면서 주부토군으로 불렀고, 신라가 차지했을 때는 장제군이라 했습니다. 수주라 불린 것은 고려 시대부터입니다. 고려 문종 때 부평으로 불리게 되는데, 부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부터죠.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했으니 내년이면 시 승격 50년이 됩니다. 부천은 2017년 동아시아 최초로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자산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부천시립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만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옹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옹기관과 통합관이 있다. 통합관은 유럽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유럽자기관, 19세기 서당교육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교육변천사를 보여주는 교육관, 그리고 수천 년의 세월이 빚은 수석관이 모여 있다. “통합관은 세 분의 기증품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입니다. 교육자료를 기증한 민경남 선생, 유럽 도자를 기증한 복전영자 선생, 평생 수집한 수석을 기증한 정철환 선생이 부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인 주인공입니다”
■ 자연이 빚어낸 美 ‘수석실’
수석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일까. 전시실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석은 한자로 목숨 ‘수’(壽)를 쓰는데,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고 수석을 바라보니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내는 듯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과 소치 허련의 괴석도를 첨단기술로 구현한 영상이 흥미롭다. 그림 속 괴석과 인물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통해 조선시대의 수석문화를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섬을 닮은 ‘도형산수경석’을 바라보면 관람객이 마치 바다에 있는 듯하다. 수석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수석을 찾아내 말을 걸고,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폭포수가 콸콸 흘러내리고, 글을 읽는 선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보름달 위로 매화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 자료로 살펴보는 한국 교육의 역사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몽당 한항길(1897~1979) 선생과 소명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신성우(1893~1878) 신부는 부천에 교육의 터전을 가꾼 주역이다. 조선시대 아이들의 교과서였던 ‘동몽선습’ 대한제국 때 펴낸 ‘초등소학’, ‘조선어독본’ 등 진귀한 책과 신문, 자료들이 가득하다.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노년의 관람객에게 반가운 공간도 있다. 낡은 나무책상과 걸상, 빛바랜 태극기와 하얀 분필이 놓인 칠판, 교실 한가운데 놓인 난로 위에 도시락이 올려져 있다. 겨울날 초등학교 교실의 정겨운 풍경이다. 그 옆에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이 그려진 놀이터도 있다. 50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어떤 교복을 입었을까. 교육박물관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걸려 있고, 그 앞에 ‘학교종’이라는 악보가 펼쳐져 있다. 1961년에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 ‘사회생활 3-1’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표지에 스케치북을 든 남녀 어린이 뒤로 분홍빛 복사꽃이 핀 과수원과 멀리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보인다. 부천 소사의 명물이 봉숭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부천에 산업단지가 많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역사 자료다. 전시실에 마련된 옛날 학용품을 판매하는 문방구 속을 들여다본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 현재와 과거의 교실 풍경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부모들도 즐겁겠다.
■ 자기를 통해 엿보는 유럽의 귀족문화
자기는 본래 중국과 조선에서만 제작할 수 있는 고급기술이었다. 이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자기산업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한다. 유럽에서 중국식 백색자기를 최초로 개발한 독일의 마이센, 금채 장식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프랑스의 세브르, 본차이나를 개발해 자기역사에 획을 그은 영국의 로열 우스터, 덜튼,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등 각국의 특징이 담긴 자기와 유명 크리스털을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18세기부터 근대까지 유럽 각국의 화려했던 자기 안에 담긴 상징적인 문양들, 라퐁텐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등 유명 동화와 이야기가 표현된 유물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유물을 부천에 기증한 복전영자 관장과 유물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으면 유럽자기실은 더욱 흥미로운 공간이 된다.
세상에 여섯 점만 있다는 새도 만난다. 독일의 자기회사 마이센에서 만든 6마리의 새 중에서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나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자기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유럽자기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마련이다.
■ 부천의 역사와 만나는 옹기관
옹기관은 조선 말부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에 숨어 살면서 항아리 질그릇, 질화로, 시루 등을 만들던 마을인 ‘점말(店村)’에 터를 두고 있다. 부천향토역사관에서 부천의 역사를 먼저 살펴야 옹기가 더욱 잘 보인다. 옹기 가마터가 있던 여월동 점말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이으며 신앙을 지킨 곳으로 1980년대까지 옹기를 굽던 터전이다.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옹기의 역사, 옹기제작 과정 그리고 질그릇, 오지그릇 등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만나볼 수 있다. 옹기에 담긴 이야기도 풍부하다. 표면에 십자가를 그린 옹기가 눈길을 끈다. 천주교 신자임을 알린 표식이다. 보통 뚜껑 안에 표시했는데 대담하게도 바깥에 그려 넣은 장인의 용기가 놀랍다. 가택신을 모시는 데 사용한 옹기도 눈길을 끈다. 옹기에 하얀 버선이 그려져 있다. 장을 담글 때 해로운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흥미로운 유물이다.
■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소설 ‘대지’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 여사를 기념하는 부천펄벅기념관과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국궁을 소재로 한 부천활박물관도 부천시박물관 소속이다. 공간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세 곳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부천활박물관과 펄벅기념관도 책임지고 있는 김대중 관장의 발언에서 부천시박물관의 밝은 전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직원들은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는 박물관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 2023년은 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알리는 역사박물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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