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6. 파주 ‘한길책박물관’

책은 종합예술품이라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펴낸 아름다운 책과 마주하면 이런 생각에 절로 동의하게 된다. 책의 매력이 고흐의 그림이나 로댕의 조각 작품에 못지않음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한길책박물관(관장 김언호·박관순)은 책에 대한 통념을 바꾸게 하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문·예술학 출판을 선도해온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책의 문화, 책의 미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한 한길책박물관은 ‘북하우스’ 안에 있다. 밖에서 보면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건물은 건축가 김준성씨가 설계한 것으로 2008년 ‘제19회 김수근 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란다. 한길사의 책들을 진열해놓은 책방 ‘북하우스’와 카페가 있다. 계단 없이 박물관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완만한 경사길 벽면에 책들이 가득하다. ■ 책과 책방들의 아름다운 풍경 현재 지하 1층 전시관에는 김언호 대표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돌며 찍은 사진전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가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면서 책은 독립된 예술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800년 된 고딕성당에 들어선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서점, 폐쇄된 기차역을 서점으로 바꿔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안위크의 바트 북스, 24시간 불 밝히는 베이징의 싼롄타오펀서점은 규모나 역사나 운영 방식에서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1902년 개점 이후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도쿄의 기타자와서점, 부산의 자존심 같은 영광도서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책을 만들면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됐죠. 고서는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아름답고 위대한 흔적입니다. 아름다운 책에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오래된 책이나 판본들을 수집했지요. 예술적 가치를 지닌 책,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문화유산인 책을 통해 책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을 이웃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김언호 관장은 양서를 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얻고자 유럽의 책방을 순례하면서 운명처럼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위대한 출판인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와 만난다. 모리스가 1891년에 설립한 켐스콧 공방에서 펴낸 아름다운 책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그의 예술혼에 빠져든다. 결국 거금을 들여 켐스콧 공방에서 펴낸 셰익스피어의 시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시인 제프리 초서의 ‘초서 작품집’ 등 53종 66권 전질을 구입한다. 출판인 김언호 관장에게 모리스는 영원한 스승이다. “아름다운 책을 출판하려고 모리스가 기울인 정성은 놀랍습니다. 여러 가지 활자체를 직접 디자인하고 종이와 잉크를 개발하기도 했지요” 모리스의 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꼽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시된 모리스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뭇잎과 꽃봉오리들이 반복 배치된 문양을 바탕으로 모리스가 디자인한 머리글 서체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삽화가 어우러진 멋과 품격은 우리 시대에서 맛보기 어려운 황홀한 체험이다. ■ 책의 품격 높이고 아름다움 살린 모리스와 도레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친숙한 그림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독특한 삽화는 바로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구스타브 도레(1832~1883)의 판화 작품이다. 도레의 덕분에 ‘돈키호테’는 더욱 유명해졌다. ‘돈키호테’를 비롯해 ‘신곡’과 ‘장화신은 고양이’, ‘라퐁텐우화집’ 등의 삽화도 감상할 수 있다. 삽화 228점을 넣어 프랑스와 영국에서 엄청나게 팔린 ‘도레의 성서’도 있다. 왜 그림 성경이 등장했을까? 중세 유럽에는 9할이 문맹자였다. 스테인드글라스도 문맹자를 위한 그림 성경이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유명하다. 1797년에 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삽화가 들어 있는 성경책도 만날 수 있다. 영국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판화, 영국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의 ‘살로메’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양의 고서들이 즐비한 박물관에서 근대 우리나라 유명 작가들의 육필원고를 만나는 것도 뜻밖의 즐거움이다. 1층과 지하 1층 기획전시에 이어 2층과 3층 상설전시실 순서로 둘러보면 된다. 2층에 마련된 영상물을 보면 박물관에 전시된 책과 관련된 정보를 종합적으로 얻을 수 있으니 빠트리지 말고 들러보길 권한다. 16~19세기 유럽의 아름다운 고서들, 18~19세기 출판인쇄술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판화와 시대정신 가득한 신문·잡지 등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출판물이다. 시대와 지역별로 전시해놓은 ‘아라비안나이트’ 판본의 섬세한 삽화를 살피다보면 미술관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잡지 ‘Yellow Book’과 ‘Saboy’, 26세로 요절한 삽화가 비어즐리의 책들, 20권으로 구성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살바도르 달리나 후안 미로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삽화를 그린 성경도 빼 놓을 수 없는 전시품이다. ■ 책의 향기 음미하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 1976년에 창립한 한길사는 2022년 현재까지 3천50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중에는 40만부가 팔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해 ‘함석헌전집’,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 같은 베스트셀러도 여럿 있다. 김 관장은 출판의 정신과 뿌리를 씨알 함석헌 선생에게서 찾는다. 북하우스 1층 한복판에는 함석헌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언호 관장은 파주출판문화단지와 3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을 설득해 문화마을 ‘헤이리’를 만들어낸 주역이다. 파주출판도시 건설이 진행되던 1994년 봄, 김언호 관장은 볼로냐 아동도서전을 참관하러 가는 길에 영국 웨일스 지방 폐허가 된 탄광촌에 들어선 고서마을 ‘헤이온와이’를 찾아간다. 이때의 인연은 헤이리 예술인마을로 연결된다. 김 관장은 헤이리의 환경을 고려해 서점, 갤러리, 카페, 박물관을 두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예술마을 헤이리에 한길책박물관이 탄생한 내력이다. 책박물관을 둘러보며 교육·과학·기술·예술 등 모든 것이 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김 관장의 주장처럼 “책이야 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영화·뮤지컬·애니메이션 등 어떤 콘텐츠든 책이 그 가운데에 있다는 주장을 감히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 책의 소멸을 예측했으나 종이책은 여전히 살아 있다. 김 관장의 주장대로 지식과 정보의 양보다 질이 높아져야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든지 스마트폰을 보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은 현재 ‘어린왕자, 나의 별을 찾아서’를 진행하고 있다. 11월30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생텍쥐페리가 1943년에 ‘어린왕자’를 펴낸 것을 기념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된 다양한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서점기행’을 펴낸 바 있는 김언호 대표의 사진전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는 10월2일까지 이어진다.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시민들의 품격, 장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도내의 여러 도시에서 이 전시가 이어져 다시 책을 가까이하는 문화, 아이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운동이 일어나길 빌어본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5. 파주 ‘세계인형박물관’

지구 마을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부산일보 기자 출신의 유만찬, 김진경 두 사람이 인터넷 신문을 시작한다.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는데, 주요 상품이 세계의 전통인형이었다. 두 사람의 관심과 흥미는 자연스레 전통인형으로 옮아갔다. 인터넷 쇼핑몰의 특성상 두 사람은 인형에 대해 공부하고 이름부터 의상까지 인형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소개한다. 전문 실력을 갖추게 된 두 사람은 2013년 전통인형들 속에 담긴 풍부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이란 책을 펴낸다. 그리고 2015년 5월, 파주 예술인마을 헤이리에 세계인형박물관(관장 유만찬)을 개관한다. “인형은 그 나라 사람들의 복식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전통 옷에는 많은 사실이 담겨 있지요. 오랜 세월과 풍토가 만들어낸 문화와 역사, 어떤 사건이 인형에 담겨 있습니다” 부관장이기도 한 김진경 학예사의 말이다. 짧은 시간에 80개국의 1천개나 되는 인형들과 모두 만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장 애착이 가고 재미난 이야기가 담긴 인형을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자 두 사람이 나섰다. ■ 인형을 통해 세계인을 만난다 “각국의 인형들을 통해 지구 마을이웃들, 그리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민속인형은 세계 각 나라 생활풍습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 학예사가 노랑머리 인형의 치마를 뒤집자 갈색머리 흑인이 튀어나온다. 놀라운 반전이다. “엘사와 안나에요. 미국에서 유행했던 인형이지요. 미국에서 한때 인종차별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해요” 코너에 놓여 있는 독특한 생김새의 모자들은 관람객들이 써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관람객들이 직접 조종해 볼 수 있는 인형 ‘마리오네트’도 흥미롭다. “르네상스 시대에 마리오네트는 이탈리아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공연에 사용한 인형인데, 마리오네트라는 말도 성모 마리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교회 문을 벗어나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간 마리오네트는 17세기 체코에서 꽃을 피웁니다. 독일 나치가 체코를 점령했던 시절 체코의 인형술사들은 상징과 은유로 나치를 풍자하는 각본을 써서 공연을 펼치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지요. 이처럼 마리오네트는 억압에 저항하며 자국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는 체코의 구심점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작은 인형들이 벽에 붙어 있다. “과테말라의 ‘걱정 인형’이에요. 걱정 인형은 주부들이 남은 천이 아까워 2~3㎝ 길이의 나뭇가지에 천과 실을 감아 만든 것입니다. 부모는 잠 못 드는 아이에게 걱정 인형을 안겨주며 이렇게 말한다고 해요. ‘걱정은 인형한테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렴. 그러면 인형이 네 걱정을 모두 가지고 사라진단다’ 그리고 아이가 잘 때 인형을 감추는데,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인형이 없어진 것을 보고 걱정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요” 필리핀의 ‘바롱 타갈로그’ 인형은 필리핀 남성의 대표적인 정장을 재현했다. 정장인데 속이 훤히 비치는 천을 사용한 까닭이 슬프다. 식민지시절 옷 속에 무기를 숨기지 못하도록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기억은 이제 필리핀의 자부심과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목에 식량 자루를 걸고, 등에 담요를 메고 손엔 양철통과 지팡이를 쥐고 있는 할아버지 인형이 있다. 해진 모자에 주렁주렁 4개나 달린 코르크가 호기심을 부른다. “호주의 ‘스웨그맨’ 인형입니다. 호주에 실제 이런 행색을 한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있었지요. 1850년대 ‘골드러시’ 여파로 호주에도 유럽 이주민들이 몰려듭니다. 스웨그맨은 당시 호주에서 양털 깎는 일자리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한 이들을 일컫지요. 코르크 마개는 얼굴에 들러붙는 파리들을 쫓아내는 용도였죠. 인형의 배경을 조사하면 세계사와 인류학이 나와요” ■ 인형에 깃든 흥미로운 문화와 슬픈 역사 크고 화려한 타조 깃털로 만든 머리장식을 한 벨기에 인형 ‘질’은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뱅슈 카니발’의 주역을 형상화한 인형이다. 이 마을 축제를 보기 위해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만 30만이나 된다고 한다. 박물관 중앙을 차지한 인형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다. “사실 마트로시카는 일본의 칠복신 인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러시아 장인들의 다채로운 시도를 거치면서 마트료시카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하게 됩니다” 4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인형이 지금처럼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진화한 것은 200~300년쯤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은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토우’이다.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토우는 악기를 타는 모양, 노래하는 모양, 지게를 진 모양, 노인의 얼굴, 부부상, 남자상, 말탄 모양 등 형태가 다양하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유리로 만든 동자상도 있다. 해마다 음력 3월이 되면 대여섯 살의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풀각시인형도 있다. ‘꼭두각시놀음’과 ‘만석중놀음’에 사용되는 인형은 움직이는 인형이다. 인형이 없는 나라도 있을까. 이슬람 문화권의 몇몇 나라는 인형이 없다. 사람이나 동물 모습의 형상 만드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문화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권에도 서양의 상징인 바비인형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폴라’는 바비인형의 자세와 노출이 이슬람 미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정 차도르를 두르고 있다. 펑퍼짐한 치마를 입은 뚱보 인형도 있다. 남아메리카 수리남의 전통 의상 ‘코토미시’를 입은 인형은 슬픈 역사를 알려준다. 17세기 말,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에서 커피·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여성 노예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자 수리남의 여성들은 치마 안에 원통형 쿠션으로 몸을 감싸고 속치마와 겉옷을 여러 겹 껴입어 뚱뚱하게 위장했다. 코토미시에는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새겨져있다. ■ 인형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노래하다 세계인형박물관은 현재 ‘2022년 길 위의 인문학-위드 우크라이나!’를 진행하고 있다. ‘위드 우크라이나!’을 여는 까닭을 이렇게 전한다. “…낯선 존재를 알아가기,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아파하기…, 이런 작은 씨앗들이 사람을 무기력함으로부터 치유하고 평화의 열매를 맺는 힘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위드 우크라이나!’가 그런 작은 씨앗들 중 하나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사와 다른 전쟁의 역사를 알아보고 ‘나부터 평화’를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아울러 전통문화 소품인 비녹(화관), 모탄카(헝겊인형), 피잔키(부활절 달걀)를 만들어 보며 우크라이나 문화를 배우고 평화를 기원하는 시간도 가진다. 10월30일까지 ‘2022 경기도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육성사업-토닥토닥 인형극’도 진행한다. 박물관의 체험교육은 인기가 많다. 예컨대 2021년에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인형으로 통통’은 참가자 96%가 즐거웠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집에 온 빛의 마법(2021)’은 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그림자 인형극에 대해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전래동화 ‘해님 달님’을 그림자인형극으로 만들었다. 특별기획전 ‘인형에 담긴 세계 의상전(2019)’도 주목을 받은 전시였다. 세계인형박물관은 2017년부터 ‘바부슈카-인형 짓는 어르신’이란 이름의 동아리를 통해 지역 단체와 연계해 어린이들과 어울리며 인형을 활용한 사회 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0년에는 전면 비대면 수업 ‘함께 해요, 바부슈카!’를 진행했다. 온라인으로 인형과 가방을 만들고 인형극전까지 열었던 특별한 기획이었다. 인형을 매개로 어르신과 어린이를 연결하고 지역 이웃과 연대하여 세계의 평화를 노래하는 세계인형박물관의 당당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경기의 소금강으로 알려진 소요산 기슭에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특별한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21개국 군인들의 활약과 희생을 기념하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다. 2002년 5월20일에 문을 열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연속 전국공립박물관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동두천시는 왜 소요산 자락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설립했을까? 동두천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성장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참화와 분단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박물관에 담겨 있다.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을 치료하던 야전병원도 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으로 연결된 도로의 이름도 “평화로”이다. 자유를 지킨 세계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 소요산 등산로 옆에 “자유수호평호박물관 소장 한국전쟁피난민 태극기 경기도 등록문화재 1호 선정”이라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있다. 녹음이 무성한 가로수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대리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장중한 건물이 나타난다. 반달 모양의 본관 주변으로 6.25 때 우리를 도운 유엔 21개 참전국의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계단을 오르다 만난 ‘우리의 소원’ 노래비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한국인의 시대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박물관 출입구에 가마니를 실은 달구지가 놓여 있다. ‘6.25전쟁 당시 수송수단’이란 설명문이 없으면 어린이나 청년들은 달구지를 출입구에 전시한 까닭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빈약한 자원과 기반시설까지 모조리 파괴했다. 그런데 불과 70여 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전쟁 유물들은 ‘코리아’란 나라 이름조차 몰랐던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 목숨 덕분에 이룩한 것이란 사실을 말없이 일깨워준다. 유엔 21개국의 국기와 참전일자, 병력, 역할을 알려주는 세계지도를 바라본다. 이름이 생소한 나라도 있다! 1층 로비에서 흑백사진으로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과 마주한다. 전쟁의 발발, 피난민의 행렬,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맺어진 휴전협정까지 한국전쟁의 순간을 기록한 흑백사진은 우리민족에게 드리운 아픔과 상처를 가감 없이 전달해준다. 비록 사진이지만, 부모를 잃고 굶주린 전쟁고아의 주름살 가득한 이마와 퀭한 눈빛을 오랫동안 마주 보기란 힘들다. 터키군 장교복과 탄띠와 수통, 의료지원병을 파병한 노르웨이 의료진의 활동상을 담은 누렇게 변색된 사진첩도 전쟁의 참상과 유엔군의 활약을 증언해준다. 21개국 군인들 ‘풍전등화’ 대한민국을 찾다 이광욱 학예사는 동두천시에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세운 까닭을 다시 들려준다. “아시다시피 전후 세대들은 6.25전쟁의 참상과 아픔에 무관심합니다. 역사적 교훈이 될 한국전쟁과 관련한 자료들이 많지도 않는데 이 소중한 자료들이 점점 소실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동두천시민들이 6.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지요.” 박물관은 4만㎡의 부지에 3천747㎡의 야외전시장과 지상 4층 3천331㎡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로비에 기획전시실과 도서자료실이 있다. 성인 관람객들도 전투기를 조정하는 비행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해방부터 6.25전쟁 후까지 시대적 사실을 12개의 도자기로 표현한 작품 앞에 선다.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국군장병의 힘찬 몸짓과 세계 평화를 표현한 부조도 눈길을 끈다. 철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도운 21개의 나라를 소개한 1층 전시실은 박물관이 가장 정성을 기울인 공간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이 지난 6월 27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미국의 해군과 공군에게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명령한다. 28일에는 일본 도쿄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내한하여 전선을 시찰하고 미 국방성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하고, 7월 7일에 유엔군 총사령관에 맥아더가 임명되고 한국에 파견된 16개 나라의 유엔군을 지휘하게 된다.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한다는 각서를 썼다. 21개 나라를 소개한 공간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형, 주요한 장비, 참전개요와 참전 규모, 주요 전투까지 참전국의 역할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과 자료를 만날 수 있다. 1945년 10월24일에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출범한 UN은 한국전쟁 때 빛을 발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콜럼비아,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남아공화국,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까지 16개국이다. 참전한 군인, 혹은 유가족들이 기증한 유품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5개 나라는 의료를 지원했다. 6.25 당시에 유엔군이 사용한 다양한 무기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특별하다. 나팔처럼 보이는 다양한 화염방사기도 처음 보는 유물들이다. 의술로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다 노르웨이적십자가 편성한 83명으로 구성된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동두천에서 7월 19일부터 천막으로 된 임시건물에서 진료 임무를 시작한다. 민간인을 위한 외래환자진료소도 운영하였다. 덴마크는 최신 의료시설과 의약품 그리고 탁원한 의료진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하였다. 스웨덴, 1947년 8월에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인도도 의료부대를 파견하여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부상자를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이탈리아는 참전국 중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이며, 가장 마지막에 파견한 국가이다. ‘이호왕기념관’은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의 외연을 넓혀주는 공간이다. 이호왕 박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의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이다. 1973년부터 고려의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과 WHO 유행성출혈열연구협력센터 소장,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동두천 송내동에 연구실을 두고 1976년 한국형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고, 1980년 서울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9년 제6회 서재필의학상을 수상했다. 야외 전시장은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군에서 사용하던 비행기및 탱크등 총15점의 대형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5인치 2연장 함포, 3인치 단연장 함포, 40밀리 2연장 함포, 105밀리 곡사포, T-33A 제트기, M48A2C 전차, 8인치 곡사포, M577 지휘용 장갑차, T33A항공기, 해병대가 사용한 LVT 수륙용 장갑차도 만날 수 있다. 특수무기보다도 더욱 특별한 것은 노르웨이군의 참전비다. 분단을 넘어 평화통일로… 진정한 자유 동족끼리 벌인 한국전쟁으로 입은 남북한의 인명 손실은 무려 520만에 이른다.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민간인의 사망과 부상, 1천만에 달하는 이산가족의 아픔도 빼 놓을 수 없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평생을 전쟁 속에서 보낸 본관과 같은 군인에게조차 이러한 비참함은 처음이어서 무수한 시체를 보았을 때 구토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심각한 것은 민족 내부의 불신과 증오심이다. 전쟁의 상처를 한국인만큼 깊게 간직한 민족이 달리 있을까? 자유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다.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노래할 수 있으리라.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3.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쓸쓸한 절터에 서니… 화려했던 ‘왕실사찰’이 보인다 양주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위치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 들어서면 아늑한 기운과 고고한 기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2012년 10월19일에 개관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는 전문박물관이다. 기단과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1964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회암사지에는 약 70여개의 건물터와 주변에는 사신으로 고려에 입국해 회암사를 중흥으로 이끌었던 인도 승려 지공(?~1363), 왕사(王師) 나옹(1320~1376)과 무학(1327~1405) 세 분 고승들의 기념물인 선각왕사비,무학대사탑,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석등, 사리탑 같은 보물 4점을 비롯해 유형문화재가 즐비하다. 회암사지의 문화재보호구역은 무려 32만3천117평방미터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회암사에 여러 차례 행차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회암사에 궁실을 짓고 주지로 주석하는 무학대사를 자주 만났다. 효령대군, 정희왕후 등 왕실 인사들이 후원하여 번영을 누리던 회암사도 열렬한 후원자이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력을 잃고 끝내 폐사되었다. 1997년부터 2019년까지 13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일반 사찰과는 달리 궁궐 건축의 요소와 13~14세기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던 청기와, 용두, 토수,잡상 같은 마루장식기와, 용과 봉황무늬 막새기와, 왕실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 등 수십만 점의 유물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 2012년 박물관 개관 전시특별전 <회암사, 그 위용을 드러내다>를 비롯해 해마다 회암사를 조명하는 특별전과 기획전을 꾸준하게 열었다. <마루장식기와, 건물의 위용과 품격을 담다>, <회암사지, 그 시간의 흐름>, <깨달음의 소리, 범자梵字 - 회암사지 범자문 막새기와를 이야기하다>, <춘풍문양, 봄바람 타고 온 옛 회암사의 문양 이야기>, <도자, 옛 회암사를 빛내는 美>, <큰 고을 양주>, 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대가람의 뒷간, 厠>, <산산散散 : 부서진 뒤 알게 된 것들>, 특별전시 <절집의 어떤 하루>,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등 주제를 통해 그간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12년 개관 때부터 근무했다는 김종임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본다. 한국불교사의 중요한 업적을 남긴 승려 지공, 나옹, 무학 세 분 고승의 초상 앞에서 듣는 회암사의 내력이 흥미롭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로 유명한 나옹선사는 금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고려에 입국한 지공의 권고에 따라 1376년에 회암사를 262칸으로 중창하고, 목은 이색에게 부탁하여 ‘천보산회암사수조기’를 납깁니다. 이 기록과 절터와 발굴된 유물을 통해 옛 회암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요”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은 무엇일까?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 앞에 선다. 부릅뜬 눈과 포효하듯 크게 벌린 입에서 기백이 느껴진다. “처마 끝에 돌출된 목재(사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식기와를 토수라고 해요. 사래에 끼울 수 있도록 내부가 비어있는 사각뿔 모양이죠. 이무기나 잉어의 모양의 조선 후기와 달리 회암사의 토수는 보시는 것처럼 승천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용의 모습 입니다. 용두는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장식기와인데, 내림마루 끝부분에 설치하거나 추녀마루에 잡상과 함께 설치합니다” 투구인지 종인지 구분하기 힘든 유물도 흥미롭다. “투구처럼 보이지만 풍경입니다. 회암사지에서 청동금탁 4점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위치와 명문을 통해 건물 추녀 끝에 매달렸던 것으로 추정하지요. 금탁 표면에 새겨진 149자의 글자를 통해 태조 3년(1394) 왕사 묘엄존자, 조선국왕, 왕비, 세자를 비롯하여 관료들이 후원하여 금탁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탁에는 갓 건국한 조선의 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전쟁이 영원히 그쳐서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마침내 같은 인연의 깨달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갑옷과 투구를 쓴 장수가 눈을 부릅뜬 인형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것은 잡상입니다. 건물의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위에 설치하는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속신으로 구성되지요. 그런데, 회암사지 잡상은 보시다시피 사뭇 달라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혼합된 반인반수형, 말이나 새 같은 동물 모습도 있지요” 왕실 사찰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 중에서 청기와를 빠트릴 수 없다. “청기와가 귀한 것은 청색을 내는 재료가 화약의 원료인 염초이기 때문이지요. 조달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궁궐이나 왕실 원찰의 일부 건물에만 사용했습니다” 사찰에는 왜 연꽃문양을 새긴 기와를 많이 썼을까? “연꽃은 탄생을 상징하며 환생과 재생을 의미합니다. 연꽃을 기와 문양으로 채택된 것은 물에서 피어나는 것이므로 화마(火魔)를 막는 벽사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 영상을 통해 왕실사찰 회암사의 위상 조명 말을 탄 무사들을 앞세우고 황룡기를 비롯해 다양한 깃발을 든 붉은 옷을 입은 군사들이 임금이 탄 가마를 에워싸고 늠름하게 행진하고 있다. 회암사를 찾은 태조 이성계의 행차장면 모형이다. 회암사 대가람 복원모형이 첨단기술로 살아난다. 아나운서와 기자를 등장시켜 각 건물의 기능과 역할 및 생활상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데, 설명에 따라 건물의 안팎까지 보여준다. 현재 2층 기획전시실에는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잠정목록 선정 기념하는 특별전 ‘양주 회암사지 세계유산을 꿈꾸다’가 열리고 있다. 9월12일까지 진행되는 기념전은 2022년 1월, 양주 회암사지가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할 수 있는 잠정목록에 선정되었음을 홍보하는 것이다. 1부는 ‘유네스코 유산’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고유적 단독유산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폐사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는 점을 부각했다. 2부는 ‘회암사의 세계유산적 가치’다. 회암사지는 14세기 동아시아 불교 선종의 수행 전통과 공간구성 체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고고유적이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건물터와 당대 고승과 관련된 부도 등 기념물이 있어 고려의 선종이 조선으로 이어진 약 200여 년간 불교 선종 문화의 전승과 발전상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3부는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다. 양주 회암사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지난 7년의 노력으로 마침내 잠정목록에 선정됐다. 본 등재까지 양주시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사항 등을 충실히 이행하며 회암사지의 보존 및 가치 활용과 세계유산을 향한 행보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그날을 기다리다 회암사지에는 입구의 당간 지주, 맷돌, 구름 문양이 새겨진 계단 등 곳곳에 석조유물이 즐비하다. 회암사지 맨 위에 자리한 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탑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려 말의 고승 선각왕사 혜근(惠勤)의 비도 빼 놓지 말고 봐야할 유물이다. 두 마리의 용이 용트림하면서 보주(寶珠)를 잡고 있는 역동적 형상의 이부를 살펴보자. 비문을 짓고 글자를 쓴 이색과 권중화는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무학대사탑과 쌍사자 석등, 지공선사부도와 석등, 나옹선사부도와 석등도 아름답다. 탑에 새겨진 용, 기린 등 뛰어난 조각과 치석수법도 주목된다. 박물관을 나서며 잠시 멈춰 서서 회암사지를 둘러싼 산자락을 굽어보는데 배웅하며 건넨 관계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회암사지에 한 번도 안 와 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해요.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란 뜻이죠.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조명을 설치해 야간에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올 가을에 회암사지로 놀러오세요”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2. 화성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1919년 4월15일 ‘대학살’… 100년 넘도록 사죄않는 일본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항일의 정신이 깃든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입구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앞을 응시하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1889~1970)의 동상과 마주한다.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의학자와 선교사로 일하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화성 제암리 학살 소식을 듣고 열차로 수원역까지, 수원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경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와서 비극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일제의 만행과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 100년 동안 흐르는 두렁바위의 눈물 병풍처럼 세워진 검은 대리석에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이 그림과 글로 새겨져 있다. 박사가 써서 세상에 알린 ‘대학살의 전말’을 읽어본다. “4월 15일 화요일 이른 오후, 일본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성인 남성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에게 전달할 말이 있으니 모두 교회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에 모인 23명 가량의 남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면서 명령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군인들은 교회를 둘러싸고 종이 창문 너머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명령의 진의를 알게 됐다. ...교회로 불려간 남편을 찾아 두 명의 부인이 군인들의 포위를 뚫고 교회로 가려했지만 모두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19세의 젊은 부인은 총검에 찔려 죽었고, 40대 여성은 총에 맞았다. ...그 후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것이 제암리에서 벌어진 피의 대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정부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의 방문한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학 교수로 활동하다 영구 귀국하여 보육원 후원을 비롯한 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1970년 4월12일에 영면한다. 한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한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는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일본 군인에게 학살된 선열의 유해는 가마니에 담겨 4km 떨어진 향남면 도이리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봉분도 없이 묻혔다. 40년이 지난 1982년 9월 21일부터 여드레 동안 사건의 목격자이자 유가족인 전동례 할머니와 최응식 할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해를 발굴한다. 9월 29일 제암교회가 기념관 뒤편에 제공한 묘역에 23인의 합장묘소를 마련하고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학살현장은 1984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99호’로 지정됐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3·1운동순국기념탑’은 1959년 4월 제암교회 터에 세워졌던 것을 정부의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에 의해 현재 자리로 옮겼다. 공원의 3·1운동순국기념탑은 향남면 3·1운동 순국기념관 건립위원회에서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을 수행하면서 원래 기념비가 있던 자리에 다시 규모를 크게 하여 1983년 4월 15일에 세운 것이다. ■ 화성의 불꽃, 한반도를 밝히다 “3·1운동은 비폭력 원칙을 세웠으나 화성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됩니다. 만세운동을 벌이던 주민들이 일제의 행정 말단기관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고 총칼로 주민을 위협하던 순사를 처단합니다.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한말 화성지역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충격을 받은 일제의 잔혹한 보복이 뒤따릅니다. 4월 15일,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군인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들어와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로 모아 문을 닫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다시 옆 마을 고주리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 6명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지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의 본질은 일제가 3·1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기념관 운영을 총괄하는 김태동 팀장의 설명을 들으니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특수한 사정이 이해됐다. 그러면 현재는 어떠할까? 기념관에서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섣불리 화해를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읻따, 그들이 있고 우리가 잇다 기념관 로비에서 만난 신인순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전시관을 둘러본다. 상설전시가 이루어지는 제1전시실 입구에서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란 글귀를 만난다. “4·15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죠? 1919년 화성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모습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치열했습니다.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불 지르고 만세 운동을 저지하려던 순사 2명을 처단했지요. 이 사진을 보세요. 스코필드 박사가 찍은 것입니다” 4월 15일 일본 군경의 제암리·고주리 학살한 현장의 처참한 광경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가족을 잃고 넋이 빠진 표정의 두 여인의 모습에서 나라를 되찾으려다 희생된 열사의 유가족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남편과 부모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졌다. 1953년에 작성한 ‘3.1운동 당시 일본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란 문서에 적힌 명단을 살펴보니 62세부터 17세까지의 희생자 중 안(安) 씨 성을 가진 이가 유난히 많다. 제암리는 집성촌이었던 모양이다. 체포되어 촬영된 화성지역의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1982년 유해발굴의 현장 사진 앞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궁금하다.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야할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된 지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103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벽에 ‘읻따’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눈치를 챈 신 해설사가 관람객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존재한다의 ‘있다’와 연결하다의 ‘잇다’의 발음 기호가 ‘읻따’라고 해요.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유족과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본 것입니다. 제암리·고주리의 아픈 역사가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는가. 여러 자료와 영상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이었지요” 기념관에는 마주한 전시물들도 사연이 깊다. 많은 것이 문서들이지만 그중에는 눈여겨 볼 것들이 여럿이다. 만장,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헌, 왕광연 선생, 홍면옥 선생의 출옥 기념사진, 희생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작성한 진정서, 3·1운동피살자명부, 아리타 판결문, 학살지에서 발굴된 유리병을 비롯한 출토유물 등 특별한 사연이 담긴 유물들이다. 주민 29명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 지른 일본군 장교 아리타의 무죄를 선언한 ‘아리타 판결문’은 후안무치한 일제의 민낯을 보여준다. ■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 2001년 화성시가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을 개관하면서 기념과 추모 사업에 탄력을 얻는다. 2016년에는 기념관 학예팀 신설하고, 이듬해에 제1종 전문 박물관 등록했다. 그동안 열었던 특별전과 기획전은 ‘학살, 끝나지 않은 역사’,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 ‘화성독립운동가’, 2021년 4월 개관 20주년 특별전 ‘읻따’,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소설에 담다’, ‘일제의 선전수단, 그림엽서’ 같은 주제들이다. 순국선열 스물아홉 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학살사건의 전모와 한국인의 평화의 의지를 국내외에 알려온 기념관은 2019년 7월부터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을 하면서 더욱 탄력을 얻게 된다. 교육을 담당할 전문 강사를 육성하여 지역의 학교로 찾아가는 사업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21년 11월에 교육기부 우수기관 인증을 획득한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자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한국인의 성지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1. 광주 ‘닻미술관’

자연 속 둥지 튼 ‘성찰과 치유’의 공간 광주 백마산 자락 진새골에 자리 잡은 닻미술관은 예술을 통한 창조성과 영성 회복을 꿈꾸며 2010년 10월에 개관했다. 닻미술관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면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전시를 모토로 매년 두세 차례의 사진, 회화 기획전을 벌여왔다. ㄷ자 구조로 되어있는 닻미술관(관장 주상연)은 지붕이 스페인풍인데 건물 가운데 작은 정원이 있다. 중정에 있는 팔각형의 연못이 앙증맞다. 닻미술관 옆에 있는 카페의 이름은 ‘돛’이다. 산속에서 닻과 돛이란 이름을 가진 공간과 마주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름날인데도 미술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미술관이 아늑한 산속에 터를 잡은 덕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오히려 관람객이 더 모여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왜 산속에 만들었을까? “우리 집의 가훈이 ‘홍익인간’이에요.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복지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이곳은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나무를 심었어요. 맏딸로서 집안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주 관장의 작품은 성곡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샌프란시스코 카발로 포인트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 <중력과 은총>과 <물 위를 걷다>을 펴낸 중견 작가이다. 2009년에 귀국한 주 관장은 2010년에 이곳에 닻미술관을 열고 2011년에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여 올해 개관 12주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배운 주 관장은 미술관을 열면서 수제 책 제작 공방 닻프레스도 열었다. 책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 없이 예술을 전달하기 좋은 매체라 생각한 것이다. 전시장 옆에 있는 카페 돛에 가면 닻프레스에서 출판한 아름다운 책들을 볼 수 있다. 주 관장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면 책을 만들고 작품 전시를 기획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벗어나서 생동감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푸른 산속에 닻을 내려 자연을 건져 올리는 미술관 지난 12년 동안 닻미술관에서 열었던 기획전시를 살펴본다. ‘빛으로 간 사진’ ‘숲, 숨’ ‘순간의 지속’ ‘종이 위의 예술’ ‘사진풍경전 : 바람과 볕이 드는 창’ ‘Our World’ ‘일상의 생각 별과 사람’ ‘무아 경’ ‘침묵의 시’ ‘섬’ ‘어둠’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물오르다, 물만나다, 물들다’ ‘공명의 소리’ ‘예술가의 정원’ ‘지금, 여기’ ‘변화의 여정’ ‘시·象’ ‘온도의 결’ ‘다른 감각들의 공간’ ‘철학자의 돌’ ‘린다 코너 사진전 REFLECTION’ ‘물질과 상상’ ‘집- 주명덕 사진전’ ‘경계선 위에서’ ‘틀 없는 틀’ ‘대지의 기억으로부터’ 등 주제만으로도 닻미술관이 추구하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미술관에서 기획한 주요 전시를 연간 간행물 <깃>에 충실하게 기록해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자랑이다. “깊게 뿌리박힌 중심이 되고자 출판사 이름을 ‘닻’으로 삼았고, 영감을 널리 퍼트리는 매체가 필요할 것 같아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깃>을 발행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지금까지 약 80여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지난 몇 년간 아트 북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스탠퍼드 스페셜 컬렉션이 스페셜 에디션을 소장했고, 뉴욕공립도서관에서는 닻프레스가 출간한 전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에서 열리는 북 페어에도 해마다 참가하고 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발행한 책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예컨대 김수영의 시 ‘풀’을 수록한 책은 표지를 넘기면 낱낱이 풀이된 종이가 ‘바람보다 먼저’ 눕거나 일어선다. ■ 도시와 도시, 작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마당 닻미술관은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가 만나는 공간이다. 단순히 전시장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살면서 서부와 동부의 작가들과 인연을 맺은 주 관장은 닻미술관을 통해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닻미술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신진 작가들이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에 집중하거나,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다. “사진예술과 출판의 꾸준한 국제교류를 통해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적, 종교, 성별, 학력에 관계없이 국내외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있습니다” 현재 닻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은 ‘for Life, 생을 위하여’이다. 그동안 닻미술관과 함께해온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선별하여 구성한 전시인데,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1세대 작가인 주명덕을 비롯해 서영석, 이모젠 커닝햄, 론다 래슬리 로페즈 등 닻미술관이 사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주 관장의 스승 린다 코너의 작품과 주 관장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가 안긴 산과 계곡,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 역동적인 물결과 고요한 구름.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마음이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울렁거릴 때, 여기 말이 없는 사진들에 눈길이 닿는다”-주상연 바바라 보스워스의 작품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꽃과 냇물을 보고 산을 응시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슴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앤드류 골드의 파도를 담은 작품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표정과 파도의 높이, 물결의 흐름과 방향,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린다 코너의 ‘Baby Feet’은 아기의 작은 발을 감싸 쥐고 있는 손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엘라이쟈 고윈의 작품도 흥미롭다.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감동의 순간이다. 창밖으로 나무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시 공간은 작지만 닻의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한 곳이다. 전시 작품도 숲과 잘 어울린다. 물 위를 걷는 작은 소금쟁이들과 반딧불이와 같은 정겨운 생명체들이다. ■ 작가를 키우고 모으는 나눔의 공간 닻미술관은 창작과 전시 공간을 더 넓혔다. 야생 정원과 작은 3평짜리 나무집을 마련했다. 2017년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전시를 열었는데, 그때 건축도면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나무집을 지은 것이다. 이 집은 작가들을 양성하는 스튜디오로 이용할 계획이다. 오는 8월27일에 숲의 소리와 빛을 채집하여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다. 9월24일부터 크리스 맥카우(Chris McCaw) 사진전이 열린다. 닻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뿌리 같은 상징이다. 삶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주 관장의 비전을 들어본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함께 하는 제자들이 일하기에 좋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첫째 과제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생하기 힘든 내용을 펼쳐내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뜻과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0대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것은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면서 동시에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나눌 것을 궁리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 안산 대부도 ‘유리섬미술관’

‘반짝반짝’ 유리로 만든 세상... ‘형형색색’ 황홀경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되어 육지가 된 섬이지만, 여전히 섬의 낭만과 서정이 살아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대부도에 터를 잡은 유리섬미술관은 이름처럼 유리 전문미술관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1만3천평의 툭 트인 마당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유리 예술품들은 꽃을 사랑한 어린왕자처럼 어디선가 한번 쯤 보고 들었던 존재들이기에 정겹고 편안하다. 마당에 서 있는 나무들의 잎과 꽃도 유리로 만들어졌다. 다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키스를 나누는 청춘 남녀 인형이 눈길을 끈다. 건물 모서리에 놓인 커다란 통에서 흘러내린 주황색의 페인트가 벽을 적시고 있다. 철로 만든 형이상학적 구조물도 상식과 통념을 부수기는 마찬가지다. 안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닫힘과 열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유리섬미술관의 연못엔 사계절 내내 연꽃이 피어 있다. 유리로 만든 시들지 않는 연꽃은 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빛깔로 변신하고 있다. 미술관 외벽을 장식하는 작품은 열다섯 개의 사람 입술이다. 노래를 부르는 듯 도톰한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다. 유리섬미술관(관장 김동선)은 장식유리그릇 제조업의 중심지로 천년이 넘도록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섬 무라노를 꿈꾸며 미술관을 설계했다. 김동선 관장은 안산 대부도를 유리공예의 명소로 만들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테마전시장은 미로 속의 신세계처럼 흥미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자연과 유리’를 테마로 꾸며져 있는 테마전시장에서 맛보는 유리와의 만남이 특별하다. 채색 유리로 만들어진 동화의 세계는 꿈 많던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신비로운 숲속과 바다 속 풍경에서 유리 공예의 매력이 한껏 발휘된다. 아름다운 예술작품 앞에서 마비되고 무뎌진 감성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는 짜릿한 시간이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유리공예는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이다. 우리나라 유리의 역사도 꽤 오래되었다. 기원전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구슬이 부여에서 발견됐다. 신라 금관총에서 나온 유리잔,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그릇, 매우 독창적이라 평가 받는 금속과 조화를 이룬 사리병은 한국 유리문화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중한 유물들이다. 유리는 일상에서 친숙한 물건이지만 어떻게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지켜볼 기회를 갖기란 매우 어렵다. 특수한 시설과 까다로운 기술을 두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섬미술관은 유리가 예술작품으로 탄생하는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미술관이다. ■ 투명한 유리가 화려한 예술품으로 변신 유리섬미술관 2층에 유리가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널찍한 시연장이 있다. 1천200도 넘게 뜨겁게 달구어진 유리를 블로우 파이프(Blow pipe)를 이용하여 다양한 유리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을 공연 형식으로 재현한다. 2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극장식 유리공예 시연장이다. 유리 예술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작가의 몸짓과 숨결을 느끼면서 지켜보는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다양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유리섬미술관의 자랑이다. 2천500℃ 토치에 내열유리봉을 녹여서 나만의 액세서리를 만드는 램프워킹은 인기가 많다. 블로잉 체험은 1천200℃의 뜨거운 유리를 블로우 파이프(Blow pipe)에 말아 올려 입으로 불면서 컵, 미니화병, 크리스마스 볼, 램프를 만드는 흥미로운 체험이다. 두 가지 체험은 작가와 일대일로 이뤄진다. 글라스페인팅 체험은 유리컵에 유리전용 안료로 그림을 그린 후 오븐에 구워서 완성하는 체험이다. 컵을 오븐에서 10분 정도 굽고 30분 정도 서서히 식히면 완성된다. 샌딩 체험은 유리컵에 다양한 패턴의 스티커를 붙여 디자인 한 뒤, 고압으로 고운 모래를 뿌리면 유리컵의 표면이 깎이면서 스티커의 모양 그대로 컵에 문양을 새길 수 있다. 와인병과 시계 만들기 체험도 있다. 가마에서 녹여 납작해진 와인병에 나만의 디자인으로 그림을 그려서 시계를 만들어보거나 다양한 디자인의 색유리구슬을 자신의 생각대로 디자인하여 팔찌를 만들어 보는 체험도 재미있다. ■ 빛의 예술가 김인중과 유리미술관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유리미술관에서 김동선 관장의 소개로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김인중 신부와 마주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한 김인중 작가는 1990년대에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얼마 전까지 김인중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KBS에서 방영된 ‘천사의 시’는 김인중 신부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빛의 사제’ 또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작가 김인중은 누구인가? 1940년 부여에서 태어난 김인중은 서울대 미대 재학 중에 국전에 특선하고, 제1회 민전(1965)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과 파리 가톨릭대학에서 수학한 김인중은 사제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73년 파리 쟈크 마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술사가 웬디 베케트는 김인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 김 작가가 창안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조 공법은 우리 시대의 언어를 담기에 최적의 전혀 새로운 방식이다. 스위스 ‘르 마텡’지는 김인중을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작가’로 선정하면서 “마르크 샤갈과 앙리 마티스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회화에서는 인상파 폴 세잔,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야수파 앙리 마티스, 도자기에서는 입체파 파블로 피카소를 계승한다”고 평가했던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드니 꾸타뉴의 발언은 김인중의 예술적 성취와 유럽에서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 브리우드 바실리카 성당에 김인중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37점을 설치하면서 별 1개의 도시에서 최고 평점인 별 3개의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상향조정되었다. 대표적 고딕건축인 샤르트르 대성당과 로마네스크 양식 브리우드 성당에도 김 작가의 작품을 설치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993년 처음으로 작품을 전시한 주인공이다. 이미 프랑스에는 김인중을 최고의 작가로 대접하고 있다. 앙베르 시립 김인중 전시관, 이수아르시에 김인중 상설전시관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인 오피시에 수상하고,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줄리앙 그린은 김인중의 작품을 “색과 선의 율동폭을 극대화한 동양화이자 서양화”라며 찬탄했다. ■ ‘김인중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 설립의 꿈 김인중 작가가 최근에 귀국했다. 유리섬미술관 김동선 관장과 김인중 작가의 만남으로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김 관장은 김 작가의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작업실을 제공하고 그의 예술 세계를 전시하고 보존하는 ‘김인중 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 건립을 위해 정성을 모으고 있다. ‘빛섬포럼’은 한류의 중심에 있는 김 작가를 사랑하며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는 모임이다. 포럼 변주선 회장을 비롯해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유안진 시인, 이해인 수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이사장, 수원 교구장 이용훈 주교, 이장호 영화감독, 조계종 대종사 자광스님, 조선돈 목사, 김억중 빛섬미술관 관장 등 학계와 종교계,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여든을 넘겼으나 여전히 젊은 김인중 작가는 ‘김인중 홀’이 마련된 KAIST와 대부도 유리섬미술관을 오가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노작가가 들려주는 말씀이 영혼을 울린다. “예술이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해 가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9. 안산어촌민속박물관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은 2006년 3월에 개관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2010년 1월부터 안산도시공사(사장 서영삼)가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다. 대지면적 7천500㎡, 연면적 2천569.46㎡의 지상 2층의 건물에 안산의 역사와 생태환경, 어업문화, 어촌의 민속을 주제로 한 3개의 상설전시실과 어린이상설체험전시실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대형 수족관 두 개가 눈에 띈다. 참돔을 비롯한 서해의 대표 물고기들과 등 쪽에 약 열줄 정도의 진한 갈색의 띠를 두른 커다란 까치상어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로비에 위치한 ‘내가 그리는 3D 수족관’은 증강현실 컬러링 미디어 아트를 이용한 체험형 전시다. 어촌민속박물관 로비에 설치된 물고기 도안을 색칠하면, 곧바로 3D 홀로그램과 가상 수족관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만나 볼 수 있다. ‘3D 갯벌친구들’과 ‘3D 수족관’이 있다. 갯벌 친구들부터 만나본다. 크레용과 탄도항 갯벌에 사는 게와 물새 그림이 놓여있다. 게 그림을 골라 크레용으로 색칠하여 스캐너에 밀어 넣으니 대형 스크린에 방금 색칠한 게가 나타나 엉금엉금 기어 물새들이 노는 갯벌로 들어간다! 지켜보던 관계자가 설명을 덧붙인다. “증강현실 기법을 활용한 3D 체험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입니다” ■ 대부도 갯벌과 서해서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꿈꾸다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의 주제는 ‘갯벌생태계와 서식동물’과 ‘갯바탕과 어로활동’이다. 서해안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꼽힌다. 대부도를 둘러싸고 있는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갯벌은 어민들의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어민들이 갯벌에서 사용했던 도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조개나 굴을 담는 종태기나 부게는 물론 바닷물이 잘 빠지는 재료로 만들었다.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삽과 호미는 낙지를 잡을 때도 쓰였다. 굴을 따거나 깔 때 사용하는 ‘조새’는 생김새가 아주 독특하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도구에서 어민들의 생활력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대부도의 마을마다 갯바탕이 달라서 모래갯벌, 펄갯벌, 혼성갯벌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살고 있는 생물도 다르니 채집도구 또한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다. 소주병을 활용해 만든 ‘홰’는 석유가 사용되니 근대의 유물이다. 해가 진 후 썰물 때 갯벌에서 일할 때 홰를 밝혀 썰물을 따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웅덩이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잡았다. 어민이라면, 혹은 어촌의 아이들이라면 갯벌에 사는 생물들의 생김새와 습성을 잘 알아야 한다. 갯벌에 난 흔적이나 구멍만 봐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대부도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사실을 아는가? 공룡들이 살던 백악기의 대부도는 뭍이었을 테다. 화석으로 만나는 공룡발자국 앞에서 인간의 불안한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류는 10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을까? 대부도 인근지역의 조개더미인 패총, 해양방어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 대부도가 중국과 교역의 교통요충지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재현한 대부도 가옥에 전시한 다양한 민속유물을 통해 섬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서해안의 신비로운 자연현상인 물때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 안산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만난다. 풍어제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어민들의 소망이 담긴 마을축제였다. 어민들이 불렀던 노동요를 들어보면 어민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서해안의 생태환경과 어업문화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상설체험전시실은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즐거운 교육마당이다. 기획전시 ‘알을 깨다, 공룡을 깨우다’도 흥미롭다. 커튼을 열고 전시실로 들어서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대부광산퇴적암층을 모티브로 재현한 미디어 벽화는 머나먼 백악기 시대로 탐험을 이끈다. 대부도를 뛰어다녔던 공룡과 중생대 백악기 지구를 상상하는 공간이다. 전등으로 벽화를 비추면 화석이 생기를 되찾는다. 알록달록한 공룡들이 떼를 지어 노니는 백악기 시대가 펼쳐진다. VR/AR 기술을 융합하여 백악기 시대 공룡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대부도는 중국과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고려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대부도에 상인집단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도 앞바다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고려시대 한선이 발굴되었다. 대부도의 부속섬 ‘풍도’와 관련된 ‘풍도해전지도’는 매우 특별한 유물이니 꼭 살펴 볼 일이다.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풍도는 섬으로 안산 대부도에 딸린 섬이다. 야생화 군락지 옆으로 청나라 군사가 잠든 곳이라고 전해지는 무덤들이 자리 잡고 있다. 1894년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풍도해전이 발생하는데 이를 시발점으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청일전쟁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알고 있지만, 전쟁터가 한반도라는 사실과 수많은 조선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풍도해전지도’는 대부도의 작은 섬 풍도가 우리의 역사와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 특별전 ‘어로도구의 재발견’ 박물관은 갯벌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다양한 특별전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대부도 어민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대부도의 지질, 곤충, 조류, 염습지를 탐방하는 등 주제별 생태탐험은 시민들의 참여프로그램이다. 예술과의 만남도 꾸준히 벌였다. 매년 대부도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여 현대미술 작가와 콜라보 전시인 기억프로젝트 특별전을 열었다. 대부도의 공룡, 해양, 역사 등 콘텐츠를 주제로 설치미술, 회화 및 조각, 미디어아트 등 현대미술작가의 연출을 통하여 대부도를 기억하는 전시였다. 올해 6번째 전시는 ‘어로도구의 재발견’을 테마로 부지현 작가와 함께 집어등을 활용한 설치미술 특별전이다. 2022년 경기도 지역문화 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인 특별전 ‘어로도구의 재발견’은 기억프로젝트Ⅵ 특별전으로 올 12월까지 진행된다. 고등어, 오징어, 정어리, 전갱이를 잡을 때 사용한 집어등을 활용한 ‘바다의 별_집어등’이다. 배 가까이로 물고기가 모여들도록 밤바다를 밝히던 집어등이 현대미술 작가의 손을 거쳐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였다. 작가는 집어등에 푸른빛을 비추어 환상적인 바다의 풍경을 보여주고, 어부들의 삶을 조명한다.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된 집어등은 ‘바다의 별’이다.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어부들이 보낸 세월을 216개의 집어등과 236개 LED를 이용해 바다와 생명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집어등에 집약시켜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자원보존과 녹색환경의 중요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애들아, 갯벌에서 놀자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갯벌탐방 프로그램인 ‘애들아 갯벌에 가자’는 8월 27일까지, ‘애들아 망둥어 잡으러 가자’는 9월17일부터 10월8일까지 진행된다. 유치원 및 초등학생 포함한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으니 안산도시공사 누리집에서 교육신청 게시판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대부도 탄도항에 자리 잡은 박물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답다. 특히 비단실을 만드는 누에를 닮은 ‘누에섬’은 대부도에 부속된 무인도인데,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탄도와 연결된 도로가 나타나 걸어갈 수 있다. 누에섬 전망대에 오르면 서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의 약속을 들어본다. “대부도의 모습이 한 컷의 인상 깊은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온가족이 대부도를 나들이하여 갯벌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친절하게 안내할 것입니다. 대부도로 오십시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8. 화성 ‘소다미술관’

찜질방의 변신... 사람을 품다 건축을 품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디자인 건축 미술관이다. 2015년 4월 화성시 안녕동에 개관한 소다미술관은 ‘함께하는 미술관’, ‘담을 낮춘 미술관’, ‘가족 미술관’을 지향하며 지역과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소다미술관은 개관한 해에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의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본상을 연속으로 수상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 건물주 ‘열린생각’이 만들어낸 ‘열린공간’ 푸른 잎이 무성한 자작나무가 미술관 입구에 그늘을 만들고 있다. 미술관에서 기발한 생각과 만난다. ‘신체건강’, ‘내가해냄’, ‘행복하자’, ‘창의력’, ‘나만믿어’, ‘거절한다’, ‘노오오력’이란 글자가 새겨진 종이 카드 중에서 ‘뜻밖의운’을 뽑아 호주머니에 넣는다. “전시를 다시 보고 싶으면, 미술관 입장권과 얼굴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두어야 해요. 사진을 보여주면 전시기간 동안 재입장이 가능합니다” 장동선 관장이 들려주는 소다미술관의 탄생기가 흥미롭다. 미술관의 건물주는 찜질방을 건축하기 위해 2009년에 공사를 시작하지만 1층 철근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를 마무리하고 공사를 멈춘다. 시장 환경이 급변해 찜질방으로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 탓이다. 4년을 방치하던 건물주는 하버드 건축대학원 출신의 건축가 권순엽씨(디자인스튜디오 SOAP 대표)에게 건물의 구조 변경을 맡긴다. “층구가 굉장히 높아 전시하기에 좋은 구조라는 생각에 건축가인 남편과 건물주와 함께 미술관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건물주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었으면 탄생하기 힘든 공간이었죠” 정 관장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답게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꺼낸 주인공이다. 찜질방으로 짓던 콘크리트 벽체는 지붕 없는 야외 전시장으로 변모하고 불가마의 내화벽돌은 바닥에 깔았다. 널찍한 옥외주차장 공간은 설치조각 작품과 카페테리아 테이블이 놓인 잔디정원으로 변신했다. 밖으로 드러난 미술관의 천장과 벽체에 난 빈 공간에 설치 작품을 전시하고, 2층에는 컨테이너 3개를 올려 계단실, 전시 공간, 세미나실로 꾸몄다. 마침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개성적인 소다미술관이 완성된 것이다. 공사를 마무리하자 건축주는 미술관의 운영을 권 대표와 장동선 관장에게 부탁한다. 미술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바스갤러리(Bath Gallery)’는 목욕탕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메인 실내 전시 공간이다. 불규칙한 단차와 마감을 하지 않은 콘크리트 구조물과 화이트 벽면이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 ‘지붕 없는 전시장(Roofless Gallery)’은 찜질방의 ‘방’이 가지는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보를 제외하고 지붕을 잘라내어 하늘을 그대로 보이게 한 외부 전시공간이다. 2층의 ‘아트테이너(ARTtainer)’는 건축물 상부에 화물컨테이너를 덧대어 교육, 전시, 세미나, 상점 등으로 활용되는 유연한 공간이다. ■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는 공간 지붕 없는 전시장은 아이들의 놀이터로도 손색이 없다. 높이 설치된 파이프에서 비처럼 물이 내리는 ‘스카이 샤워(Sky Shower)’ 아래로 온몸을 감싸는 커다란 우산을 쓴 어린이가 놀고 있다. 햇살이 비치자 오색 무지개가 선다. 재미에 흠뻑 빠진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다. 개관 8년 만에 소다미술관은 화성은 물론 수도권에서 많은 관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소다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구성원들의 뛰어난 기획력 덕분이다. “소다의 자랑은 좋은 팀입니다. 개관 8년에 300여 명의 작가와 35번의 기획전을 열 수 있었던 힘입니다. 재미있는 미술관이어야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지요. 다양한 콘셉트를 갖춰야 해요. 최고 수준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기획력을 총동원해왔습니다. 소다의 기획 팀원들은 독서를 많이 해요. 세상을 읽는 눈과 촉을 기르기 위해서죠” 장 관장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소다는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획전을 열고 있어요.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배치하죠.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경영 철학을 질문하자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술관에 관장의 취향이 보이면 발전은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해요. 관장은 자신의 색깔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중성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다의 철학과 입장을 정제된 언어로 정리하여 미술관 식구들과 공유합니다” 소다미술관이 다루는 주제는 기대 이상으로 풍성하다. 장 관장은 이를 “경계 허물기”란 말로 풀어낸다. 음악공연을 비롯해 아트장터와 플리마켓 같은 이벤트도 연다.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이웃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돋보인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에 화성시와 발달장애예술인의 작품들을 선보인 특별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인 셈이다. 소다미술관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넉넉하다. 코로나19로 힘들어했던 지난해에 연 ‘청년들들장’은 공동체 정신을 추구하는 소다의 철학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지역 청년농부와 예술가, 시민이 함께하는 장마당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소다의 생각이 신선하다. ■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라고 외치는 곳 소다 미술관은 화성시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 후 디자인 건축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다 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건축요소의 하나인 ‘단(段)’을 주제로 현 사회의 문제와 대안을 찾고, 오늘날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 방안을 모색한다. 박지현, 조성학 건축가는 전시장 콘크리트 기둥 열에 입체적 층을 설치해, 공간의 깊이를 극대화시킨다. 층층이 결합돼 세워진 프레임을 보며 느끼는 공감각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다원적 인식을 끌어낸다. 건축가 김세진은 계층의 속성을 직시한다. 단을 구성하는 수평과 수직면을 과감히 없애고, 둥근 점을 레이어로 연이었다. 그러자 시점에 따라 새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견고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위치와 시선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진영 작가는 콘크리트 공간 안에 하늘색의 거대한 풍선 의자를 놓아 낯설고도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한 공간에서 뜻밖의 재료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새로운 세대의 출현과 함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미덕과 닮아있다. 미술관은 기획의 의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어느 때보다 포용성이 필요한 시기에 공동체의 화합과 소통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한 전시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관객이 새로운 차원에서 미술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공존을 위한 소통의 길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했어요. 소다미술관은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까지 개최한 전시의 특징은 ‘함께 사는 우리’라는 테마입니다. 예술가는 사회 현상을 좀 더 극적으로 느끼는 사람이에요. 미술관이란 건 세상을 향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를 외치고 보여주는 곳이에요” 미술관 입구에 있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니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컨테이너와 지붕 없는 야외전시장, 탁 트인 잔디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소다미술관의 자랑은 또 있다. 전시마다 전시 주제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술관과 가까운 책방을 연계해 지역과 소통한다. ‘질문하는 그림책’을 추천하고 있다. 함께한 책방은 오이책방, 서른책방, 오평 등 지역의 작은 독립서점이다. “소다미술관은 예술의 담을 없애고 문턱을 낮춰 누구나 예술을 쉽게 전달하려고 해요. 개관 당시에는 70%가 타 도시 관람객이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은 화성시민의 참여가 50%로 높아졌어요”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적극 소통해 온 소다미술관은 화성시의 자랑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7. 양평 ‘세미원 연꽃박물관’

형형색색 연꽃의 바다… 향기에 취하다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마음을 씻고[洗] 마음을 아름답게[美] 가꾸는 것은 ‘물과 꽃의 정원’ 양평 세미원의 개관 철학이자 설립 목적이다. 출입문에 새겨진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미심(觀花美心)’이란 여덟 글자에 담긴 그윽한 뜻을 음미하며 세미원에 들어선다. 세미원 입구에 자리 잡은 연꽃박물관(대표 이종승)은 연꽃의 곧은 줄기와 둥근 잎을 닮은 듯하다. ■ 연꽃에 영혼과 일상을 새기다 찻집을 겸한 세미원 작은도서관에서 차를 마시고 이가영 홍보담당의 안내를 받아 박물관을 둘러본다. “2층은 상설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운영됩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연꽃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하게 조성된 상설전시실에서 우리나라 연꽃의 역사부터 살펴본다. 강화도 백련사(白連寺)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세운 고찰로 연꽃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삼국시대에 인도 승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절터를 찾다가 강화도 고려산 정상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했는데, 흰 연꽃이 흩날려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세웠다는 전설이다. 신라의 기와에 연꽃이 피어있다. 고구려와 백제도 연꽃문양의 와당을 즐겨 사용했다. 연꽃무늬를 양각으로 새겨진 ‘수막새’는 1천500년이 된 유물이다. 거칠고 날카로운 고구려와 달리 백제의 연꽃 문양은 부드럽고 둥글다. 화려하고 정제된 통일신라시대의 기와에서 신라인의 개방적인 문화의 저력이 느껴진다. 실패에 하얀 무명실이 감겨 있다. 음각으로 단아하게 새겨진 복(福)이란 글자와 연꽃에서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듯하다. 푸른 연잎과 분홍빛 탐스러운 연꽃, 갈색 연밥 줄기 아래로 원앙새 한 쌍이 헤엄을 치고 있다. “연꽃을 화려하게 수놓은 분홍빛 주머니는 휴대용 수저주머니입니다. 아주 오래된 유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1940년대의 유물이지요” 연세가 지긋한 관람객들이나 알 수 있을 것 같은 희귀한 유물도 있다. ‘연지문인두판’은 연꽃을 수놓은 인두판이다. ‘인두’는 옷의 솔기 같은 부분을 접거나 선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다림질 도구이다. 타원형의 둥글납작한 물건은 무엇일까. “아, 이것은 연꽃 문양을 수놓은 안경집입니다. 예전에도 안경을 사용했는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 안경집에 담아 허리춤에 매달았다고 해요” 부잣집 아이들이 겨울에 머리에 썼던 장식 모자인 굴레도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유물이다. 굴레 좌우에 다섯 송이 연꽃이 피었다. 숟가락 손잡이의 장식이 연꽃봉우리다. 선비들의 붓통과 먹을 담은 연적조차 연꽃 모양이다. ‘연꽃소반’은 놀라운 유물이다. 거북이 받침에 연꽃의 대궁과 줄기로 이루어진 다리, 그릇을 올려놓는 판은 활짝 핀 연꽃을 자개로 장식했다. 이처럼 연꽃을 소재로 멋지게 만든 소반은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연잎과 연꽃이 절묘하게 표현된 비취빛의 청자베개에서 고려인의 호방하고 우아한 정취가 묻어난다. 연꽃이 그려진 ‘청자발’에도 고려인의 세련된 감각이 살아있다. 시를 즐기던 옛 선비들이 귀한 사람에게 시를 지어 전달할 때 쓰기위해 따로 종이를 만들었다. 이를 ‘시전지(詩箋紙)’라 부르는데, 연꽃박물관에서 만난 열네 줄의 ‘시전지판’에도 연꽃이 활짝 피어있다. 아마도 이 시전지판의 주인은 ‘수륙초목지화’로 시작되는 주염계(1017~1073)의 ‘애련설’을 읊조리며 품격 높은 생활을 추구했을 것이다. 연꽃 한 송이를 안고 연화대에 앉아 있는 승려의 무릎 위에는 푸른 연잎이 놓여 있다. 연꽃봉우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민불(民佛)도 만난다. 보살의 선한 눈매가 평화롭다. ■ 민화, 그림에 담은 옛사람들의 꿈과 소망 3층 기획전시실에서 민화 속의 연꽃을 만난다. 서민들의 소망과 미학이 담긴 정겨운 민화 속에도 연꽃들이 만개했다. 민화에 등장하는 연꽃들은 한결 여유롭다. 연밥에 앉아 씨를 빼 먹는 물총새 한 쌍과 커다란 연잎 아래서 짝짓기를 하는 노랑부리백로 한 쌍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연밥을 좋아하는 물총새는 물론 해오라기와 오리, 잉어와 가물치도 늘 쌍으로 등장한다. 연꽃과 어울리는 새와 물고기들의 평화롭고 느긋하며 우스꽝스러운 몸짓은 한가하고 여유롭다. 웃음과 여유와 휴식은 민화가 우리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매력이다. 2009년 1월에 개관한 세미원 연꽃박물관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에도 열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 사업에 3년 연속 선정된 박물관은 지난 3월부터 ‘과거를 열연(熱演)하다’를 주제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를 열연하다는 연꽃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선비들이 쓰던 문방사우와 규수가 사용하던 공예품을 관람하고, 세미원 정원에 복원된 과학영농온실, 사륜정, 세한정 등 조상의 정신이 느껴지는 유물과 시설을 통해 역사와 문학과 예술을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11월까지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의 대상은 초·중·고등학생으로 총 40회 25명 내외인데, 세미원 관람료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교육기관과 연대를 강화하고 프로그램 참여자에게는 조상의 뛰어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향원익청,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 위치한 세미원에서 지난 7월 1일부터 ‘연꽃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세미원에 들어서면 눈부신 백련과 매혹적인 분홍색의 홍련이 뿜는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잔잔한 물과 어울리는 수련과 노랑어리연꽃,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희귀종 가시연꽃,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의 큰 잎을 가진 빅토리아 수련, 세미원이 최근 개발해 품종 등록한 수련 ‘세미 1호’와 오묘한 빛깔로 사람을 유혹하는 수련 ‘완비사’도 감상할 수 있다. “세미원을 방문하면 진흙에 물들지 않고, 물방울이 구슬처럼 영롱하게 잎에 맺히고, 향기는 멀리 퍼지는 연꽃을 보며 여유를 되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연꽃은 여름 꽃이다. 더위를 좋아해서 더울수록 햇빛을 양분 삼아 더욱 잘 피어난다. 연꽃은 7월에 만개하여 8월이 되면 꽃과 잎이 지고 연밥만 남게 된다. 연꽃을 감상하기에는 한낮보다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저물녘이 더욱 좋다. 연꽃은 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정오 무렵부터 꽃봉오리가 서서히 닫힌다. 활짝 핀 연꽃을 구경하고 싶다면 이른 아침에 찾아야 한다. 조선홍련이 피는 ‘홍련지’,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놓인 ‘백련지’,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이 개발·기증한 연꽃이 피는 ‘페리 기념연못’, 빛의 화가 모네의 그림 ‘수련이 가득한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한 ‘사랑의 연못’에서 연꽃을 만끽할 수 있다. ‘물의 요정’이라 불리는 수련도 세미원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세미원 보유식물은 약 270여종인데, 70여종의 수생식물과 120여종의 초본식물, 80여종의 목본식물이 있다. 세미원은 팔당호 변의 수몰 지역의 하천부지를 개조해 2004년 연면적 20만여㎡ 규모로 맑은 한강을 만들기 위해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심어 조성한 연꽃·수생식물 정원이다. 설립 당시 경기도에서 103억 원을 지원하여 수질과 토양 정화 능력이 탁월한 연꽃을 심어 상수원 수질을 정화하고 생태교육과 주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다. 2019년 6월에는 경기도 지방정원 제1호로 등록됐다. 세미원을 장애물 없는 ‘열린관광지’로 조성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주도하는 열린관광지는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을 포함한 모든 관광객이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지를 말한다. 사계가 아름답지만 초가을에 열리는 ‘수련문화제’는 연꽃문화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안기는 축제이다. 겨울이면 백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큰고니가 찾는다. 지난 해 겨울에는 고니 269마리가 휴식하여 세미원은 ‘백조의 호수’ 변신했다. 세미원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편안하고 넉넉한 정원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6. 용인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세계적 명차 한자리… 온 가족 다함께 차차차!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둥근 바퀴에 태엽의 원리를 결합한 태엽자동차에 대한 상상도를 그린다. 다빈치가 스케치한 상상도를 실물로 재현한 태엽자동차와 1886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벤처 특허차’는 신기하게도 서로 닮았다. 독일 메르세데스 벤처 설립자인 칼 벤츠가 삼륜마차에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특허받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벤처 특허차는 0.9마력에 시속 16km에 불과했으나 자동차의 시조라는 명예를 얻었다. 최초의 자동차 벤처를 탄생시킨 독일은 2022년 현재에도 세계 최고의 명차를 생산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벤처 특허차와 포르쉐, 롤스로이스, 캐딜락 같은 명차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에 위치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이다. ■ 자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다 1998년 5월 설립돼 올해 개관 24주년을 맞이한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 2만여평의 드넓은 공간에 전시장과 실내교육장인 애니카 교통나라, 애니카 공원이 조성돼 있다. 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재규어, 비틀 같은 국내외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설치 작품 ‘21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는 20세기의 하드웨어 문화가 21세기에는 소프트웨어에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예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시장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뷰티존, 프리미엄존, 코리안존, 스포츠존 등 총 12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로비를 미로처럼 재미있게 분할한 전시장에서 136년이 된 자동차의 몸체에 들어가는 부속품과 자동차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도표를 살펴본다.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고급 자동차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뷰티존’은 이름처럼 자동차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전시 공간이다. ‘포커스존’은 자동차 역사에 빛나는 가치가 있는 모델을 집중 조명해 감상하는 전시 공간이다. 영화 ‘백 투더 퓨쳐’에서 시간여행을 했던 자동차 ‘들로리안 DMC-12’와 ‘허비’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동차 ‘폭스바겐 비틀’과의 만남은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광고존’은 한국자동차의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공간으로 추억의 자동차 광고영상과 카탈로그를 전시하고 있다. 2층엔 1910~20년대 자동차 장인들이 수공으로 제작한 명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클레식존’이 있다. 자동차의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시발과 포니, 한국 자동차의 출발과 성장의 이름 ‘코리안존’에서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시발’과 마주한다. 미군 지프차를 기초로 만들어진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출발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시발은 광복 10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해 당시 부유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1960~70년대 조립생산의 단계를 거쳐 1975년에 출시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현대 포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조랑말이란 뜻을 가진 소형자동차 포니의 성공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현대 포니는 국산 자동차 최초로 해외에 수출하여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복원존’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의 철학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소장품인 클래식카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과정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인 국제 시발 자동차는 아쉽게도 현재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아 1955년 산업박람회에 출품할 당시 생산에 참여했던 기술자와 가족들의 고증을 통해 박물관에서 재현했다. ■ 자동차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당시 자동차는 극소수의 상류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소유물로 부와 지위를 나타냈다. 이런 까닭에 ‘프리미엄존’에 전시된 ‘롤스로이스 팬텀vi’와 ‘ 캐딜릭v12’는 예술품처럼 느껴진다. 1910년식 롤스로이스의 대표 모델인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는 단아하면서 화려한 차체에 직렬 6기통이 장착됐으나 주행 중에 시계 소리만 들린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령처럼 조용하게 움직여 부유층에 큰 사랑을 받았다. ‘퍼블릭존’에서 만나는 미국의 ‘포드 모델 T’와 딱정벌레를 닮은 유럽의 ‘폭스바겐 비틀’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전설적인 제품들이다. ‘포르쉐 911 터보 카브리올레’, ‘BMW 3.0CSL’ 같은 유명 스포츠카가 전달하는 느낌은 강렬하다. 운전자의 개성과 욕망을 스타일과 빠른 성능으로 표현하는 스포츠카는 세계 젊은이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오래된 자동차 중에서도 특히 1920~30년대 장인들에 의해 수공으로 제작된 명차를 ‘클래식카’라고 부른다. ‘클래식존’에서 ‘부가티 타입 38’이나 ‘스터츠 베어켓 스피드스터’ 같은 명작과 마주한다. 1957년에 출시된 ‘캐딜락 엘도라도 브로엄’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소비 경제가 활성화된 1950년대 미국의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형의 화려한 고급 자동차이다. 전투기의 디자인이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번쩍이는 은백색의 크롬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외관이 돋보인다. 반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는 작고 효율적인 자동차가 등장한다. 당시 시장의 요구에 따라 초소형차로 디자인된 ‘BMW 이세타’는 작은 차체를 고려하여 냉장고처럼 문을 앞면에 달았다. 자동차 디자인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시대적 상황이 반영돼 있다. ■ 보존과 복원은 미래를 여는 힘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20세기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자동차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존처리와 원형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복원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복원은 손상되고 훼손된 자동차를 가능한 처음 만들어졌던 당시의 상태와 기능, 디자인으로 복구하여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작업을 말한다. 자동차 보존과 복원의 원칙은 무엇일까. ‘영구보존의 원칙’은 잠재적 위험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최대한 수명을 연장시켜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다. ‘원형존중의 원칙’은 처음 제작되었던 당시의 원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최고 수준의 원형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기능구현의 원칙’은 자동차란 본질적으로 이동수단이기 때문에 주행이 가능한 상태로 여러 가지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박물관에 소장한 100년이 넘은 클래식카도 여전히 운행이 가능하다. 입장객들을 클래식카에 태우고 삼성애니카공원을 달리는 프로그램은 삼성화재교통박물관만의 특별한 서비스다. 이름만 듣던 클래식카를 직접 타보는 경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메르세데스 벤츠 E320이 운행하고 있었다. 유럽 자동차 대중화를 이끈 ‘오스틴 7’, 한 때 포뮬러1을 주름잡던 레이싱카 ‘마세라티 250F’를 2분의 1 비율로 축소한 어린이 자동차, 1920년대 뉴욕 거리를 배경으로 전시된 ‘뷰익 24-6-45’ 같은 당시의 자동차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 아이와 함께 배우는 안전한 교통문화 교통안전교육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단체교육과 가족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개인교육으로 나눠 진행된다. 어린아이와 동행했다면 애니카교통나라에 반드시 들러야 한다. 어린이들이 당하기 쉬운 10가지 교통사고 유형을 시나리오로 꾸며,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교통안전과 질서의식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자.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 5가지 약속도 아이들에게 꼭 일러주고 다짐을 받아야겠다. 횡단보도 오른쪽에 멈춰 선다, 초록불이 켜지면 왼쪽과 오른쪽을 확인한다, 운전자와 눈을 맞추며 손을 든다, 자동차가 멈춘 것을 확인한다, 건너는 동안 자동차를 보면서 건넌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 먼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박물관에 어떤 자동차가 전시되고 있고 현재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미리 살펴본다면 훨씬 충실하고 즐거운 관람이 될 것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5. 부천시립박물관

과거와 현재·동양과 서양을 만나다 부천시립박물관 외관이 둥글다. 옹성처럼 생긴 둥근 벽면에 옹기관, 교육관, 유럽자기관, 수석관이라 새겨져 있다. 옹기와 교육자료와 유럽자기, 그리고 수석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면서 교육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성주산에 야생 복숭아나무가 자랐다고 하는데, 197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기 전까지 부천의 ‘소사복숭아’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복숭아의 전통은 매년 5월에 열리는 ‘복사꽃 축제’로 연결된다. 급성장한 공업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부천시는 민선 시장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첨단산업과 역사문화를 융합한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어느새 부천은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국제만화축제’를 여는 품격 높은 문화도시다. 부천시박물관(관장 김대중)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옹기와 교육, 그리고 유럽 자기와 수석이라는 특별한 소재를 특화한 박물관이다. ■ 부천, 나눔의 정신이 빛나는 도시 “부천은 ‘논개’라는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 선생의 고향입니다. 변영로 문학관을 곧 개관할 것인데, ‘수주’라는 선생의 호는 고려 시대에 부천을 부르던 이름이지요” 김대중 관장은 역사 전공자답게 부천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부천은 고대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우휴모탁국 땅이었지요. 이후 고구려가 차지하면서 주부토군으로 불렀고, 신라가 차지했을 때는 장제군이라 했습니다. 수주라 불린 것은 고려 시대부터입니다. 고려 문종 때 부평으로 불리게 되는데, 부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부터죠.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했으니 내년이면 시 승격 50년이 됩니다. 부천은 2017년 동아시아 최초로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어 우리 문화자산의 우수성과 가치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부천시립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만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옹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옹기관과 통합관이 있다. 통합관은 유럽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유럽자기관, 19세기 서당교육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교육변천사를 보여주는 교육관, 그리고 수천 년의 세월이 빚은 수석관이 모여 있다. “통합관은 세 분의 기증품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입니다. 교육자료를 기증한 민경남 선생, 유럽 도자를 기증한 복전영자 선생, 평생 수집한 수석을 기증한 정철환 선생이 부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인 주인공입니다” ■ 자연이 빚어낸 美 ‘수석실’ 수석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일까. 전시실에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석은 한자로 목숨 ‘수’(壽)를 쓰는데,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듣고 수석을 바라보니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내는 듯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과 소치 허련의 괴석도를 첨단기술로 구현한 영상이 흥미롭다. 그림 속 괴석과 인물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통해 조선시대의 수석문화를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섬을 닮은 ‘도형산수경석’을 바라보면 관람객이 마치 바다에 있는 듯하다. 수석을 재미있게 관람하는 방법은 마음에 드는 수석을 찾아내 말을 걸고,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폭포수가 콸콸 흘러내리고, 글을 읽는 선비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고, 보름달 위로 매화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 자료로 살펴보는 한국 교육의 역사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몽당 한항길(1897~1979) 선생과 소명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신성우(1893~1878) 신부는 부천에 교육의 터전을 가꾼 주역이다. 조선시대 아이들의 교과서였던 ‘동몽선습’ 대한제국 때 펴낸 ‘초등소학’, ‘조선어독본’ 등 진귀한 책과 신문, 자료들이 가득하다.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노년의 관람객에게 반가운 공간도 있다. 낡은 나무책상과 걸상, 빛바랜 태극기와 하얀 분필이 놓인 칠판, 교실 한가운데 놓인 난로 위에 도시락이 올려져 있다. 겨울날 초등학교 교실의 정겨운 풍경이다. 그 옆에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이 그려진 놀이터도 있다. 50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어떤 교복을 입었을까. 교육박물관에서 체험해 볼 수 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걸려 있고, 그 앞에 ‘학교종’이라는 악보가 펼쳐져 있다. 1961년에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 ‘사회생활 3-1’은 부천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표지에 스케치북을 든 남녀 어린이 뒤로 분홍빛 복사꽃이 핀 과수원과 멀리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보인다. 부천 소사의 명물이 봉숭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부천에 산업단지가 많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역사 자료다. 전시실에 마련된 옛날 학용품을 판매하는 문방구 속을 들여다본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 현재와 과거의 교실 풍경을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부모들도 즐겁겠다. ■ 자기를 통해 엿보는 유럽의 귀족문화 자기는 본래 중국과 조선에서만 제작할 수 있는 고급기술이었다. 이 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자기산업은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한다. 유럽에서 중국식 백색자기를 최초로 개발한 독일의 마이센, 금채 장식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프랑스의 세브르, 본차이나를 개발해 자기역사에 획을 그은 영국의 로열 우스터, 덜튼, 헝가리의 헤렌드,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등 각국의 특징이 담긴 자기와 유명 크리스털을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18세기부터 근대까지 유럽 각국의 화려했던 자기 안에 담긴 상징적인 문양들, 라퐁텐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등 유명 동화와 이야기가 표현된 유물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유물을 부천에 기증한 복전영자 관장과 유물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으면 유럽자기실은 더욱 흥미로운 공간이 된다. 세상에 여섯 점만 있다는 새도 만난다. 독일의 자기회사 마이센에서 만든 6마리의 새 중에서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나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자기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면 유럽자기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마련이다. ■ 부천의 역사와 만나는 옹기관 옹기관은 조선 말부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에 숨어 살면서 항아리 질그릇, 질화로, 시루 등을 만들던 마을인 ‘점말(店村)’에 터를 두고 있다. 부천향토역사관에서 부천의 역사를 먼저 살펴야 옹기가 더욱 잘 보인다. 옹기 가마터가 있던 여월동 점말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이으며 신앙을 지킨 곳으로 1980년대까지 옹기를 굽던 터전이다.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옹기의 역사, 옹기제작 과정 그리고 질그릇, 오지그릇 등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만나볼 수 있다. 옹기에 담긴 이야기도 풍부하다. 표면에 십자가를 그린 옹기가 눈길을 끈다. 천주교 신자임을 알린 표식이다. 보통 뚜껑 안에 표시했는데 대담하게도 바깥에 그려 넣은 장인의 용기가 놀랍다. 가택신을 모시는 데 사용한 옹기도 눈길을 끈다. 옹기에 하얀 버선이 그려져 있다. 장을 담글 때 해로운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흥미로운 유물이다. ■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소설 ‘대지’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 여사를 기념하는 부천펄벅기념관과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인 국궁을 소재로 한 부천활박물관도 부천시박물관 소속이다. 공간적으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세 곳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부천활박물관과 펄벅기념관도 책임지고 있는 김대중 관장의 발언에서 부천시박물관의 밝은 전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직원들은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박물관,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는 박물관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 2023년은 시 승격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부천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알리는 역사박물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4. 안산 ‘성호박물관’

실학의 거목 이익 선생 ‘평범한 일상 위대한 업적’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역사문화와 첨단산업의 도시 안산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산은 성호가 두 살 때부터 83세로 별세할 때까지 평생을 살았던 고장이다. 안산시는 한국 실학의 거목인 성호 이익 선생의 거룩한 삶과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향토사학자들과 이익의 후손인 이돈형 선생의 유물기증에 힘입어 2002년 5월에 성호공원 내에 ‘성호기념관’을 건립한다.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알리던 성호기념관은 2020년 2월에 ‘성호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02년에 문을 열었으니 2022년은 개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물관 입구에 동으로 조각한 커다란 책이 있다. 성호 이익의 실학 정신을 보여주는 ‘육두( :여섯 마리 좀 벌레)’란 글이 새겨진 조각상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시대의 좀 벌레는 무엇일까? ■ 성호 이익, 안산이 낳은 위대한 개혁 사상가 성호 이익은 조정에서 서인들이 남인을 몰아낸 경신환국(1680)으로 평안도 운산에서 유배를 살던 매산 이하진과 안동 권씨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이익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안산 첨성리로 낙향했다. 몸이 매우 약해 10세에 비로소 둘째 형 이잠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익은 자신을 가르친 둘째 형 이잠이 장희빈을 옹호하다가 죽임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육영재’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며 지냈다. 육영재는 ‘동국진체’를 개발한 셋째 형 옥동 이서(1663~1723)의 서재다. 미수 허목을 사숙하고 반계 유형원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은 이익은 자신도 좀 벌레와 다름없다고 자책하다가 손수 꿀벌을 치고 닭을 기르며 채소를 가꾸어 ‘사농합일(士農合一)’을 실천했다. 이익은 제자들에게 학문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옛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의문을 가져라,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의 탐구에 힘을 쏟아라” 권철신, 안정복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역사와 경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 2층 상설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성호 이익 선생의 일대기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전체를 살펴보면 이익 선생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우리에게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상설전시관은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주제로 가전된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실 입구에 쓰인 “21세기 성호에게 길을 묻다”란 글귀가 성호박물관의 지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성호 이익의 아버지 매산 이하진이 1680년 무렵에 쓴 10첩 친필의 ‘천금물전(千金勿傳)’은 천금을 주더라도 남에게 이 책을 주지 말라는 뜻을 가진 서첩으로 보물이다. 서체도 빼어나지만, 17세기 문인들이 어떤 물건들은 아끼고 즐겼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품격이 느껴지는 거문고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된 이 거문고는 ‘옥동금’을 비롯해 무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졌다. 옥동(玉洞)은 이익의 셋째 형님의 호다. 형님이 연주하는 거문고 선율을 듣고 성호 자신도 연주해 보았을 것이니 형제의 손때가 묻은 유물이다. 거문고 아래 놓인 거울에 비치는 글은 거문고 뒷면에 새긴 글이다. “거문고의 내력이 흥미롭습니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벼락을 맞아 고사한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 장인 문현립에게 제작했다는 사연이 적혀 있지요. 거문고 위에 있는 악보는 한글로 된 것입니다. 둘째 형님 이잠은 성호 선생에게 학문을 가르친 분이고, 셋째 형님 옥동 이서는 ‘동국진체’라는 이름을 얻은 서예가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성호의 형제분들도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강민우 학예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물을 보는 흥미를 배가시켜 준다. 한 폭의 자그마한 산수화에도 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이것은 퇴계가 강학한 ‘도산서원’을 그린 그림입니다. 왜 ‘도산서원도’가 이곳에 걸려 있을까 궁금하시죠. 성호의 학문적 계보는 형님 이잠을 거쳐 미수 허목, 한강 정구, 퇴계 이황으로 연결됩니다. 퇴계를 몹시 존경했던 이익은 1751년 이웃에 살던 표암 강세황에게 도산서원을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도산서원도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이 성호의 부탁을 받고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왼편에는 이러한 사연을 담은 강세황이 쓴 발문이 있다. 콩죽이 놓인 작은 상이 눈길을 끈다. 콩죽, 콩나물, 된장은 성호가 즐겨 먹은 음식이다. 검소하게 생활한 성호의 모습이 그려지는 전시물이다. ‘성호사설’을 보면 성호는 손수 닭을 기르고 꿀벌을 치고 남새밭에 채소를 길러 먹었다. 글을 읽으면서 농사를 짓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상설전시실 중앙을 차지한 것은 성호 이익의 사상이 담긴 ‘성호사설’ 세 권이다. 책 뒤에 ‘성호사설’의 내용인 ‘천지문’, ‘인사문’, ‘만물문’, ‘경사문’, ‘시문문’이 새겨져 있고, 선생의 말씀도 새겨 놓았다. “지극히 천한 퇴비와 지푸라기도 밭에서 곡식을 기르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글을 잘 보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성호는 가난한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학문의 주제로 삼았다.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과 고민을 저술로 남겼다. ■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 사대부가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품위가 느껴지는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기증유물로 꾸민 공간에서 만나는 유물은 붓걸이와 등잔, 촛대, 안경집, 주전자, 장식함 등 소품들이지만 품위가 느껴진다. “2002년 개관 이래 2천800여점의 유물을 수집하였습니다. 그중 절반이 넘는 1천500여점이 기증유물입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좋은 박물관을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분들의 성함을 새겨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소장유물전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가 진행되고 있다. 진주 유씨 가문에서 기증한 360여점의 유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진주 유씨, 안산에서 꽃피다’는 400여년 전 선조대부터 안산에 터를 잡은 이 가문이 경기 남인의 명가로 발전하는 과정과 해암 유경종 등 가문의 인사들이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성호학이 후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2020년 파평 윤씨 좌찬성공파 문중에서 기증한 유물 580여점을 바탕으로 펴낸 자료집 ‘파평 윤씨, 가문의 기록’은 안산에 터전을 두었던 한 가문의 내력을 오롯이 살필 수 있다. 영상실에서 성호 이익의 학문의 세계를 살펴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영상물이라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기가 쉽다. “영상을 보고 전시관을 관람하거나,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서 영상을 봐도 좋습니다. 이곳에 잠시 쉬면서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도록 꾸몄지요” 상설전시실 입구에 있는 창문에 ‘성호선생 묘소’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유리창에 왜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곁에 있던 문화해설사가 까닭을 알려준다. “저 길 건너편을 보세요. 성호 선생님 묘소가 보이지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길 건너편 언덕 푸른 소나무들 사이로 무덤 하나가 보인다. 성호 선생이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후학들을 굽어보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 공간이다. 지하 1층의 체험전시실은 묵향 가득한 상설전시실과 달리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성호 이익과 관련한 체험전시를 하는 곳이다. 탁본을 비롯해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손발, 귀와 코까지 오감을 통해 아이들이 즐기며 배우도록 구성한 것이 돋보인다. 평일이라 그런지 어린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단체로 관람을 온 모양이다. 아이들의 교육에 상당한 공을 들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성호박물관은 ‘성호학의 원형과 글로벌 인문학으로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오는 10월13일부터 3일간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성호박물관은 안산을 넘어 대한민국 인문학의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3. 성남 갤러리 우촌

별이 쏟아지는 숲으로 가요. 별을 바라본적이있는가? 여름밤 아이와 잔디밭에 누워 여름 별자리를 찾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별자리를 찾는 환상의 여행지는 갤러리 우촌(관장권영한)이다. 성남시 수정구 적푸리로에 터를 잡은 갤러리 우촌은 신구대학교식물원에 있다. 대왕저수지와 인릉산이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서 ‘2022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식물원 미술놀이 뜰, 별 숲’이 7월 24일까지 주말마다 진행된다.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인 ‘별 숲’은 여름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꽃과 나무로 상상하는 놀이로 ‘별을 세다’, ‘별을 따다’, ‘별을 그리다’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초등학생과 보호자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의 주제는 ‘색깔 놀이’였다. 영상으로 펼쳐지는 식물원의 사계를 보니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안현정 학예사를 따라 ‘2022 기획사진전, 영국·아일랜드 식물원’이 열리고 있는 전시실로 향했다. “이 전시는 환경부의 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신구대학교(총장 이숭겸) 구성원들이 직접 탐방한 세계의 식물원들을 소개하는 기획인데, 이번이 일곱 번째로 열리는 것입니다. 영국과 아일랜드 식물원은 시민문화 그 자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표 식물원 20곳을 전시하고 있는데, 1759년에 개원한 잉글랜드의 큐왕립식물원과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왕립식물원이 특히 유명하지요. 큐왕립박물관은 5만 종이 넘는 다양한 식물을 보유한 곳으로 지난 2003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답니다” 전시 작품을 둘러보면 자연스레 영국의 빼어난 정원문화에 감탄하게 된다. 인간이 정성을 들여 가꾼 정원은 ‘작은 에덴동산’이다. 세련되고 우아한 영국 정원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인간의 욕심으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회복을 꿈꾸게 한다. ■ 자연을 배우고 가꾸며 인재를 기르는 곳 갤러리 우촌은 신구대학교 설립자 고 우촌(于村) 이종익 박사가 1965년에 설립한 신구농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이곳 약 82만5천㎡ 부지에 나무를 심고 농장을 경영하던 이 박사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아우르는 학원설립을 목표로 세운다. 그러나 이 일대가 자연녹지보호 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농장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 신구대학교 개교한 1974년 이후 이곳은 도시원예과와 축산과의 실습농장으로 활용된다. 매년 국화전시회를 개최하고 우수한 원예 산물과 축산물을 생산하던 실습농장에 이숭겸 총장이 자동화된 대형 하우스와 유리온실을 건축(1993)하면서 성남시와 식물원의 설립을 구상한다. 오랜 준비와 정성을 쏟아 2003년 5월에 개원한다. 이듬해 6월, 식물유전자원의 증식과 재배시설을 갖춘 신구대학식물원을 학교수목원으로 산림청에 등록하고 전문인력 육성과 국내외 식물자원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야생화 심기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조경가든대학, 초등학생 대상으로 녹색체험교실을 운영하는 등 대학에서 운영하는 식물원이라는 정체성과 선진기법을 반영하는 교육을 진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곳에서 이론과 실기를 익힌 학생들이 전국의 식물원과 수목원에서 활약하고 있다. 식물생태연구소를 열어 식물유전자원과 정원사업을 벌이면서 멸종위기식물 11종(단양쑥부쟁이, 가시연꽃 등)의 가치를 알리고 지키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공간 2010년에 문을 연 ‘숲전시관’은 식물문화와 식물원 문화 확산의 의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식물 관련된 다양한 전시와 음악회를 비롯한 문화 행사를 열어 ‘갤러리 우촌’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숲전시관과 갤러리 우촌은 자연과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갤러리 우촌은 2016년 6월에 등록 미술관으로 재정비하여 식물원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의 식물원을 사진으로 소개하는 기획사진전, 신구대학교 학생들의 사진, 그래픽 디자인, 섬유디자인, 화훼디자인 등 다양한 창작물을 전시하고 있다. 경기도와 성남시의 지원을 받는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도 꾸준히 진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았다면 이제 식물원 곳곳에 조성된 20곳의 주제 정원을 탐방할 차례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며 관람객을 맞이하는 정원의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온실 공간인 ‘에코센터’의 독특한 외관은 나뭇잎에 맺힌 이슬방울 모양을 본뜬 것이다. 굴거리나무, 먼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와 같은 제주도와 남해 섬에 자라는 나무들이 무성하다. 새우란, 자란, 털머위와 같은 화초가 계절마다 꽃을 피워 사계절 푸른빛과 향기를 선사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이 곤충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곤충생태관’은 사슴벌레, 하늘소, 장수풍뎅이가 애벌레로부터 성충으로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옛 정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정원’은 담장과 장독대, 펌프 우물을 중심으로 봉숭아꽃, 접시꽃, 과꽃, 수국 같은 정겨운 꽃들이 피어나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여러 가지 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정원, 음식 재료와 주방기구 조형물을 이용한 미각정원, 허브향이 싱그러운 후각정원으로 이어지는 ‘오감정원’도 빠트릴 수 없다. 허브정원을 채소정원으로 바꾸면서 시각(여러 색깔의 잎), 청각(다양한 소리), 후각, 미각, 촉각까지 오감을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우는 ‘어린이 정원’은 이름도 예쁜 나비정원, 잠자리정원, 달팽이정원, 색종이정원, 미로원으로 구성된 식물정원이다. 나비, 잠자리, 달팽이 같은 곤충 모양으로 조성한 정원에서 색채와 다양한 포장재료를 활용하여 자연을 즐기며 배울 수 있다. ■ 두꺼비와 라일락과 별자리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식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채취 탓이지요. ‘멸종위기식물원’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과 고산식물 등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동물과 식물이 섞여서 살아가는 ‘습지생태원’도 찾아보세요. 어리연꽃, 부들, 개연꽃, 물달개비, 물옥잠화처럼 물에서 자라는 수생식물과 동의나물, 부처꽃, 분홍 바늘꽃 같은 습지 식물과 달팽이, 개구리, 두꺼비 같은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환경부인증 프로그램인 ‘습지에서 숨 쉬는 작은 생명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요” 안내에 따라 멸종위기식물원과 습지생태원을 둘러 보며 생명의 신비에 감동한다. ‘약초원’에서 감초를 비롯하여 구기자, 당귀, 지황 등 약재로 쓰이는 약초들의 생김새를 살펴보고 눈을 감고 냄새를 맡으며 이름을 기억해본다. 우리나라에 약 800여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단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나무관찰원’에서 소나무를 비롯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메타세쿼이아, 가래나무, 회화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귀룽나무 등 우리가 자주 보는 나무의 특징을 비교하고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수목원 끝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라일락 품종 전시원이 있다. 수수꽃다리속(Syringa)에는 세계적으로 2천500여 품종이 육종되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전시원에는 우리나라 자생 라일락부터 300여 종류의 품종이 자라고 있다. “미술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대왕저수지는 두꺼비 서식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두꺼비들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이숭겸 총장이 에코센터 뒤편 고층습지원을 대체 서식지로 만든 것을 기념하여 두꺼비 상을 설치합니다. 식물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두꺼비와 청동 두꺼비 분수광장은 두꺼비를 지키려는 신구대학교 구성원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지요. 다행히 지금은 장마철이 되면 어린 두꺼비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이 시기에는 일부 산책로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두꺼비들이 보금자리를 찾아가기 좋도록 군데군데 통로도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식물원과 미술관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유년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아이들과 함께 꽃과 별자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2.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

자연과 인간의 상생, 착한 농법 생생체험 양평은 1973년 팔당댐이 준공되면서 수도권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와 맞닿은 지역인 까닭에 여러 가지 규제를 받았다. 양평군은 대안으로 지역 전체를 환경농업지구로 설정하고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높이려고 노력해왔다. 이것이 2007년에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배경이다. 양평군은 다양한 공립박물관을 보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친환경농업박물관을 비롯하여 양평곤충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몽양기념관, 화서기념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세미원 연꽃박물관까지 모두 7개나 된다. ■ 생태와 환경,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천년 고찰 용문산 입구에 있는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관장 진유범)은 외관이 한옥이다. 주변 자연환경과 어울리도록 설계한 모양이다. 양평군은 1996년에 이미 ‘양평향토민속관’ 건립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2006년에 이름을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으로 바꾸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물관은 양평의 역사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과 양평의 친환경농업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친환경농업실’로 구성하게 된다.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병하여 양평군이 되었다. 양평군의 상징은 수령 1200년 된 용문사 은행나무다. 2층 역사실에서도 용문사 은행나무와 마주한다. 거대한 은행나무 옆으로 난 길을 통해 양평의 역사로 들어가는 형식이 재미있다. 여기서 ‘용문산’을 노래한 옛 문인들의 한시(漢詩)를 만난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택당 이식은 용문사를 이렇게 노래한다. ‘사흘 동안 산행에 지루한 줄 몰랐나니/푸른 절벽 붉은 나무들 들쭉날쭉한 길/용문사는 구름 자욱한 곳 어딘지 모르겠는데/ 골짜기엔 요란하기 빗줄기 쏟아지네’ 역사실에 들어서기 전 작은 방에서 용문사 은행나무를 다시 만난다. 영상으로 은행나무의 사계를 보여주어 대자연의 위대함을 전달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양평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양평역사실’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양평 상여 회다지 소리’와 만난다. 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중에는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꽃가마’로 불렸던 상여도 있다. 양평의 고찰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 같은 사찰의 전각과 불교 유적을 이미지와 영상물로 전달하는 공간도 있다. 이를 통해 과거 양평의 불교가 융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증국사 태고 보우가 양평을 대표하는 승려인데, 고려 말 보우가 국사로 추대되면서 양평이 군으로 승격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안내하던 김석원 학예사가 양평 의병투쟁의 역사를 소개한다. “양평은 우리나라 구국 항쟁의 본거지였습니다. ‘양평의 정신’은 바로 위정척사의 상징인 화서 이항로 선생과 면암 최익현 선생을 비롯한 ‘화서학파’ 인물들이 외세에 맞서 의병투쟁을 벌였던 데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 장군도 화서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분이죠. 1895년 전국 최초의 의병부대(을미의병)가 양평 출신인 이춘영과 김백선 등이 지휘한 ‘지평의진’입니다. 영국 기자 매켄지가 1907년 양평에서 촬영한 이 사진을 통해 당시에 일제와 맞서 싸운 양평 의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실려 우리에게 익숙한 사진의 현장이 바로 양평이다! ‘의로운 고장 양평’의 전통은 항일무장투쟁으로, 광복 이후에는 양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좌우합작운동과 통일정부수립운동으로 이어진다. ■ 양평, 친환경농업의 중심 수레바퀴처럼 생긴 기구가 있다. ‘용골차’는 장정들이 발판을 딛고 돌려서 낮은 곳의 물을 퍼 올리는 기구다. 친환경농업실에서 지게에 실린 ‘장군’도 만날 수 있다. 장군은 오줌이나 인분을 담는 통인데, 나무 사기 백자로 만든 장군도 전시되어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료 대신 사람과 소, 돼지의 오줌과 똥을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선의 농부들이 참고했던 수백 년 된 농사 서적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에 펴낸 농사 관련 서적들도 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를 통해 농사를 제일로 여겼던 우리 전통문화를 새삼 확인한다. 근현대에 농법이 크게 변화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친환경농업과 화학농법을 비교하여 안전한 먹거리,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농법의 중요성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다. 하지만 땅이 병들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인간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기질 원료를 이용하여 병원균 억제 미생물과 발효 미생물을 키워 농사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양평은 친환경농업의 중심에 있다. 왕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양평쌀을 비롯해 양평한우, 느타리버섯, 신선쌈채, 부추, 수박, 딸기, 참비름나물, 취나물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 마당에 콩이나 메밀을 가는 맷돌, 곡식을 담는 함지박, 곡식을 빻는 절구 같은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형으로 양평의 대표 친환경 농업 마을인 ‘용문면 화전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는 조선 중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지’에 임금님 진상품으로 용문산 산나물이 최고라 기록을 바탕으로 기획된 축제다. 고사리, 고비, 취나물, 참나물은 “보약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물관도 양평 산나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도 인기가 높았지요. 이때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미래를 열어갈 씨앗을 뿌리는 곳 1층 미지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전 ‘백년 씨앗 천년 틔움’전은 4월 21일부터 7월 3일까지 전시된다. ‘농부의 씨앗, 희망을 이야기하다’를 시작으로, ‘백년씨앗’ 구역과 ‘천년틔움’ 구역으로 구성됐다. ‘농부아사(農夫餓死 ) 침궐종자(枕厥種子)’라니 외세에 맞서 싸웠던 양평 의병의 각오처럼 결연하다. “농부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봄에 뿌릴 씨앗을 먹지 않는다” 주먹이 들어갈 만큼 둥근 구멍이 난 박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 박은 소중한 씨앗을 보관하는 그릇이다. 기획전의 핵심은 토종 씨앗 중 총 234점의 공개다. 양평에서 수집된 토종 밭작물 씨앗 119점, 양평에서 수집 및 시험 재배된 토종 볍씨 115점이다. 박물관은 토종 씨앗의 가치를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하나, 기후변화에 적응한 씨앗. 둘, 깨끗하고 건강한 먹거리. 셋, 식량 안보를 지키는 생명줄. 넷, 새롭게 피어나는 맛. 다섯, 농업계의 반도체, K-토종 씨앗. 이처럼 토종 씨앗은 건강하고 맛있는 미래 먹거리이자 농업을 이끌어갈 소중한 존재다. 토종 씨앗을 지켜온 양평주민들의 자랑스러운 얼굴과 이름도 만날 수 있다. ■ 박물관, 배움과 소통의 마당 무엇보다도 반가운 사실은 박물관이 지역민들의 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박물관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의 모든 학생이 박물관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은자 운영실장은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 특히 관심이 많다. “지난 4월 23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 양평문화단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어린이 양평문화단은 농업생활사 기획전시와 연계해 지역주민의 농업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올해는 토종자원과 관련된 문화체험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요. 한 기수 당 30명씩 총 90명이 수강하는데, 1회차는 박물관에서 토종 씨앗을 주제로 다룬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를 관람하고, ‘24절기 달력 꾸미기’를 진행해요. 알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24절기의 의미를 배웁니다. 2회차는 용문성당 안에 있는 ‘나자렛집 생태공동체 텃밭’을 방문해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고 토종 씨앗을 심어보는 체험이에요. 3회차는 토종 씨앗을 활용한 ‘씨앗 강정 만들기’ 체험입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지요. 참, 박물관 부설 ‘자연요리연구소’와 ‘다도체험장’의 활용도도 매우 높습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1. 남양주 ‘모란미술관’

로댕의 열정 결정체 ‘발자크’와 마주하다 남양주시 화도읍 문안산 모란봉 아래 자리를 잡은 모란미술관(관장 이연수)은 푸르름에 싸여있다. 파란 하늘빛을 닮은 미술관 대문은 페루 출신의 세계적 작가 알베르토 구즈만의 작품 ‘문’이다. 5월 19일부터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ONNATURE)’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몇 걸음을 걷지 않았는데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미술관 중앙에 초대전이 열리는 본관이 있고, 본관 왼편에 연노랑 색깔의 수장고와 ‘노래하는 탑’이 서 있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높이 27m의 이 콘크리트 탑은 고(故) 이영범 건축가의 작품인데, 2003년 미국건축가협회 뉴욕지부로부터 디자인상을 받았다. ‘노래하는 탑’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상 ‘발자크’가 전시돼 있다. 로댕은 1898년에 대문호 ‘발자크’를 완성하고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이 비웃는 이 작품,... 기를 쓰고 조롱하는 이 작품은, 나의 필생의 역작이며 미학적 동력이다. 이것을 창조한 날부터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곁에는 광화문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을 조각한 고 김세중(1928~1986)의 조각상 ‘피에타’가 있다. 탑에 새겨 놓은 고 이경성 평론가의 ‘모란탑의 존재감-시심의 영토’라는 글을 통해 탑을 비스듬히 세운 작가의 뜻을 가늠해본다. ■ 조각의 숲에서 ‘자연하다’ 본관으로 이어진 산책로에도 ‘가족’이나 ‘평화’ 같은 정겨운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놓인 최만린의 ‘태(胎)’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율동적이다. 속이 드러난 고목처럼 카페 곁에 서 있는 작품은 전국광의 ‘積(적)-만남의 장’이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녹음에 둘러싸인 미술관의 풍경에 빠져든다. 김유나 학예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를 둘러본다. “작가는 예술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전시회 주제가 ‘자연’이란 명사와 ‘하다’라는 동사를 결합한 ‘자연하다’입니다. 미국과 인도 등 세계 곳곳에 캔버스를 세워 놓고 수년을 기다렸다고 해요. 자연이 빚어낸 작품들이지요” 커다란 캔버스를 붉게 칠한 작품이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어지는 공간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온통 검은색이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표면이 거칠다. 군 당국을 설득하여 허가를 받고 사격장에 캔버스를 설치하여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긴 조각을 캔버스 위에 펼쳐 붙이고 붉은색과 검은색을 입힌 것이라 한다. 작품 옆에 부착된 작가의 말이 묵직하다. “포가 그린 그림이다. ...폭력의 역사도 자연이다. ...갈등과 야만의 역사도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이다. 군 당국의 허가를 받는데 3년, 작업을 하는데 3년을 집중했다. 3년을 침묵했다. 절망을 길게 사유했다. 검정했다. 빨강했다” 작가의 작업 방식만큼이나 해설도 파격적이다. 여러 해 동안 캔버스를 바닷물 속에 담가 두거나, 바람 부는 들판에 세워 두거나, 모래밭에 묻어두었다가 꺼내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말대로 ‘자연이 그린 그림’이다. 강원도 인제 숲속에, 제주도 유채밭에 캔버스를 세웠던 작가는 모란미술관 정원에도 캔버스를 세웠다. 앞으로 2년 동안 나무 그늘 밑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연수 관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김 작가는 모란미술관을 이렇게 소개한다. “삶과 죽음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곳, 있음과 없음이 같이 있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 삶과 죽음, 자연을 노래하는 조각 전문미술관 야외전시장은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나무 아래로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있는 정원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뒷짐을 진 노인이 염소 가족을 이끌고 장터로 향하는 모습을 조형한 백현옥의 ‘장날’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염소를 잡고 놀다가 쓰러뜨려 몇 차례 다시 세웠어요. 그래도 관장님은 울타리를 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세요”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최만린의 ‘095-9’는 대지가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추상성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한참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작품도 있다. 김영중의 ‘사랑’이 그렇다. 임영선의 ‘사람들-오늘’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떠밀려가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1990년 4월에 문을 연 모란미술관의 개관전 주제는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새 표현 전’이다. 이후 줄곧 조각의 현실을 진단하며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2020년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의 주제는 ‘조각의 아름다움’이다. 조각으로 시작해 다시 조각이다. 1992년에 열었던 ‘국제조각심포지엄’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네덜란드의 마크 브루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페루 출신의 알베르토 구즈만 등 국내외 작가 9명이 한 달 가깝게 머물면서 미술관 마당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는 행사였다. 1995년에 ‘모란미술대상’을 제정하고 1997년부터 ‘모란조각대상’으로 장르를 특정해 격년제로 2007년까지 시행하여 역량 있는 조각가를 발굴 지원하였다. 개관 25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건축과 설치, 조각을 아우르는 ‘모란 폴리 2015’ 국제공모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모란미술관은 한국 조각계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며 질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일을 주도한 인물 역시 이연수 관장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30년 전 이처럼 외진 곳에 미술관을 세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결혼하고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혼자 돌아다닌 곳이 화랑이었어요. 어느 날 한 작가의 그림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지요. 그때 당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에게 나중에 돈 생기면 화랑 하나 차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관장의 남편 고 홍석웅 회장은 ‘민주화 운동가의 묘지’로 널리 알려진 한국 최초의 사설 공동묘지인 모란공원을 경영하며 부인 이연수 관장이 모란미술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도록 뒷받침한 인물이다. 이 관장은 지난 32년 동안 ‘돈 먹는 하마’인 사립미술관을 꿋꿋하게 지켜온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남편의 든든한 후원과 이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사랑이 지금까지 오게 한 힘인 것 같아요” ■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편안한 미술관 이연수 관장은 국내 대표 조각가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돈이 없는 작가가 외국에 갈 일이 생기면 비행기 표를 끊어주고, 차가 없는 작가에게는 남편의 중고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모란미술관은 조각계에서 어머니가 계시는 친정처럼 편안한 곳이 됐다. 고 김세중 조각가의 아내 김남조 시인,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낸 현각 스님 등 문화예술인은 물론 종교인들과도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이 관장은 15년간 모란미술관 고문을 맡아준 고 이경성(1919~2009) 평론가와의 특별한 인연에 감사한다. 스승의 역할을 해 주던 이경성 선생이 별세하자 선생을 미술관 옆 모란공원 묘지에 모셨다. 최태만·김종길·김성호 등 실력을 인정받는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이 이곳을 거쳐 갔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이 관장은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숙명여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경기도박물관협회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으로도 활동한 ‘여걸’이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이 관장의 태도와 말씨는 무척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는 작품을 살 때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본다고 한다. “고 이경성 선생님이 알려줬어요. 작품이 곧 사람이라고. 작품 속에 작가가 녹아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을 봐야 합니다. 3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보니 작품은 곧 작가의 인성 그 자체더군요” 미술관을 거닐며 조각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홀가분해진다. 자연의 품에 안긴 모란미술관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위로와 휴식의 공간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0. 포천역사문화관

‘포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신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명성산과 산정호수를, 광릉 국립수목원이나 한탄강을, 금수정을 비롯한 ‘영평 팔경’을, 이동막걸리나 이동갈비 또는 한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주상절리로 유명한 한탄강을 품은 ‘포천(抱川)’은 구석기시대부터 1950년 한국전쟁 전적지까지 역사문화유산이 매우 풍부한 도시다. 그러나 포천시를 즐겨 찾는 여행객은 물론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지역민들도 포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포천은 땅의 크기가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서 가평, 양평에 이어 세 번째에 속한다. 그러니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시 전체를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고구려는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는데, 물이 많은 고을이란 뜻이다. 신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 ‘견성’이라 부르다가 ‘청성’이라 했고, 고려는 개성의 배후 지역으로 관리하며 ‘포주’라고 불렀다. 지금의 지명인 포천으로 부른 것은 조선 태종때인 1413년이다. 포천의 ‘천’은 한탄강을 가리킨다. 한탄강 줄기를 중심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의 문화가 모두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의 역사유적도 풍부하다. 포천시에는 총 84건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국가지정문화재가 10건,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23건, 등록문화재가 2건, 포천시 향토유적이 49건이다. ■ 크진 않지만 알찬 박물관 “자연이 아름다운 옛 선비들의 고장” 포천을 제대로 만나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2015년 7월에 개관하여 2017년 7월에 경기도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한 ‘포천역사문화관’이다. 장보정 학예연구사의 표현처럼 포천역사문화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내용이 꽤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상설전시실은 포천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150만 년 전 포천에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돌도끼와 신석기인들이 사용한 ‘어망추’와 옷을 지을 때 사용한 ‘가락바퀴’와 마주한다. 유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것이다. 유리관에 돌조각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용암이 분출될 때 생성된 흑요석인데,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어 신석기인들에게 최고의 도구였지요. 포천 한탄강 일대에서 약 2만 점에 달하는 구석기 유물이 쏟아졌다고 해요” 포천이 아득한 옛날부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기법이 흥미롭다. 청동기인들은 고인돌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무덤을 잘라 부장품이 보이도록 전시한 것이다. 온전한 모습을 갖춘 형이상학적인 ‘그릇받침’은 원삼국 시대의 유물이다. 물론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의 유물도 있다. 기와 조각에 ‘마홀수해공구단’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구려가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에요. 백제가 경기 북부지역을 점령했던 5세기 중반 때 처음 쌓기 시작한 반월산성(사적 제403호)은 포천이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철로 만든 도끼와 낫, 그리고 숫돌은 반월산성에서 출토된 것이죠” 반월산성은 포천에 있는 10개의 산성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구읍리 군내면사무소 부근에 있는 반월산성은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백제 한성이 함락된 후 6세기 중반에는 고구려에서 활용한다. 포천에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부하 왕건과 싸우다가 패해 도망치다가 통곡했다는 명성산(울음산)을 비롯해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옆이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인물들을 여럿 배출한 고장답게 포천에는 서원이 4개나 있다. 옥병서원에는 사암(思庵) 박순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그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로 활약한 백사 이항복도 포천의 인물이다. 백사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화산서원은 1659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용연서원은 한음 이덕형과 용주 조경을 모신 곳인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의 하나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신이자 청백리이며 우정의 대명사인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포천의 자랑이다. ■ 살아 숨 쉬는 예술과 충절의 정신 “영중면 양문리에 위치한 금석문은 우리나라에 4개 밖에 없는 한글비입니다. 1686년 낭선군이 제작한 이 비석은 제작배경이 정확한 것으로 종친이 만든 유일한 금석문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비인 이윤탁의 한글영비(1536년) 이후에 제작된 이 비는 국어 발달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유물입니다” 한글비 탁본이 시선을 끈다. 장 학예사가 비석에 새겨진 글 뜻을 풀어준다. “선조의 서자 인흥군 이영이 묻힌 곳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씨인데 현대어로 옮기면, ‘이 비가 매우 영험한 힘이 있으니 어떠한 생각으로라도 사람이 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한글 비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라고 한다. 봉래 양사언의 멋진 초서를 비롯해 임금이 친히 쓴 어필도 있다. ‘인평대군치제문비’는 인조의 셋째아들이자 소현세자와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 이요(1622~1658)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고 위로하고자 신북리에 세운 비다. 효종과 숙종, 영조와 정조 네 분 임금의 글씨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점이 특별하다. 인평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두 형이 풀려나면서 대신 볼모로 가야 했지만, 돌아와서는 사은사로 4차례나 청나라를 왕래하는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박물관에서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현장에 찾아가서 비문을 마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 안목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이나 벽암 이벽(1754~1785)처럼 특별한 인물도 만날 수 있다. 포천 화현면 출신인 이벽은 처남 정약전, 정약용 형제에게 천주교와 서양의 선진문물을 전해준 인물이다. ‘토정비결’로 더욱 유명한 이지함은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며 한반도의 중앙인 포천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활동을 권장하여 부유한 고을로 만들 방안을 조정에 제시한 선각자이다. 포천에는 보수의 상징인 인물도 있다. 관복을 입은 한 사람이 정면을 응시한 초상화가 조금 낯설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부릅뜬 눈이 이 시대를 꾸짖는 듯하다. 포천면 신북면에서 태어난 면암은 ‘바른 것을 지키고 옮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다 대마도로 유배되어 단식투쟁을 하다 1906년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 최면식도 아버지를 이어 의병으로 투쟁하였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최익현은 채산사에 모셔져 있고, 영정은 청성사에 모셨다. 전시유물은 현대로 이어진다. 사진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1960~70년대의 포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 ‘사통팔달’ 한반도의 중심도시를 알리는 박물관 포천역사문화관은 2015년 개관한 후 ‘봉래 양사언과 형제들’, ‘나의 보물’이라는 특별전을 열었고, 지난 2021년에는 ‘포천 옛길, 전철로 잇다’라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조선 6대로 가운데 제2대로인 경흥대로(경흥길)를 중심으로 포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렸으나 코로나19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홍보도 하지 못했다. 옛길을 주제로 한 기획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지도상으로 보면 포천은 한반도의 정중앙이에요. 포천선(전철7호선) 철도가 건설되는데 2027년에 개통될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 맞춘 기획이죠.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포천은 일찍부터 상업의 중심지였듯이 물류의 중심지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통일시대 한반도의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릉 수목원과 한탄강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은 포천의 자랑이다. 2019년에 개관한 한탄강지질공원센터는 국내 최초의 지질전문박물관이다. 천연기념물인 대교천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와 아우라지 베개용암, 그리고 화적연과 멍우리 주상절리 협곡을 함께 둘러보면 포천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포천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포천역사문화관은 작지만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9. 포천 ‘국립산림박물관’

포천 소흘의 광릉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크낙새와 장수하늘소가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령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해 늘씬한 전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초록의 숲길을 따라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림박물관이다. 산림박물관을 품고 있는 광릉숲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곳으로 500년 이상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최영태) 산하 국립산림박물관은 가운데 정원이 있는 ‘ㅁ’자 모양의 건축이다. 박물관 외벽은 화강암에 백제시대 벽화 ‘산수 무늬 벽돌’을 현대적으로 그래픽 하여 음각한 벽화로 산과 나무, 물과 바위 구름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은은한 나무 향기가 풍겨온다. 1987년 4월5일에 개관한 국립산림박물관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 특별전 ‘광릉숲 속 애벌레들’이 열리고 있다. ■ 즐기고 느끼면서 숲과 나무를 배우는 곳 “우리 산림박물관의 비전이 ‘즐기고 느끼면서 배우자’입니다. 개발 콘텐츠에 정보통계기술을 접목하고 홀로그램 등의 콘텐츠 기술을 활용하여 ‘즐기는 박물관’으로 전시의 방향을 잡았지요. 입구에서 보셨나요? 해설사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두 가지 있는데, ‘산림문화’가 5월부터 12월까지, ‘산림생명’이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됩니다. 숲과 깊이 만나도록 해설사 한 분이 관람객 5명만 안내하지요. 참, 지난해에 우수박물관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정희 실장의 말처럼 ‘관람객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박물관의 정성이 전시실 곳곳에 스며있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살아있는 숲’이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가 앉아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가가서 보니 꿩, 삵, 너구리, 담비 같은 숲속 동물들의 박제도 있다. 아래에 달린 5개의 모니터에서 들꽃과 개구리와 두꺼비 등 숲의 바닥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비친다. 나무 허리에 설치된 모니터 3개에서는 나뭇잎과 꽃과 열매, 새와 나비와 곤충을 보여준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신비로운 모습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어요. 살아있는 나무가 참 굵죠? 이 느티나무는 둘레가 6m가 넘는데, 다섯 그루가 붙어 자란 연리목으로 산림박물관의 ‘상징목’이지요. 경북 안동의 수몰 지구에서 캐낸 것인데 수령이 150년, 키가 18m나 되었다고 해요” 나이테를 활용하여 세계사와 한국사 연표, 한국 산림 연표를 소개한 것도 이채롭다. 산림문화의 전당에는 박물관 건립에 큰 도움을 준 임목육종학자 현신규를 비롯한 네 분의 얼굴과 이력, 사료를 기증한 분들의 이름을 새겼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흥미롭다. 계단 왼편은 국내 수종의 판재로 만든 난간이고, 오른편 난간은 외국 수종의 판재를 전시하여 서로 비교해 보도록 했다. ■ 나무에 새긴 역사, 나무가 만든 우리 문화 제2전시실에서 나무의 모든 것을 만난다. 씨앗들이 가득한 벽에 ‘산림과 인간 생명의 근원인 씨앗’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로 만든 삽이 눈에 띈다. 팔만대장경판은 고려 승려들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온돌모형은 왜 전시했을까? 그렇다. ‘온돌’은 나무가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 문화가 궁금하다면 검색대에서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면 된다. 일제 강점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부족한 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소나무 줄기를 파내 송진까지 수탈해간 일제는 한국인의 기상을 상징하는 백두산 호랑이까지 멸종시켰다. 해방은 되었으나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무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염원은 불타올랐다. 1950년대 전후부터 산림을 가꾸기 시작하여 마침내 푸른 국토를 만들어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한 녹화 성공국가로 세계가 인정한 나라가 된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산림육성기술이 있다. ■ 나무와 친해지는 법 못을 사용하지 않고 끼우고 조립하는 방법이 흥미롭다. 나무를 결합하는 방식이 참으로 다양하다. 나비장이음, 십자걸침턱짜임, 오늬쪽매...옛사람들이 가구를 만들며 개발한 기술에 붙인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널뜨기, 통메우기, 이음·맞춤, 배뭇기 등 뛰어난 전통의 가공기술은 현대 목재 가공기술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무 표면을 다듬는 대패를 비롯해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이 정겹다. 악기는 가문비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오동나무로 거문고와 가야금을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장고의 몸통은 무엇으로 만들까? 역시 오동나무다. 특유의 색과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감나무와 느티나무는 방안을 장식하는 목가구 제작에 애용되었다. 여성들이 사용한 빨랫방망이와 베틀, 물레는 물론 남성들이 사용한 지게와 쟁기 같은 기구도 있다. 나무로 만든 물건 중에서 가장 고급 기술이 필요한 것은 역시 한옥이 아닐까. 한옥 모형은 한옥의 구조와 제작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천연색 옷감이 놓인 공간이 눈길을 끈다. “자연은 온갖 빛깔을 품고 있습니다. 식물의 열매나 잎, 껍질과 뿌리에서 자연염료를 추출하여 옷을 염색했지요. 푸른빛을 내는 쪽을 비롯해 염료로 쓰이는 다양한 재료와 염색된 천을 전시한 것입니다. 옻나무와 황칠나무는 최고급의 천연도료였어요. 옻칠은 도막이 단단하고 광택이 뛰어나 애용되었고, 황칠나무는 금색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해전파 등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해요” 새끼로 꼬아 만든 멍석 위에 나무 조각들이 놓여 있다. 목조기술 체험코너 ‘손과 마음으로 만나는 목재’다. “한옥을 짓거나 전통 목가구를 제작할 때 사용되는 목재 결구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음, 맞춤, 촉매 등의 전통방법으로 목재를 짜 맞추다 보면 옛 장인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정말 그렇다. 나무 조각을 만지며 놀다 보면 자연스레 나무도 저만의 특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사람도 그렇다. 나무들이 서로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듯이 사람들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풀이나 나무처럼 자신만의 향기와 빛깔을 가진 사람이 멋지다. ■ 우리 500년 숲에서 놀자 제3전시실 다면영상관은 산림의 중요성과 생물보전의 중요성을 영상물로 알리는 공간인데, 주제가 ‘500년 숲에서 놀자’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놀면서 즐겁게 숲과 나무와 친해지는 곳이다. 제4전시실 산림생명관은 우리들의 무딘 감각과 생각을 깨우는 공간이다. ‘인간과 식물의 진화’, ‘생태숲 디오라마’, ‘인간과 식물’, ‘인간과 곤충’, ‘인간과 버섯’, ‘위협받는 지구’, ‘국제협력을 통한 다양한 위협에 대한 방지 노력’, ‘광릉숲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영상으로 급격한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감소,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세계가 처한 엄혹한 현실을 만난다. 제5전시실의 주제는 ‘한국의 자연’이다. 광릉숲의 현재 모습을 디오라마와 상호작용식 검색시스템을 통해 보여주고, 광릉숲의 모습을 3D영상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광릉숲 멸종위기야생동물 증강현실로 만나요!’는 흥미 만점의 프로그램이다. 3m 높이의 잎이 풍성한 나무 두 그루와 이끼 낀 바위를 배경으로 한국호랑이와 노란목도리담비와 크낙새를 만날 수 있다. 이정희 실장이 스마트폰을 지정 마크에 갖다 대자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호랑이가 바위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하품하고. 담비가 바위 앞을 달리고, 크낙새는 부리로 나무를 두들기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의 산림문화자산이 얼마나 풍성한지 몰라요. 관람객들에게 산림문화자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시물과 연관된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숲은 역시 걸어야 제맛이다. 국립수목원은 처음 수목원을 처음 찾은 사람을 위한 ‘느티나무· 박물관길’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길을 개발하여 거리와 시간, 걸음 수, 칼로리 소모 정보까지 제공해주고 있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았다면 이제 숲의 매력에 빠질 차례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8. 용인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은 “사람이 하늘”임을 선포한 평등과 자주의 정신이다.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에서 패배했으나 그 정신은 25년이 지난 1919년 3·1운동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이때 꽃 피운 자주정신은 독립투쟁으로 건국운동으로 진화했고, 민주화운동으로 열매를 맺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인의 위대한 역사를 미술작품으로 증언하는 특별한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 ■미술작품과 역사가 만나다 “19세기, 인간의 존엄성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첫 싹이 한반도에 솟아났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면서 이번 근현대사 특별전을 개최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듯이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용인특례시 강남동로 140번길 1-6에 자리 잡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관장 정정숙)’ 입구에 새겨진 글이다. 2019년 6월에 개관한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우리 역사의 현장을 미술작품으로 증언한다. 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은 ‘한반도 평화-거대한 움직임’이라는 작품이다. 두 분 사이에 있는 ‘남겨진 기억-3’(신상철 작)이라는 태극 문양이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1층 상설전시장에서 한국의 근대를 연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3·1만세운동, 5·18민주화운동, 한반도평화와 관련된 미술작품들과 만난다.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초상(박세라 작),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대한 남아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바닥 도장 그림(상하 작)도 있다.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레오다브 작)과 오광선 장군의 얼굴을 액션페인팅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은정 작)도 인상적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땀과 피가 스민 태극기가 전시된 공간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저력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을 들려주듯 북을 맨 사나이가 왼손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엔 북채를 잡고 달려가고 있다. 전정호의 목판화 ‘북춤’이다. 민주화 투쟁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전달력이 강한 판화가 유행했다. 홍성담, 전정호, 이상호, 안한수 화백의 작품을 통해 군부가 짓밟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던 어두운 시대와 마주한다. 권총에 피 묻은 태극기가 시선을 빼앗는다. 배경이 되는 거리는 광주 금남로일 것이다. ‘5월 18일 민주주의를 쏘았다’는 글귀가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 태극기에 싸인 관이 널려 있는 흑백사진은 80년 5월 광주로 데려가 준다. 상설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미술관을 설립한 김성인 이사장이 30여 년간 수집하여 소장해 온 작품들과 일부 화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김성인 이사장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보라 바탕에 웅크린 태아 형상은 태동하는 시민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역사를 ‘담다’, 그림을 ‘담다’, 행복을 ‘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명하는 작품을 매개로 창작자와 관람객이 어울려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미술관이지요.” 담다는 역사학을 전공한 정 관장과 그림을 전공한 이사장 김성인 작가의 역사의식이 빗어낸 특별한 미술관이다. 두 사람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가 지역사회를 넘어서 전국에서 역사를 제일 잘 알려주는 미술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역사와 관련된 그림도 보고 그 자료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담다 미술관입니다. 개관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작품 구매부터 보관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으로 동학부터 촛불혁명까지 상설전시실에서 5개의 주제로 작품을 만난다. ‘태극기변천사’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의 도안을 만들어간 것을 시초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살필 수 있다. ‘태동, 동학 1860,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동학의 시작과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보다 1년 먼저 노비를 해방했다. 수운은 두 여종 중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다른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아 ‘사람은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는 동학 정신을 실천한다. ‘분출, 동학농민혁명, 1894’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으로 시민의식을 분출하는 당시 상황을 담은 홍성담과 전정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함성1, 3·1만세운동, 1919’는 3·1운동을 이끌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과 독립운동과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손의식 작가의 작품으로 만난다. 이상하 작가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을 빛나는 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줄기차게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전달한다. ‘함성2,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라도에서 독재에 항거해 일어났던 민주화항쟁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오윤, 홍성담 작가의 판화 작품은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강력하다. ‘미래, 평화! 또 다른 시작!’은 손의식 작가의 ‘하나로- 뜨거운 포옹’과 안한수 작가의 ‘무너진 철조망’이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소망을 담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시민을 대상으로 북콘서트,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한양대 윤석산 명예교수, 경희대 임형진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선 인문학 강좌 ‘동학이야기’는 담다의 지향을 보여준다. 담다에서 주관하는 독서모임 ‘용득수기’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쓴 윤영수 방송작가를 초청해 ‘21세기와 이순신의 창조적 리더십’을 주제로 한 인문학 특강을 열고, 북한문화체험 ‘꼬리떡 만들기’를 진행하여 탈북민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울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역사와 그림과 행복을 담는 열린 미술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에도 담다는 부지런히 달렸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그림, 자유와 평화를 만나다’ 특별 전시회를 열어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외침과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봄에는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특별기획전-용인, 자유와 평화를 담다’를 열었는데, 용인지역 작가를 포함해 1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정희경 작가의 ‘속삭이는 빛’ 연작은 화면에 무수히 점을 찍는 행위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서양화가 손정순 작가 초대전 ‘자연의 향연전’과 장애인 예술가가 들려주는 음악과 퍼포먼스 ‘나의 빛 나의 음악’은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박금만 여순항쟁 특별전’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처음으로 여는 여순항쟁 역사화전으로 감춰졌던 현대사의 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기획이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지역예술인들과 연대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21년 가을, 용인에 거주하거나 용인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220여 명의 전문 예술인들이 ‘용인문화예술연대’를 출범했다. 사무총장을 맡은 정정숙 관장이 비전을 들려준다. “용인문화예술연대는 음악, 미술, 도예, 풍물, 국악, 서예 등 문화예술 전 분야로 폭을 넓혔지요. 용인예술문화연대가 주관해서 매년 1~2달에 걸친 문화예술축제를 만들 계획입니다. 용인문화예술축제를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 영국 에딘버러 축제와 같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키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2년 용인 꿈의학교의 거점활동공간으로 선정된 근현대미술관 담다는 학교는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담다는 미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7.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박물관'

언제쯤 자율주행 자동차가 거리를 달릴까? 드론으로 음식을 배달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이런 게 궁금한 사람이라면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 볼 것이다. 아마도 만족스런 대답을 듣긴 어려울 것이다. 보다 실감 나고 분명하게 대답을 듣고 싶다면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92(원천동 111)에 위치한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사공호상)에 있는 지도박물관을 찾아보라.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우리나라 지도를 제작하여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한다. 네이버, 다음, T맵, 네비게이션 등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도들은 이곳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한 지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먼 옛날에는 발로 걸어 높은 산에 올라 산줄기와 강줄기의 모습을 살피고 그 안에 있는 마을들을 그렸다. 천문관측 기술이 발전한 조선 시대가 되면 별을 보고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지도제작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하지만, 제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먼저, 현 위치를 선정한 다음, 비행기로 GPS 항공사진을 촬영하여 사진과 실제 지상점을 일치시켜 좌표 얻어낸다. 이어 디지털 사진을 보고 지형지물을 선과 기호로 그려 1차로 완성된 지도를 가지고 현지에 가서 직접 대조해 보고 지리조사 내용 등을 입력하여 디지털지도를 최종 완성한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마주하다 원통형의 박물관 중앙홀에 들어서면 눈에 익은 지도가 걸려 있다.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이 대형 지도는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다. 살아 꿈틀대는 산맥과 강, 고을과 고을을 잇는 상세한 도로가 경탄을 자아낸다. “사실 대동여지도는 1장의 지도가 아닙니다. 22책의 책자로 이루어져 접었다 펴는 ‘절첩식’ 지도인데, 모두 펼치면 우리나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6.7m, 가로 4m이며 축척은 대략 16만분의 1이 됩니다. 선생님은 ‘지도유설’에서 지도를 ‘위기가 발생할 때 적을 막고, 강폭한 무리를 제거하는 데 활용하며, 평상시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데 활용하는 것’이라 하셨지요. 1402년 태종 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고지도인데 세계 속의 조선의 위상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반면 1861년에 만들어진 이 ‘대동여지도’는 한반도 전역을 자세히 그린 과학적인 지도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고급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한상호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니 지도가 담고 있는 것이 지리 정보만이 아님을 분명히 알겠다. 역사관으로 들어선다. 우리나라 전도와 도별도, 도성도, 군현지도를 비롯해 서양과 일본의 고지도가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한 학예사가 전주성을 세밀히 그린 지로를 가리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선대원군은 우리나라 지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분입니다. 한동안 김정호 선생 부녀를 처형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일제가 1934년에 펴낸 ‘조선어독본’의 ‘김정호전’에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대원군은 국가의 기밀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대동여지도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두었다가 결국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 판각과 지도가 온전하게 남아 있고, 지도제작을 도운 인물들이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원군은 정밀한 지도를 제작했지요. 이것이 1872년에 대원군의 명을 받아 전국 459곳의 군현에서 제작한 지도들입니다.” ■지도에 담긴 나라사랑 현대관에서 만난 지구본의 사연도 흥미롭다. 160점의 지구본 중에서 학예사가 가리키는 지구본의 색깔이 좀 특이하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유심히 살펴보니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와 호주와 영국이 붉게 칠해져 있다. “혹 영국의 식민지가 아닌가요.” “맞습니다. 지구의 곳곳에 영국의 식민지가 있었죠. 그래서 ‘태양이 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구본에서도 제작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윤경철 박사가 2004년에 지도박물관에 기증한 것인데, 만인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기증문화의 미덕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대항해시대에 서양 사람들이 동해를 ‘SEA OF KOREA’로 표기했고, 울릉도를 ‘판링도’, 독도를 ‘천산도’로 불렀다. 일본사람들은 동해를 ‘조선해’로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표기하였다. ‘동해’와 동해에 위치한 ‘독도’를 우리 영토로 그린 서양의 고지도가 여럿 전시되어 있다. 또렷하게 ‘조선해’라 쓰인 일본의 고지도를 보며 국제사회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고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 강변하는 이웃에 둔 우리의 처지와 자세를 생각해본다. 현대관의 중심 주제가 ‘독도’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광복 이후 제작된 독도 지형도에서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한 지도제작자들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진다. 독도에 20개의 이름을 가진 바위섬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작은 바위섬에도 이름을 붙인 까닭이 무엇일까. 지도는 이름, 소유권자를 분명히 인식하게 해 주는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다니는 지도를 어떻게 만들까 지도를 제작하는 기계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거리와 위치를 측량하는 것을 ‘각측량기’라 하고, 높이를 측량하는 것을 ‘레벨’이라 한다. ‘3D 지도’는 무엇일까. 2차원의 평면 지도에 높이와 속성, 색깔 등 다양한 정보를 결합하여 제작한 3D 지도는 현재 대도시 30개 지역이 구축되어 있다. 디지털지도는 ‘오토캐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야 볼 수 있으므로 접근이 어렵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PDF 형태’의 지도로 만든 것이 ‘온맵’이다. 이런 지도가 구축되면 자동주행차와 드론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올 것이다. 지도로 통일을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신선하다. 2007년부터 통일을 대비하여 북한 전지역을 1/50,000 축척으로 계속 제작하고 있다. 오늘의 북한을 볼 수 있는 지도책을 펼치며 통일의 꿈을 꾸어본다. “아직도 후진국들은 자기 나라의 지도가 없어 국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해마다 우리 국토 전역을 비행기로 사진 촬영하고 그 사진에 위도, 경도, 높이, 지명 등 다양한 정보를 입력하여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든 지도를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나 네비게이션 회사들이 구입 및 편집하여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치지형도, 3차원지도, 온맵은 무엇일까. 수치지형도는 컴퓨터(오토캐드)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지도를 말한다. 3차원지도는 영화처럼 도시 전체를 입체로 볼 수 있는 지도이며, 온맵은 쉽게 볼 수 없는 수치지형도를 PDF파일로 만들어 쉽게 보는 지도다. 이렇게 만든 여러 가지 지도를 편집하여 토양의 성질을 표시한 지질도, 관광 명소를 표시한 관광지도, 비행기, 선박이 다니는 길을 표시한 항공지도, 해양지도를 만들고 있다. 정밀도로 지도는 자율주행차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도로와 주변시설의 정보를 3차원으로 표현한 첨단지도다. 2004년 11월에 개관한 지도박물관은 1종 전문박물관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도 그리기 대회를 열고 있는데, 전시된 그림에서 아이들의 반짝이는 창의성을 엿보는 즐거움도 크다. 박물관은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에게는 지리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궁금하다면 지도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어린이 지도여행’을 클릭하면 금방 지도와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도에 관심을 가진 성인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정보가 들어있다. 야외 전시장을 찾아 김정호 선생 동상 앞에 선다. 후손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심어준 위대한 선각자 앞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한다. 동상 옆에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을 표시한 특별한 시설이 있다. 지구상의 위치는 경도와 위도로 나타내는데 대한민국이 경위도 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측량한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이다. 대한민국 경위도 원점은 우리가 보는 지도를 그릴 때 늘 기준이 되는 점이다. 평면 위치의 기준을 측정하는 삼각점과 높이를 측정하는 수준점도 확인할 수 있다. 지도박물관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운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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