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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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조용한 아침의 나라. 새벽 하늘도 아픔의 비극을 아는지 밤새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1950년 6월25일 오전 4시 북한은 폭풍이라는 암호명 아래 38도선 인근에 배치한 전 인민군에게 남침 명령을 내렸고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남측의 유엔군과 북측의 중공군이 참전해 1953년 7월27일 휴전이 성립하기까지 3년1개월여간 한반도 전 지역이 초토화됐다.

6월 보훈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72년 전 우리가 겪었던 동족상잔을 뒤돌아보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야기한다.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동포들이 한국인 고국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 박마리나(37세)는 지난 6월18일 수원 지속 발전협의회가 개최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난민 토크 콘서트 전쟁과 피난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고려인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살길 찾아 타국 만리 농업 이민을 시작으로 항일독립운동 강제 동원 등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에 이주한 이들과 그들의 친족을 이르는 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은 지난 2월24일 시작돼 무자비하고 가차 없이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으며 양측에서 수만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국가에 의해 일어나지만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없애버린다. 마을마다 무리 지어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침공으로 아빠를 잃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아버지의 날을 맞아 전사자의 묘지를 찾아 슬픔을 달랬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아이에게 이날은 아빠 없는 첫 아버지날이었다. 장기전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소수자들에 의해 권력과 물질욕이 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경제의 숨통을 조이려고 애쓰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흑해의 몇몇 항구를 통해 자국에서 매년 생산하는 수백만톤의 밀과 옥수수 및 해바라기 기름을 수출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아직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동포 고려인들이 어느 나라로 피난 가야 할 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과거 가난한 조선의 나라에서 태어나 살기 위해 떠났던 고려인의 애절한 삶. 우리 민족인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한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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