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정치실종의 시대, 정치를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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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정치는 대화와 조정과 설득과 타협과 중재의 과정이자 산물이다. 대립하는 갈등이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상생의 길을 탐색하며 한걸음씩 나아간다.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과 글과 협상의 기술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핵심역량이다. ‘정치력’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을 고소·고발을 남용하며 법에 과도하게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공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서 검찰이나 법원의 판단으로 미루는 것은 정치인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방기하는 일이다. 사법기관의 판단을 얻기 위해 ‘묻지마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본인에게 불리한 사법기관의 판단에 대해서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아전인수격의 자의적 해석을 하며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행태들이 종종 보인다.

이러한 행태들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진영논리와 적대적 정치를 강화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를 모두 무너뜨리는 악습이다. 정치는 통찰과 숙고와 결단과 판단과 실행의 과정이자 산물이다. 하나의 이슈를 관철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상황과 복합적 요소를 살피고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간다. 당심과 민심이 크게 괴리되어 갈 때에는 국민 다수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비춰 속해있는 진영의 이익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양보하거나 지지세력을 진심을 다해 설득하는 결단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다. 정치인은 문자폭탄을 보내는 유권자들을 비난하거나 그들과 싸워서는 안된다. 목소리가 큰 소수의 강성 지지세력에 기대어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무조건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식의 논리를 펼치며 ‘내 편’ 확보를 위해 상대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는 일부 유튜버들의 입김이 더욱 세지고, 그들의 평론과 의견을 마치 스스로의 미션처럼 받아들이는 정치인들이 공생하고 있다.

정치가 사라진 시대,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 새정치를 외치기 전에 정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조율, 조정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정치의 본령을 되찾아오자. 네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옳은지에 대해 함께 답을 찾아내자.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이다. 그 이후의 과제는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것과 민주주의의 질적향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보태고 지혜를 모으기에도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부르는 정치 지도자는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서 조화와 화합을 이루어 함께 시대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자 세력이 될 것이다. 이제 그만 제발 정치를 돌려다오.

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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