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필가 린위탕(林語堂)은 “삶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에센셜리즘(Essentialism ; 본질주의)을 좇아 필요한 때 필요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에센셜리스트(essentialist ; 본질주의자)가 되라는 말이다.
최근에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에센셜리즘(Essentialism)』(그렉 메커운, 김원호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1.)이다. 요약하면 잡다하게 이 일 저 일 손대거나 관심 두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나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에센셜리즘이란 말의 원래 뜻은 본질주의로, 사물의 핵심 의미를 추구하는 걸 말한다. 이를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행동에 적용했다. 이 일 저 일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쏟거나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남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는 행동을 살펴서 필요 없는 건 버리고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일 하나를 선택해서 성취하는 데 힘을 쏟으라고 충고하는 책이다.
막 소설가로 등단해 활동하던 젊은 시절, 소설가 김동리 선생님으로부터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쓴 글 한 폭을 받았다. 김동리 선생님은 세배를 오거나 방문하는 사람 가운데 특별히 눈길 가는 분의 이름을 기록해 두고(대학노트에 빼곡하게 이름을 적는다) 마음 내킬 때 휘호를 준비해 건네주는 걸로 유명하다. 순서대로 주는 게 아니라 건너뛰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장부에 기록은 됐어도 언제 글을 받을지 모른 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미리 써 달라고 채근해도 소용없다. 그냥 기다린다. 짧게는 몇 개월이 될 수도 있고 길게는 몇 년이 지나도 못 받는 분도 있다. ‘화광동진’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빛을 감추고 먼지 같은 하찮은 일들과도 잘 어울리며 살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자기 재주를 뽐내지 말고 겸손하게 세상과 잘 어울리라는 말이다.
『에센셜리즘』을 읽다가 불현듯 이 ‘화광동진’이 생각나서 옷깃을 여몄다. 내 재주만 믿고 이 일 저 일 붙잡다가 혹여 놓친 건 없는지 누군가에게 내가 잘났다고 으스댄 일은 없는지 나 혼자 다 해결할 줄 안다고 세상일을 간섭하며 나서지는 않았는지 잠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살폈다. 이 생각 끝에 나를 더 단단히 다잡은 게 바로 ‘화광동진’이다.
노자는 ‘무위이화(無爲而化)’, 즉 무엇을 억지로 고치고 다듬지 말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라고 했다. 이 역시 화광동진이다. ‘나’를 주체로 세상을 끌고 가지 말고 객체로 세상과 어울려야 나도 세상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참 행복을 누리며 사는 ‘무위이화’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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