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황색언론, ‘비극’을 ‘가십’으로 소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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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거장 올리버 스톤의 1994년작 영화 ‘킬러’의 영문타이틀은 ‘Natural Born Killers’다. ‘타고난 살인자’라는 뜻의 이 영화는, 미 대륙을 횡단하며 무차별 살인을 일삼는 연쇄살인마 커플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잔인한 슬래셔 무비로 오해하진 말자. 올리버 스톤이 누구인가. 내놓는 영화마다 평단의 극찬을 받는 할리우드 최고의 트러블 메이커이다. 그에게 두차례 아카데미 감독상을 선사했던 영화 ‘플래툰’과 ‘7월 4일생’은 각 ‘미국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PTSD로 고통받는 전쟁영웅의 서사’를 정면으로 다루며 레전드로 남게 됐다. 미국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영웅적 플롯이 일반적인 시대, 유독 그만은 비주류를 택한 것이다.

그런 그가 영화 ‘킬러’를 통해 비판하고자 한 성역은 무엇일까. 바로 언론이다. 연쇄살인마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며, 그들을 연예인마냥 친근한 존재로 만들어 준 언론이 그 주인공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에 체포됐을 때, 이미 그들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고, 광적인 팬들도 생겨났다. 재판정 앞에서 한 여성이 들고 있던 ‘Murder Me!(날 죽여줘요)’라는 피켓 속 응원문구가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설명해 준다.

최근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하대 캠퍼스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망 사건’이 그것이다. 한 남학생이 단과대학 건물에서 동기 여학생을 성폭행하다가 3층에서 추락해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을 두고, 일부 언론이 보인 행태는 가히 엽기적이다. 추락한 피해자가 발견됐을 당시의 상태를 부각해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채 피 흘리고 쓰려져’라는 선정적 제목과 함께, 매 기사마다 ‘나체로’, ‘알몸으로’ 라는 헤드라인을 빼놓지 않으며 조회수 장사에 집중했다. 특히 언론에서 피해자의 만취상태를 강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남학생이 성폭행을 해 사람을 죽였다’가 아닌 ‘여학생이 술에 취해 성폭행당해 죽었다’는 식으로 논점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최초 발견한 사람이 부럽다’는 식의 몰상식한 댓글부터, ‘술이 문제다’, ‘왜 밤 늦게 다니냐’는 안타까움을 가장한 댓글까지 하나같이 2차 가해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의 비극이 가십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 ‘킬러’의 엔딩은 쿨(?)하다. 연쇄살인마 커플은, 자신들의 탈옥을 돕고 그동안 자신들을 밀착취재해온 TV쇼 앵커를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넌 쓰레기야, 넌 시청률 때문에 우릴 도왔어” 그리고 그를 살해하는 것으로 그들의 살인행각은 끝난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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