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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보호종료아동, ‘준비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정치 집중취재

[집중취재] 보호종료아동, ‘준비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다

지병 때문에 보육원 퇴소했지만...“1년 먼저 나왔다” 지원금 못 받아
열일곱 친구들과 떨어지기 두려워...자립초년생 홀로서기 냉혹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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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아동 퇴소. 연합뉴스

양주에 사는 박민희씨(23·가명)는 혼자 산 지 2년 된 ‘자립 새내기’다. 지금은 어느 정도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졌지만, 그의 생애 첫 자립은 광막한 들판에서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 박씨가 태어나자마자 열다섯 살이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는 영유아 일시보호소에 보내진 뒤 6개월 후 다시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보육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불운은 겹친다 했던가. 그에게 뇌전증이란 날벼락이 떨어졌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는 보육원 퇴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열일곱’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비록 지병 때문이었지만 정식 퇴소 나이보다 1년 먼저 나왔다는 이유로 자립정착지원금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변변한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해 길거리를 전전했다. 아는 어른이나 친구 집에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이내 쫓겨나길 반복했다. 식당에서 13시간 가까이 일했고, 울다 지쳐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은 순간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현재 그는 아는 언니의 소개로 1년 전부터 운 좋게 보호종료아동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같은 환경에 처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박씨. 그는 “당시엔 살기 위한 작은 의지조차 꺾어버리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며 “한때 꿈을 갖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꼈던 만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돼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예은씨(21·가명)도 여섯 살에 처음 보육원에 들어왔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졌고, 장씨는 그렇게 보육원에 맡겨졌다. 12년 가까이 보육원에서 살았던 장씨는 지난해 3월 생애 처음으로 자립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자립한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살면서 처음으로 보육원 친구들과 떨어졌고, 아직 모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그에게 ‘혼자’는 너무 두려운 것이었다.

혼자인 게 어색했던 장씨는 한 달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그는 당시 자립정착을 위해 지원금 1천만원을 받았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처음 세상에 나온 ‘자립 초년생’에겐 이 돈이 불안감을 모두 해소시켜줄 리 만무했다. 그는 보육원에서 나올 때 LH에서 주거지원을 받아 용인에 방 한 칸을 마련했지만, 내부 집기나 가구 등은 모두 개인 돈으로 마련하느라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는 운 좋게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립에 겨우 성공했다지만, 여전히 다른 청년들은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장씨는 “물론 시설에서 나올 시기엔 과거에 비해 지원의 폭이 넓어졌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할 세상의 냉혹함에 비해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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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연합뉴스

경제적 지원 확대에도… 정서적 지원은 ‘미흡’

정부가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서적 측면의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단 지적이다.

2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 지역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수는 2017~2021년 5년간 한 해 평균 409명(2017년 429명, 2018년 423명, 2019년 422명, 2020년 401명, 2021년 37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2일부터 보호종료아동의 의사에 따라 보호기간을 최대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아동복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7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립지원금 액수 상향 △공공후견인 제도 도입 △주거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지원강화 기조에 따라 경기도도 해마다 자립지원금을 확대했는데, 2020년 500만원이던 자립지원금은 지난해 1천만원으로 올랐고 올해는 1천500만원이 지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적 지원 확대는 바람직하나 단순한 금전적 혜택 외에 정서적 지원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도에선 보육원에서 퇴소한 아이들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이 1곳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을 케어할 전담요원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도내 자립지원전담요원은 23명으로, 이들은 집중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된 아이들에게도 정서적 지원 없이 가정방문과 생필품 제공 등 단순한 지원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이 외 대다수 보호종료아동들에게는 이 같은 지원도 없이 고작 1년에 1~2번 전화안부만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경기도에서도 1·2차 교육을 통해 자립지원금에 대한 사용처를 확인하고 있지만, 큰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에겐 이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의 한 축인 공공후견인제도도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단 의견이 나온다. 공공후견인제도는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게 법정 대리권 공백을 막으려 도입되는 제도인데, 어른에게 거부감이 있는 보호종료아동의 경우 유대감 없는 어른이 섣불리 법적 후견인으로 나타나면 되레 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주하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 국장은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이들에겐 공공후견인 제도만큼 착오가 많은 정책도 없다”며 “아무런 정서적 지원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이 낯선 어른에게 갖는 거부감을 해결하지 않으면 제도의 성공적 정착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공공후견인제도의 일환으로 법률 자문을 위해 변호사 등이 후견인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했다”면서도 “여러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후견인제도를 무작정 밀어붙일 수는 없다고 판단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규·노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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