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의 아랍국가 튀니지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새 공화국 헌법’으로 불리는 새 헌법 도입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주도한 새 헌법은 대통령에게 행정부 수반 임명권,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은 물론 군 통수권까지 부여하며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는 의회 신임 투표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임기 5년에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이 ‘임박한 위험’을 이유로 임기를 임의로 연장할 수 있게 됐다.
튀니지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의 발원지다. 민중 봉기로 23년간 권력을 장악했던 독재자 벤 알리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튀니지는 중동 지역 아랍 국가 중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진전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 속에 심각한 경제난과 극심한 정치적 갈등은 여전했고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헌법 학자 출신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이른바 ‘명령 통치’로 총리 해임, 의회 활동 중지, 최고사법위원회 해체 등 입법·사법·행정부를 무력화시켰고 이번 개헌을 주도해왔다. ‘아랍의 봄’ 혁명 정신을 담은 2014년 헌법에 명시된 의원내각제 성격의 대통령제를 완전히 뒤엎는 이번 헌법 개정안은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주요 정당들은 사이에드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며 투표 보이콧을 선언했고 강력한 대통령제가 아랍권에서 드물게 민주주의를 정착 시킨 튀니지를 독재 정치 시대로 되돌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국무부는 튀니지의 새 헌법이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보호를 해칠 수 있으며 견제와 균형을 약화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국제법학자회 튀니지 사무소는 거의 모든 권한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새 헌법으로 누구도 대통령을 통제할 수 없게 됐으며 독재자스타일의 법 위반 행위로부터 튀니지를 보호할 안정 장치가 사라졌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아랍의 봄’ 민중봉기 후 정국을 주도한 정당 정치에 반감을 느낀 다수의 튀니지 국민은 정당 중심의 정치 체제를 뒤엎는 대통령의 개헌 시도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오는 12월 튀니지 국회위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 선거에서 사이에드 대통령이 개헌 성공을 발판으로 더 단단한 지지 기반을 다질 수 있을지, 그리고 튀니지를 부패와 실패로부터 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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