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banjiha’와 공감 능력 없는 정치인들

1990년대 초 서울 강동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실. 아빠와 엄마, 누나, 그리고 서울로 취업해 시골에서 올라온 이모. 열 평 남짓한 반지하 주택에서 초등학생이었던 나까지 다섯명이 시끌벅적 지지고 볶으며 살던 시절. 부모님 방 창문 앞에는 주인 집의 보일러가 설치돼 있어 기름 냄새에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했고, 작은 방 창문 앞에는 고양이들이 늘 쳐다보고 있어 무서워 열지 못했다. 돈이 없어 가족끼리 다툼은 잦았지만, 언젠가 이사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던 그곳. 외신에게까지 주고 있다는 ‘banjiha’.

최근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다. 경기도에서만 3명이 사망했고 3명이 실종됐으며 3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이번 폭우로 반지하 집이 조명받고 있다.

이전에도 반지하가 주목받았던 적이 있다. 3년 전 영화 ‘기생충’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다. 극 중 반지하 집에 살던 기택(송강호) 가족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 동익(이선균)의 집에서 몰래 파티를 하다 동익 가족이 급하게 복귀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집에 돌아간다. 그러나 이미 집은 폭우로 잠긴 후다. 물이 차오르는 집. 변기 뚜껑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기정(박소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2020년 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부는 반지하 가구 주거의 질을 올리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앞으로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지하 집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곳에라도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 대한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 9일 대통령실은 공식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이 반지하 집을 쪼그려 앉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이용해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마치 반지하 집을 처음 보는 것 같은 표정의 대통령. 이 소름 돋는 카드뉴스는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주고 싶어서 만들었을까.

중앙 정치권은 연일 대통령이 어디서 수해 관련 지시를 했는지 놓고 공방을 벌인다. 어디서 지시한 것보다 무엇을 지시했는지, 어떠한 점이 부족했는지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것 아닌가. 세월호 참사 이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 싸울 셈인 것 같다.

지방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7월 개원 이후 한 달 넘게 원 구성도 못한 채 싸움을 벌이더니 정작 수해로 도민들이 절규하고 있을 때 의회에 모여 의장을 선출하고, 이후에도 본인들끼리 다투고 있다. 이러니 선거만 끝나면 정치인들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호준 경제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