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2. 화성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3·1운동 계기로 화성 주민들 민족의식 폭발...식민통치 전진기지인 면사무소·주재소 불태우고
총칼로 폭압하던 순사 처단, 조직적 의거...일제, 남자들 교회에 가두고 난사후 불질러
옆마을 사는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도 몰살시켜...기념관 들어서면 당시의 참상 생생히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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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과 제암교회, 23인 순국선열 묘역 등 화성 제암리3·1운동순국 유적 모습. 윤원규기자

1919년 4월15일 ‘대학살’… 100년 넘도록 사죄않는 일본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는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항일의 정신이 깃든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입구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앞을 응시하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1889~1970)의 동상과 마주한다.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의학자와 선교사로 일하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화성 제암리 학살 소식을 듣고 열차로 수원역까지, 수원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경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와서 비극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일제의 만행과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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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세워진 3·1운동순국기념탑. 윤원규기자

■ 100년 동안 흐르는 두렁바위의 눈물

병풍처럼 세워진 검은 대리석에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이 그림과 글로 새겨져 있다. 박사가 써서 세상에 알린 ‘대학살의 전말’을 읽어본다.

“4월 15일 화요일 이른 오후, 일본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성인 남성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에게 전달할 말이 있으니 모두 교회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에 모인 23명 가량의 남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면서 명령에 따라 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 군인들은 교회를 둘러싸고 종이 창문 너머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사람들은 명령의 진의를 알게 됐다. ...교회로 불려간 남편을 찾아 두 명의 부인이 군인들의 포위를 뚫고 교회로 가려했지만 모두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 19세의 젊은 부인은 총검에 찔려 죽었고, 40대 여성은 총에 맞았다. ...그 후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것이 제암리에서 벌어진 피의 대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정부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의 방문한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학 교수로 활동하다 영구 귀국하여 보육원 후원을 비롯한 봉사 활동에 헌신하다가 1970년 4월12일에 영면한다. 한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한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는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일본 군인에게 학살된 선열의 유해는 가마니에 담겨 4km 떨어진 향남면 도이리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봉분도 없이 묻혔다. 40년이 지난 1982년 9월 21일부터 여드레 동안 사건의 목격자이자 유가족인 전동례 할머니와 최응식 할아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해를 발굴한다. 9월 29일 제암교회가 기념관 뒤편에 제공한 묘역에 23인의 합장묘소를 마련하고 위령제를 거행하였다. 학살현장은 1984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99호’로 지정됐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3·1운동순국기념탑’은 1959년 4월 제암교회 터에 세워졌던 것을 정부의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에 의해 현재 자리로 옮겼다. 공원의 3·1운동순국기념탑은 향남면 3·1운동 순국기념관 건립위원회에서 3·1운동 유적지 정화사업을 수행하면서 원래 기념비가 있던 자리에 다시 규모를 크게 하여 1983년 4월 15일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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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전시장에서는 ‘독립운동가를 수감하다’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화성출신의 독립운동가들. 윤원규기자

■ 화성의 불꽃, 한반도를 밝히다

“3·1운동은 비폭력 원칙을 세웠으나 화성지역에서는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됩니다. 만세운동을 벌이던 주민들이 일제의 행정 말단기관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고 총칼로 주민을 위협하던 순사를 처단합니다.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연히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전에 미리 준비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한말 화성지역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이 활발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충격을 받은 일제의 잔혹한 보복이 뒤따릅니다. 4월 15일,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군인 11명을 이끌고 제암리로 들어와 15세 이상 남자들을 교회로 모아 문을 닫고 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다시 옆 마을 고주리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김흥렬 일가 6명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지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의 본질은 일제가 3·1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기념관 운영을 총괄하는 김태동 팀장의 설명을 들으니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특수한 사정이 이해됐다. 그러면 현재는 어떠할까? 기념관에서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섣불리 화해를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읻따, 그들이 있고 우리가 잇다

기념관 로비에서 만난 신인순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전시관을 둘러본다. 상설전시가 이루어지는 제1전시실 입구에서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란 글귀를 만난다. “4·15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죠? 1919년 화성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모습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치열했습니다.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불 지르고 만세 운동을 저지하려던 순사 2명을 처단했지요. 이 사진을 보세요. 스코필드 박사가 찍은 것입니다” 4월 15일 일본 군경의 제암리·고주리 학살한 현장의 처참한 광경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가족을 잃고 넋이 빠진 표정의 두 여인의 모습에서 나라를 되찾으려다 희생된 열사의 유가족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남편과 부모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졌다. 1953년에 작성한 ‘3.1운동 당시 일본인으로부터 피살당한 애국자’란 문서에 적힌 명단을 살펴보니 62세부터 17세까지의 희생자 중 안(安) 씨 성을 가진 이가 유난히 많다. 제암리는 집성촌이었던 모양이다. 체포되어 촬영된 화성지역의 독립운동가의 사진과 1982년 유해발굴의 현장 사진 앞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궁금하다.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야할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된 지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103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벽에 ‘읻따’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눈치를 챈 신 해설사가 관람객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존재한다의 ‘있다’와 연결하다의 ‘잇다’의 발음 기호가 ‘읻따’라고 해요.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유족과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본 것입니다. 제암리·고주리의 아픈 역사가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는가. 여러 자료와 영상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이었지요”

기념관에는 마주한 전시물들도 사연이 깊다. 많은 것이 문서들이지만 그중에는 눈여겨 볼 것들이 여럿이다. 만장,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헌, 왕광연 선생, 홍면옥 선생의 출옥 기념사진, 희생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작성한 진정서, 3·1운동피살자명부, 아리타 판결문, 학살지에서 발굴된 유리병을 비롯한 출토유물 등 특별한 사연이 담긴 유물들이다. 주민 29명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 지른 일본군 장교 아리타의 무죄를 선언한 ‘아리타 판결문’은 후안무치한 일제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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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

2001년 화성시가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을 개관하면서 기념과 추모 사업에 탄력을 얻는다. 2016년에는 기념관 학예팀 신설하고, 이듬해에 제1종 전문 박물관 등록했다. 그동안 열었던 특별전과 기획전은 ‘학살, 끝나지 않은 역사’, ‘멈춰진 시간, 4·15를 기억하다’, ‘화성독립운동가’, 2021년 4월 개관 20주년 특별전 ‘읻따’,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 소설에 담다’, ‘일제의 선전수단, 그림엽서’ 같은 주제들이다. 순국선열 스물아홉 분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학살사건의 전모와 한국인의 평화의 의지를 국내외에 알려온 기념관은 2019년 7월부터 화성시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을 하면서 더욱 탄력을 얻게 된다. 교육을 담당할 전문 강사를 육성하여 지역의 학교로 찾아가는 사업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21년 11월에 교육기부 우수기관 인증을 획득한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자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한국인의 성지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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