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또한 칭찬이나 지지의 마술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희미한 연필 글씨처럼 별것도 아닌 그 반응이 왜 이렇게 오래 가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일은 한 마음 공부터에서 일어났다. 열흘 동안 하루 열시간 정도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기로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개중에는 소위, 고참 서너 명이 주방 일을 도맡아서 ‘봉사’를 한다. 봉사자들은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 늦게 자면서 40여 명의 식사를 열 하루 동안 챙겨야 한다.
나는 그 봉사자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수행 기간 열흘 중 닷새째 되던 날, 주방 한편에서 네 사람이 삭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십대 중반 여자가 상대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남기우씨, 죽을 휘젓다 말고 번번이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죽이 눌어붙는다고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오늘 아침도 새까맣게 눌어붙은 거 보셨죠!” 눈총을 받고 있는 상대는 이십 대 중반쯤 돼 보이고 낯빛이 희멀건 청년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한테는 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외국인들 안내가 더 중요합니다. 죽이야 좀 타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누군가 받아쳤다. “좋아요, 앞으로 기우씨는 외국인 안내만 해주세요. 다른 일 안 맡길 게요”.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난 주방 일도 돕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죽도 해야겠습니다”. 육십대 여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정말, 젊은 사람이 말귀도 꽉 막혔네”.
나는 조용히 의자를 당겨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실, 나 또한 남기우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서 압정에 찔린 듯 화가 난 적이 있었다.
남기우는 탁자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 무슨 말이 오든 받아칠 기세로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기우 씨가 외국인들 도와주는 건 우리로서는 대체 불가의 큰일이에요”. 그런 후, 계속 말을 이어갈 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기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가지런한 윗니가 반짝였다. 그는 나를 향해 오른손 엄지를 튕겨 올렸다. 엄지 척!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리바리한 웃음을 지었다. 남기우가 말했다. “여기 와서 제가 처음 듣는 칭찬입니다”. 아, 칭찬! 내가 저 친구를 칭찬했던가? 어쨌든 그의 엄지 척! 한판에 나 또한 긴장이 확 풀렸다. 헤실헤실 웃음이 났다. 이 웃음이 남은 세 사람에게 퍼져가고 있음을 나는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되는 스마트 폰처럼 남기우가 날린 엄지 척!은 그 상황을 돌변시킨 신호탄이었다. 뿐만 아니라 3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김성수 한국글쓰기명상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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