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강남에서 폭우로 인해 도로와 반지하 주택의 침수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즉각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론을 보면 전문가적 입장이 아닌 정치적 입장에서는 긴급처방이 우선 긍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없애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생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사실 반지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과제였으나, 금번과 같은 충격적인 사고가 없었다보니 늘 공약(空約)으로 겉돌았다. 이제는 반지하가 중대재해 대상 건축시설(공간)로 인식되다 보니 없애야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렇다고 당장 없앨 수는 없고, 대책 마련과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건축시설과 관련해 발생한 다양한 중대재해 이후 급속하게 만들어진 법 제도들이 오히려 사각(死角)지대를 형성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고, 또 다른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2014년 2월17일 경주시에서 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폭설로 무너져 대학생 등 10명이 사망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특수건축물에 속하는 PEB 구조시스템(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에 샌드위치 판넬로 마감된 조립식 지붕구조였는데 설계도에 있던 지붕 H빔이 누락돼 눈하중을 지탱하지 못해 붕괴된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였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대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부실공사에 대한 들끓는 국민여론에 정부는 긴급히 건축법을 개정해 기준을 강화했다. 그 당시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개정 이후 특수건축 산업이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를 맞게됐다.
문제는 PEB 구조물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프레임·막(膜)·케이블·쉘 등을 이용한 불과 길이(Span) 1m 이하의 소규모 특수건축물도 규모에 상관없이 무조건 사전 구조심의를 받도록 된 것이다. 이는 특수건축물에 대한 설계나 시공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들의 여론잠재우기 식 성급한 법개정이었다.
그 결과, 사전 구조심의라는 제도로 시간과 비용이 증가해 건축주(발주자)는 특수건축물 설계를 기피하게 됐고, 이는 스페이스 프레임 산업체의 폐업 속출을 비롯한 관련 산업계를 붕괴시키고, 어렵게 축적한 특수기술이 사장돼 해외 경쟁국에게 국제시장마저도 빼앗기는 위기로 몰리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가져왔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 산업현장에서의 사망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제정한 중대재해처벌법도 오히려 로펌들만 배불리는 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도시 및 국토 개발은 계속될 것이며 이로 인한 지상, 지하, 해안가, 수중 개발로 사회기반시설과 건축시설물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한 지속되는 극심한 기후 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도 늘어날 것이다. 국민 안전을 법제도는 재해나 사고 발생에 따른 여론 잠재우기식 정치적 관점에서의 법제도 제정 및 강화라는 단면성뿐만 아니라, 시행 후 발생할 수 있는 역기능 방지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는 정부와 전문가는 그동안 경험한 많은 재해와 사고를 통해 향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재해와 사고를 선제적으로 찾아내 사람 안전, 기술 안전, 시설 안전 차원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법제도를 선진화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사소한 사고, 하자가 결국은 대형 재해로 이어지므로 이에 대한 세심한 관리와 필요한 법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국민을 위한 안전 기술 제도의 제정과 강화는 규제가 아니다. 금번의 반지하 대책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국민의 안전과 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오상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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