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핸드폰을 꺼 두었다. 들어주면 안 될 부탁을 거절했는데도 자꾸 사정하는 전화에 거절의 말을 되풀이하는 게 싫었다. 전에는 큰일날 것만 같았지만, 며칠 핸드폰 없이 살아도 아무 문제없었다. 세상에는 안 되는 일이 정말 있다는 걸 나이로 배워간다.
살다 보면 길을 잃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면 잘못된 점을 돌아보고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따뜻한 위로의 말로 충분할 때도 있고,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나 사랑하는 사람의 느닷없는 죽음처럼 커다란 충격이 약이 될 때도 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더 늦기 전에 바라보는 자기 마음가짐을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도 일어난다. 의지로 어쩔 수 없을 때가 많다.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탓에 불행하고 괴롭다고 생각하는데, 대개는 그걸 불행하고 괴롭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 탓이다. 삶이 바쁜 까닭은 우리가 바쁘길 원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정말로 쉬려면 그냥 그대로 쉬면된다.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일도 그냥 손에서 내려놓으면 된다.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쉬고,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하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주어진 상황을 ‘내’ 판단 없이 바라보고, 통제하거나 멈추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수월해질 수 있다. 걱정하는 자신에게 화내거나 그만하라고 다그쳐 봐야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만 붓는 꼴이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만 행복한 건 아닐지 모른다. 정말 중요한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일흔에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는 법(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이 없는 경지가 되셨다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 저런 진리를 까맣게 잊고 헤맬 때가 많다. 또 하나, 저마다 삶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저런 진리를 깨닫더라도 사회는 개인이 그러도록 맡겨 두기만 해서도 안 된다. 저런 진리조차 사치로 보일 만큼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처한 사정을 다른 눈으로 보라고만 해서는 안 되고, 인간적일 수 있을 최소한은 마련해 주어야 한다. 송파와 수원의 세 모녀는 지금 이대로의 정책으로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의 파산처럼 파장 클 일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예상이 좀 더 촘촘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그걸 또 국가와 사회에만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이웃 사이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옛날처럼 옆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자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부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도 ‘내’ 눈으로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고 해야 한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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