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씀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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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

그리스어(헬라)로 시간(時間)을 뜻하는 두 가지의 말이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 즉 시(時), 일(日,) 월(月의) 개념인 ‘크리노스(chronos)’와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는 벌거벗은 남성의 모습을 한 조각상(彫刻像) 카이로스(kairos) 부조가 있는데 앞머리는 머리숱이 무성한 반면 뒷머리는 대머리이며. 어깨와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이 우스꽝스러운 조각 밑에는 아래와 같은 경구(警句)가 있다.

“내가 벌거벗은 이유는 쉽게 눈에 띄기 위함이고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理由)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나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며 날개가 달린 이유(理由)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나의 이름은 바로 ‘기회(機會)’다. 기회는 앞에서 올 때 잡아야지 놓치고 나면 잡을 수 없고, 또 어느 순간 빨리 지나가 버림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어떤 이들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유용하게 잘 활용하고 어떤 이들은 그냥 시간을 의미없이 허비한다. 어떤 이는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 언젠가 필요할 일에 대비하기 위해 달콤한 유흥과 게임의 유혹을 멀리하고 틈틈이 지식을 쌓고 외국어를 배우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에 매달린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어렵게 한글을 깨쳐 시를 짓거나 자녀에게 편지를 쓰며 기뻐하는 모습들은 참 보기에 좋다. 반면, 어떤 젊은이들은 취업하기 어렵고 집 마련하기 어렵고 결혼하기 어렵다는 N포 세대니 뭐니 하며 무엇을 준비하기보다 패배주의에 빠져 자신의 앞날을 포기한 것 마냥 행동함으로써 우려를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시간을 값지게 쓸 것이냐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냐는 그 사람의 선택이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내가 하는 생활의 모습이 장래에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준비해 기회를 잡은 사람에게는 성공을, 그냥 흘려보낸 사람에게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쓰는 것과 흘려 보냄의 차이를 허투루 보지 말자.

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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