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소비자 분쟁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소비자기본법에 의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고시하고 품목별로 분쟁 유형과 해결 기준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소비자단체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한국소비자원에서 230여개의 회선을 갖춘 1372(일상처리) 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소비자와 사업자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사 사례가 없을 정도로 소비자에게 유익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문제가 많다. 우선 업종 및 품종, 품목에 따른 분쟁 유형이나 해결 기준 등에 표현된 용어 및 구성의 통일성이 없다. 계약 해제, 계약 해지, 계약 취소가 혼용되고 피해배상과 손해배상도 품목마다 다르게 표현돼 있다.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도 많다. 올해는 폭우와 태풍으로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즐기거나 여행을 가려 했던 소비자와 펜션, 캠핑장을 운영하는 사업자 사이에 숙박 예약 취소와 관련한 소비자 분쟁도 크게 늘었다. 숙박업과 관련해서는 성수기 또는 비수기와 주말 또는 주중을 구분해 환급비율을 다르게 규정한다. 비수기 주중보다는 성수기 주말에 예약하고 취소할 경우 환급액이 매우 적게 적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규정을 지키는 숙박업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2016년 한 소비자단체에서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상위 100개 펜션업체를 대상으로 환급 규정을 살펴본 결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환급 규정을 준수하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도 있다. 얼마 전 1372 소비자상담센터 상담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준비하다가 심각한 오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산품 규정 중 ‘소비자가 수리 의뢰한 제품을 사업자가 분실한 경우’는 ‘정액감가상각한 금액에 10%를 가산해 환급’이고 ‘사업자가 부품 보유 기간 이내에 수리용 부품을 보유하지 않아 발생한 피해’는 ‘정액감가상각한 잔여금액에 구입가의 10% 가산해 환급’이다. 두 경우 모두 소비자의 잘못은 없고 사업자가 책임지고 보상해야 하는데 환급액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기곤로, 카폰, 등사기, 개소주, 포마드, 넥타류 등’ 표준어가 아니거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품목도 여전히 포함돼 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규정이고 1372 상담사들이 상담 업무에 활용하는 표준이므로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1년에 60만건 이상 접수되는 소비자 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유용한 규정으로 활용하기 위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손철옥 경기도 소비자단체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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