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인권맛집 다산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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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2019년 10월31일. 다산인권센터(이하 ‘다산’)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받는 존재에 막연한 물음을 가질 즈음이었다. 다산에서 ‘인권이 내게로 왔다’를 주제로 강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여섯 번의 강의와 후속 모임은 세상에 품었던 의심을 ‘시대와의 불화’로 이어 줬다. 삶의 실천이라는 불편한 과제는 무거웠으나 나쁘지 않았다. 이후 다산 활동가의 소개로 인권교육온다(이하 ‘온다’)를 만났다.

온다와 다산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다. 방 두 개를 합쳐 놓은 공간 가운데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문으로 경계를 가르지만 각각의 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려 있다. 따로 또 같이 서로의 활동과 삶을 공유하는 이곳은 사랑방이자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치열한 활동의 장이다.

활동가들의 삶을 공유하기 가장 적당한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매월 각자 가능한 날짜를 달력 위에 표기하고 자신의 순서가 되면 점심을 준비한다. 별다른 외부 일정이 없다면 온다와 다산 활동가 여덟 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활동가 초반 사무실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8인분의 식사 준비였다. 동료 활동가들은 준비하는 동안 익숙한 듯 곁에서 도와줬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긴밀한 배려는 오랜 시간 그들이 쌓아온 활동가로서의 면면이었다. 누군가는 냉장고를 털어 생전 보지 못한 요리를 탄생시키고, 어떤 이는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이곳에선 아무도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 이유는 사람이라는 환경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다산이 30주년을 맞았다. ‘30년 전통 인권맛집’은 다산의 안성맞춤 슬로건이다. 인권은 종종 밥을 짓는 과정에 비유된다. 당연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정성은 인간의 존엄과 맞닿아 있다.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권이라는 밥을 짓는 사람들이 수원 화성행궁에 있는 오래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과 불화하는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는 다산은 인권계의 홍반장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참사에 이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까지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 속 고통받는 사람들 곁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그런 다산의 첫인상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을 가로막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인권의 현주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다산의 숙원인 공간 이전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첫인상의 막막함이 누군가에겐 오르지 못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연대의 손길이 필요하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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