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n번방’ 사건 주범들이 검거됐다는 내용의 대대적인 언론 보도,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법 감정, 입법·사법·행정부의 강력한 처벌 기조가 이어지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 등의 수요 행위가 ‘디지털성범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사회적 인식으로 정립됐다.
‘디지털 성범죄’는 아동·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그루밍 등의 수법으로 정신적 지배 상태에 둔 후 피해자의 신체 일부 또는 전부가 노출되는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한 영상물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타인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영상물, 피해자의 얼굴과 음란물에 등장하는 신체를 합성하는 허위 영상물을 인터넷상에 유포하는 등의 행위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아닌 불법으로 촬영된 이른바 ‘몰카’ 영상에 대한 수많은 수요자들을 검거한 결과 대부분 범죄 경력이나 수사 경력이 없다. ‘몰카’ 영상을 성인물로 간주하는 성인지 감수성 결핍 등을 보였으며, 자신의 행위가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몰카 영상물을 성인물로 간주하고 하나의 재화로 취급할 수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추론의 대표적 예로 지난해 ‘다크웹’ 등을 통해 100여편의 성관계 몰카 영상물이 유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그러한 영상물이 국내외 음란물 사이트 등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게 됐다. 특히 토렌트는 대용량 파일을 빠른 속도로 공유하도록 만들어진 프로토콜로, 업로드 및 사용자를 P2P방식의 연결을 통해 자료를 전송하는 특성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 자료나 영화 및 영상, 출판 등 저작물 불법 유통의 사각지대로 악용되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2차, 3차 피해를 겪게 되는 등 n차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경찰에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는 2019년 2천690여건에서 지난해 4천340여건으로 무려 60% 이상 증가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작성한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센터에 접수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발생 건수는 총 18만8천83건으로 전년 대비 1.1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타개할 경찰의 수사 인력은 ‘제자리걸음’이고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경찰이 요구한 디지털성범죄 수사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따라서 ‘디지털성범죄’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몰카’ 영상물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수사 인력 증가와 함께 ‘몰카 영상물 접근=디지털 성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정립을 위한 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주호 안산단원경찰서 사이버팀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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