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뜻밖의 물건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올린 판매글에는 “서울대생이 수험생을 위해 직접 쓴 손편지와 공부할 때 썼던 볼펜, 그리고 서울대 마크가 새겨진 사인펜을 7천원에 판다”는 상세설명이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빨리 구매할수록, 의대·경영대 등 입시컷이 높은 학과 학생의 손편지를 받을 수 있다”며 구매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 게시글이 알려지자, 당장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여론의 뭇매가 이어졌고, 결국 해당 동아리는 판매중단과 함께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사태수습을 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인성과 무관하게 오직 ‘학벌’ 그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한, 씁쓸한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런 학벌 지상주의가 해프닝이 아닌 ‘사건’이 된다면 어떨까? 그땐 판이 달라진다. 누군가 선의의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6년 벌어진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이 있다. 당시 하나은행 인사부장 등은 임직원의 청탁을 받아 추천 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를 우대해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2022년이 된 지금에 와서, 이 사건을 소환한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서류심사 및 인·적성검사, 합숙·임원면접을 거쳐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지만, 채용비리로 인해 최종탈락된 한 응시생이 은행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1심 판결이 최근 선고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채용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응시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비리행위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며, 은행 측에 5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채용비리는 위법하다는 ‘상식’이 확인된 순간이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이 찜찜함은 뭘까? “최종 합격자를 결정할 당시,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들이 부족해 대학별 균형을 고려해 이를 임의 조정했다”며 끝까지 잘못을 부인하던 은행 측의 변론에 그 답이 있다.
우린 잠시 잊고 있었다. ‘실력으로 학벌의 벽을 넘었다’며 어떤 이의 성공신화를 흔한 일상인 것처럼 전파해온 언론보도 속에서, 현실 역시 마찬가지라 착각해온 것이다. 2016년과 2022년 사이에 6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특정 대학 우대’가 ‘대학별 균형’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들에게 학벌은 중요하다. 학벌이 곧 능력이고, 공정으로 간주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자신을 담금질하는 청년들에게 괜히 미안해질 뿐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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