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과 박종철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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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이란 마흐사 아미니의 ‘히잡 의문사 사건’으로 촉발한 반정부 시위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뒤 의문사한 22세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이란 전역 80개 도시 등에서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시위대는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 속에 히잡을 불태우고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인한 시위는 전 세계로 번져 나가고 있다. 이란 당국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고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연대를 표시하는 시위가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호주, 칠레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슬람 공화국에 죽음을’ 같은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수천명의 시위대는 이란대사관으로 향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성직자와 상인세력이 연합해 부패한 팔레비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을 건국한 이래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공화정과 신정체제를 융합한 독특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 선거제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체제 내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 대부분의 권력이 이슬람 성직자인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에게 집중돼 있다.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자 자격을 사전 검증해 걸러내는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의 12명 위원 중 6인이 최고 지도자가 직접 임명하는 이슬람 성직자다.

1979년 이래 반미를 국시(國是)로 삼고 있는 이란은 개혁, 개방 실패와 극심한 인플레이션, 인권 탄압 등의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對)이란 제재의 여파로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50% 이상으로 치솟았고 이런 가운데 지난해 당선된 강경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최근 여성들의 히잡 규정을 강화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1987년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1세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다. 심문 도중 물고문을 받다 사망한 그의 죽음은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폭발해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의 승리로 역사에 기록됐다.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자 ‘억’ 하며 쓰러져 사망했다는 당시 독재정권의 발표는 조사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대한 이란 정부의 발표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한 소녀의 죽음이 ‘이슬람 공화국’의 기치 아래 철옹성같이 굳건한 이란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뿌리고 간 작은 변화의 씨앗이 싹을 틔울 날을 고대하며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한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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