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 속 문화 오아시스 화방 사장님이 세운 미술관 ‘특별한 히스토리’... 황옥남 관장의 도전이 씨앗 지역 작가들과 화가인 남편 이해균의 작품 홍보 방안 모색하다 결국 미술관 설립
정조의 꿈이 깃든 세계유산 화성을 보유한 수원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욕구는 타 도시에 비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성장할 때까지 시립미술관이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2013년에 개관한 해움미술관(관장 황옥남)은 수원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해움미술관은 미술현장에 몸담아온 설립자 이해균 작가의 경륜에 따라 ‘거창한 것보다 작은 것으로부터 문화적 공감대를 열어가며 지역민의 욕구에 부응해 가는 창조적 예술 보급처로’ 출발한다. 더불어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수원이라는 지역사회에 문화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지역미술의 저변을 탄탄히 구축하는데’ 정성을 쏟고 있다
■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의 줄기서 꽃을 피우다
해움미술관은 이 일이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의 줄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힌다. ‘관심의 줄기’를 통해 ‘관람객들과 작가 사이에 예술의 온기가 가득 채워지는’ 바람을 가지고 ‘예술로 인해 우리의 삶과 일상의 가치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을 추구한다. ‘줄기’의 역할은 뿌리와 가지,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통로다. 이 사실을 통해 해움미술관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해움’의 해(태양)는 식물의 움(싹)을 틔우는 바탕이자 근원이다. 이처럼 해움이란 이름에는 예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들이 재능을 발휘한 작품을 생산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해움미술관은 화방에서 움을 틔운 것이다. 화방을 경영하던 황옥남 관장은 연필과 종이, 물감을 구입하기 위해 화방에 드나드는 지역 작가들과 화가인 남편 이해균 작가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방안을 모색하다 미술관 설립을 구상한다. “비록 사적인 출발이지만 미술관을 운영하다 보니 어느새 공적인 공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이런 자세로 임하다보니, 말은 하지 않지만 남편이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남편을 소외시켜야 했거든요” 해움미술관이 단기간에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황 관장의 이러한 신념이 관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움미술관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미술관이 터를 잡고 있는 교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동(校洞)’은 향교가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에 이장한 1789년에 수원향교가 팔달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교동이란 마을이 탄생한다. 이처럼 수원의 중심인 ‘교동’에 자리 잡은 해움미술관의 주변에 ‘구 수원시청사’와 ‘수원 구 부국원’ 같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여럿 있다. 일제강점기에 농작물 종자·종묘·농기구 등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의 건물은 해방 후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청사, 수원시 교육지원청, 공화당 경기도당 청사, 수원예총, 박 내과의원으로도 사용되었던 근대유적이다. 해움미술관은 ‘수원 구 부국원’의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시민들과 보존에 앞장선다. 이런 노력으로 ‘수원 구 부국원’은 2017년에 국가등록문화재(제698호)로 지정된다.
■ 오래된 시작-교동, 수원예술을 품다
해움미술관 개관을 기념한 기획초대전 ‘오래된 始作교동,수원예술을 품다’는 ‘수원시 최초의 사설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수원을 비롯해 안성, 안산, 오산, 화성, 평택, 용인 등 도내에서 활동하는 작가 76명이 참여한 이 초대전에는 원로 서양화가 김학두 화백부터 한국 화단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홍형표, 조진식 등의 중견작가와 권성택, 황보경 작가까지 총 76명이 참여했다. 세대와 분야를 아우른 이 초대전을 통해 수원의 행정·문화·예술의 1번지인 교동의 부활을 알린다. 특별전을 기획한 황옥남 관장의 다짐은 현재진행형이다. “해움미술관은 옛 모습을 간직한 구 도심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작은 문화예술의 보급소로서 교동 지역의 화려했던 옛 영광을 재현하고 복원해 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 아울러 수원과 경기도 지역의 예술인들에게 예술의 힘을 배양하는 의미 있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다”
해움미술관은 전시 장소를 미술관 안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2015년 5월에 ‘교동창작촌(대표 이해균)’의 이름으로 개최한 ‘가족이 희망이다’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작품이 전시된 장소는 ‘구 수원시청사(등록문화재 598호)’인데, 1956년에 준공되어 수원시청사로 사용되다가 ‘수원시가족여성회관’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 미술관,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품다
2015년 6월에 연 제1회 ‘알터 에고(Ater Ego)’전은 실험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또 다른 자아’를 뜻하는 알터 에고전은 새로운 자신을 탐색하는 성찰적 의미를 구현하는 자리로 회화, 조각, 설치미술까지 아우른 전시였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해균 작가는 예술가를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고 개조하며 선험적 또는 사변적인 사유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본능적 심상 표출의 수행자’로 규정한다. 이해균을 비롯해 김성배, 김수철, 김영섭, 오은주, 차진환, 최현식 7인이 참여했다. 한편 해움미술관은 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알터에고 상’을 제정하여 2015년 첫 수상자로 김수철 작가, 2016년 수상자로 최세경 작가를 선정한다. 같은 해 8월에는 한국 판화계의 거장 ‘김억·류연복 작가 목판화 展 -땅과 삶이 만나는 목판화’전을 통해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 목판화의 흐름과 목판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김억은 명승지나 사찰 등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산수풍경을 지도처럼 제작하고 흑백으로 찍어낸 목판화를 통해 수묵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공간, 한국의 자연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류연복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형식을 빌려 사람이 사는 마을을 우주의 지세로 표현한 작품 ‘남한산성전도’, ‘외암골전도’ 등의 작품을 통해 땅과 하늘의 이치를 드러냈다. 2015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국현대목판화-국토와 민중’전을 연다.
예술철학자 장석주는 ‘국토와 민중’전을 참여한 작가를 국토와 민중 두 계열로 나눈다. 땅의 생명력과 역사성을 찾아내려는 ‘국토 계열’로 김상구·이상국·김억·김준권·류연복·안정민·손기환·정비파·홍선웅을,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과 그들이 걸어온 흔적을 복원하려는 ‘민중 계열’로 서상환·윤여걸·정원철·이윤엽·강경구·김봉준·정찬민을 들었다. 1980년대에 뜨겁게 타올랐던 목판화운동은 민주화운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다
목탄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재삼 작가의 ‘MOONLIGHT IN FOREST(2016)’은 달과 숲을 주제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일깨워준 흥미로운 기획전이다. 기획전 ‘비-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2018)’ 역시 주제의식이 분명하다. 김희경, 성민우, 전경선 3인의 작가는 관람객을 향해 “기술 문명에 의해 버려진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관계를 예술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예술”을 모색한다.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3·1운동의 정신 전-아! 대한민국’과 수원민족미술인협회 30주년 기념전 ‘산은 봄을 품어 안고’를 연달아 기획한다. 두 기념전은 작품 전시를 미술관에 한정하지 않고 남문로데오 갤러리로 확장하여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계인의 풍경, 송창전(2020)’과 강행복, 김상구, 김재홍 3인의 ‘판화와 회화의 조응전(2021)’도 울림이 큰 전시였다.
내년이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움미술관은 ‘지역주민들과 문화 향유를 위해 찾아가는 미술관, 문화소수자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미술관, 다양한 기획과 실천을 통해 미래의 발전적 가능성을 지닌 미술관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진지하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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