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는 ‘나는 화와 내는 화’가 있다. ‘나는 화’는 산에 불이 나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없으나 ‘내는 화’는 내가 산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있다. 화가 많은 나에게는 참 공감하면서 동의(同意)가 되는 말씀이다.
‘화’란 사전적 의미로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 한다. 살아있는 생물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표시를 낸다. 식물은 빛을 너무 많이 받거나 적게 받을 때, 수분을 너무 많게 섭취하거나 적게 섭취할 때, 광합성작용이 방해 받을 때에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식물에게 칼집을 내고 10㎝ 거리에서 소리를 측정한 결과 10~100㎑의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비명이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식물도 받은 스트레스를 표출하는데 수 만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을까?
최근 순간적으로 욱해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발생한 폭행과 폭언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나 가족이나 친구와 직장동료 등 친밀한 이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낸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언짢은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것은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욕이나 비난,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강압적 지시나 무시, 배려 없는 매너 등을 접하게 되면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화가 나는 것은 신 레몬을 입에 넣었을 때 침이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적 반사행위’와 같지 않을까? 이는 학습과 경험이 없어도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며 외부의 행동으로 표출되기 전의 일이다. 생각을 정화하는 필터링(filtering)을 거칠 시간이나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내는 화’는 ‘나는 화’를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는 작은 오해나 언짢음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저 사람은 이런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좀 짜증을 부려도 괜찮을 거야, 하찮은 일이야, 응석을 부리는 거야, 장난이야 등등….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 도가 지나치거나 상대방에게는 의도한 것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이다. 화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낸다. 함께 하는 시간과 접점(接點)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가 크고 응어리도 오래간다. 따라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조심스런 언행이 필요하다. 또한, 듣는 사람은 화를 내기 전에 한 박자 쉬어 무심결에 한 행동인지, 진심인지, 해칠 의도가 있는지 등 상대방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끔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훈계의 말을 하면서 오히려 점점 더 화가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화가 화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급적 화는 증폭되기 전에 빨리 가라앉히는 것이 좋다. ‘화는 참으면 나를 죽이고 터뜨리면 남을 죽인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도 요령과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기분을 크게 상하지 않되, 그 사람의 잘못된 말이나 행위의 팩트(fact)만 지적해야 한다. 당신의 이런 말이나 행위 때문에 내가 기분 나쁘고 상처를 받았다고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같이 화를 내면 인정받기 어렵고 싸움만 생긴다. 화를 잘 다스리고 또 화를 내었다면 빠른 시간 내에 화해를 해서 앙금이 오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前 의왕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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