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권리‚ 그리고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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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옥 경기도 소비자단체협의회 부회장

‘책무(責務)’. ‘맡은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다. 요즘처럼 이 단어가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다.

소비자 문제도 소비자, 사업자, 그리고 정부 등 각자의 위치에서 책무가 있다. 최근 소비자상담센터의 상담 증가율 1위 품목이 ‘봉지면’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라면 등 주요 생필품을 시중보다 7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광고해 소비자를 유인한 후 배송을 지연한 사례다. 거래 금액이 소액인 점을 고려하면 상담을 신청하지 않은 실제 피해 소비자는 몇 배가 될 것이라 짐작된다.

소비자기본법에는 소비자가 갖는 기본적 권리뿐만 아니라 책무가 규정돼 있다. 소비자의 8대 권리 중에는 ‘물품 등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래상대방·구입장소·가격 및 거래조건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와 ‘물품이나 서비스의 사용으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 신속·공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올바르게 선택’해야 할 책무도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지나치게 저렴한 물품을 선택한 것은 물품을 올바르게 선택하지 않은 대가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쇼핑몰이 지키지 않은 책무는 훨씬 심각하다. 소비자기본법에 명시한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는 책무’,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이익을 침해하는 거래조건이나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책무’, ‘소비자의 불만이나 피해를 보상해야 하는 책무’ 등을 저버린 위법행위다. 게다가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에서 규정한 ‘거짓 또는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 또는 소비자와 거래’한 금지행위의 위반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위반 사업자에게 시정조치(공표명령), 임시중지명령, 영업정지, 과태료 부과 등을 할 수 있다.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고 소비자 피해를 보상받도록 조치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고 책무다. 오랜 기간 유사 투자자문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 피해의 예방과 공정하고 신속한 해결을 위해 제 역할과 책무를 다했는지 묻고 싶다. 소비자를 기만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편취한 위법 사업자들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알고 싶다.

2022년의 가을은 수많은 생명을 떠나 보낸 우울한 가을이었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책무를 다했는지 준엄하게 묻고 있다. 소비자 문제 또한 피해를 예방하고 보상받을 수 있도록 소비자와 사업자, 정부와 사법기관이 제 역할과 본연의 책무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손철옥 경기도 소비자단체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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