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어리석음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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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다시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종일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곤 한다. 내 앞에 놓인 많은 선택지는 누가 만들고 결정한 것일까? 또 이 선택지들의 배열은 누가 결정했을까? 누군가가 결정했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했을까? 오늘 아침은 갑자기 날씨도 쌀쌀해졌으니 운동을 한 번 거를까? 내가 앉아 있는 시립도서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어 이용하기 참 편리한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같은 일을 하는데도 왜 회사마다 사람마다 처우가 다를까? 사람들은 왜 직업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을까? 길은 왜 이 방향으로 놓았으며, 어떤 시간 때 어떤 요일에만 꽉꽉 막히고 어떤 때는 한가할까?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문제부터 직장, 도시, 사회 문제까지.

‘선택’은 단지 개인 차원의 문제일까? 법률과 제도, 정책, 시스템, 거기에 종교와 윤리, 도덕까지, 시민들이 크게 영향을 받고 살거나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사회의 구조는 누가 결정할까? 건물과 도로와 철도, 도시의 혈관 같은 상하수도, 전기통신망과 에너지와 식량 공급망들이 복잡하게 얽힌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관계하면서 생활하는가? 물리적 공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 배려와 공존, 생명 존중과 평화라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이 선택들에 위계질서는 있는가? 물질적 풍요와 자원 고갈, 개발과 환경보전, 이윤과 생명안전, 이 불편한 이분법들에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는가? 매 순간 자신과 타인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가 발전시켜온 정치시스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답할까? 민주공화국의 시민인 ‘나’는 어떤 선택권을 갖고 있는가?

전쟁이나 재난도 아닌 일상생활에서 젊은이들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충분히 예상했고 과거에도 잘 관리해 왔던 상황들, 재난대응시스템도 아닌 일상의 공공행정이 갑자기 무너졌다. 이것을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복잡하고 고도화된 사회 시스템에 의존해 살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서로 선택지가 돼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활한다는 자신의 현실도 부정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도시를 사바나로 착각하는 사람들. 죽음을 내려다보는 사람들, 반지하 안타까운 죽음을 사건 현장처럼 내려다보던 대통령은, 어리석은 왕과 간신들이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최전선의 사령관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는 과거 왕권시대 역사의 한 장면처럼, 참사의 책임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보낸다. 위와 아래로부터 동시에 무너지는 사회적 신뢰와 일상의 공공행정, 무엇이 신호고 방아쇠였을까. 민주주의의 취약성인가. ‘권력’ 자체가 목적인 사람, 민생을 자율과 책임에 적당히 두면 알아서 돌아가는 것쯤으로 여기는, 나라 경제와 기업활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다. 되돌릴 수 없다면 다음 선택지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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