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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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몇 해 전 일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오산천 둑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고주파 소리가 들려왔다. ‘삐익삐익’, 밤중에 웬 새 소리인가 싶었다. 소리가 나는 쪽에선 자맥질을 하며 수면 위 파동을 남기는 괴생명체의 실루엣이 보인다. 길고 매끈한 몸뚱이에 도톰한 꼬리를 가진 녀석의 정체는 바로 수달이다. 시민들의 발걸음과 가로등 불빛, 자동차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달 두 마리의 유영은 한동안 이어졌다.

수달은 식육목 족제빗과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숲과 들이 아니라 강과 저수지 등 물을 끼고 살아간다. 몸길이의 3분의 2에 달하는 긴 꼬리는 물속에서 방향타 역할을 한다. 머리는 납작하고, 몸은 유선형으로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다섯 개의 발가락 사이엔 물갈퀴가 있어 헤엄치기 좋다. 귀는 작고 콧구멍은 수중에서 자유자재로 여닫을 수 있다. 입 주변에 난 수염은 물흐름과 물고기 이동을 추적하는 레이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수달은 수중생활에 최적화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천에서 주로 생활하고, 수영을 잘하는 만큼 수달의 먹이는 물고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블루길, 배스 같은 생태계 교란종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 밖에도 개구리, 민물게 등 양서·파충류와 갑각류를, 드물게 흰뺨검둥오리, 물닭, 논병아리 같은 수변에 사는 새를 사냥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달은 우리나라 하천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최정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수달이 서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천의 먹이사슬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또 수생태계의 질서, 즉 먹이사슬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핵심종으로 그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수달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근접종’, 환경부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이지만 다행히 과거에 비해 서식 분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중랑천, 부산 온천천, 대구 신천, 전주 전주천 등 도심하천에서도 수달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경기도에도 황구지천, 안성천, 오산천, 탄천, 경안천 등 과거 서식 기록이 없던 하천에서 수달이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서식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해서 결코 수달 보호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수달은 하천을 따라 생활하므로 생활기반이 좁으며 하천생태계 교란에 취약하다. 한정된 서식공간을 두고 개체 간 경쟁도 치열하므로 서식밀도는 높지 않다. 하천을 직강화하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는 등의 하천정비사업은 수달의 은신처와 보금자리를 앗아간다. 댐, 수중보 같은 하천구조물은 수달의 이동과 개체군 교류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또한 수달은 최상위 포식자인 만큼 화학물질과 중금속 생물농축에 취약하며,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그물이나 통발에 희생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수달이 198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으며 결국 일본 정부는 2012년 수달 멸종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 동물학자들은 한국의 수달 존재 자체를 부러워한다. ‘있을 때 잘하자’라는 교훈을 되새겨 봄직하다.

경기도를 적시는 하천별로 맞춤형 수달 보호종합계획을 마련해 서식지 보전방안을 실천하고 위협 요인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산에 호랑이 표범은 사라졌지만 우리 강에 수달은 살아남아 참으로 다행이다.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수달을 반갑게 맞이하자.

우동걸 국립생태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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