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이란, 국가(國歌) 침묵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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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그간 축구의 변방으로 불려온 아시아의 저력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고 있다.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각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에게 패한 것을 비롯, 우리 태극전사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 접전 끝에 무승부를 이룬 것이 그 좋은 예다. ‘공은 둥글다’는 축구계의 오랜 격언이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언더독(Underdog) 아시아의 거센 돌풍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팀이 있다. 바로 ‘이란 대표팀’이다. 유럽의 복병 웨일스를 꺾으며 16강행 티켓에 바짝 다가섰음에도, 고국 이란에 돌아가면 반정부행위자로 분류돼 징역 등 각종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영국 매체 더선(The Sun)은 사형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란 대표팀은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과 2차전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하거나 ‘부르는 척’ 시늉만 하며 자국의 반정부시위에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드러냈다. 

대표팀 주장인 에산 하지사피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아달라”며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라는 22세 여대생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하면서, 두 달 내내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과정에서 현재까지 460명이 숨졌고 1160여명이 다쳤다고 한다. 히잡이 상징하고 있는 여성인권에 대한 억압을 이 기회에 타파하고자 하는 이란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아스팔트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히잡법’을 제정했다. 국적과 종교 불문,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해야 하고, 여성들의 대외활동 역시 크게 제한됐다. 반발이 커질 때면, 채찍형을 내리거나 최대 60일까지 구금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히잡 의문사 사건’이 터졌고, 이를 계기로 소위 ‘테헤하쉬터디’로 불리는 이란의 2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연일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이란 내 반(反)인권 실태를 알리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축구공이 둥글듯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둥글다. 

오버독(Overdog)의 위세를 뚫고 기적을 만들어내는 언더독처럼, 이란 역시 더는 히잡을 강제하기 어려운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까지 필자는 태극전사들만큼이나 이란 대표팀을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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