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정치적 문제는 정치의 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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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권위주의 체제 시기에는 종종 법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곤 했다. 법보다 우위에선, 그야말로 정치 만능 시대의 정치권력은 명백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도 사법 절차를 얼마든지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정치가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할 때 정치 부패가 싹트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데 민주화된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인이 많은 것을 목격하고 있다.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는 행위가 중요한 정치적 성과인 양 접수처를 향해 걷는 모습이나 접수 장면은 종종 주요 뉴스가 되기도 한다. 고소·고발은 난무하지만 상당수가 소 취하의 형태로 유야무야로 끝나고 만다. 그럴 때면 고소·고발은 처음부터 왜 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상대를 욕 보이는 것과 잠시나마 자신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의 효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소·고발의 남발은 그러한 소기의 목적 달성(?)과는 달리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라는 꽤 깊은 내상을 남기게 된다. 정당이나 정치인의 고소·고발 대부분이 법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라기보다 권력 다툼 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상대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서의 의미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행태는 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그러한 정치의 실종에 정치인 스스로가 앞장서는 것은 아이러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행태가 사법 만능 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정치적 문제를 법에 호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법을 너무나 가볍게 여길 뿐 아니라 심지어 불신한다는 점이다. 선고 결과에 따라 판사를 겨냥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행태는 사법 불신을 가중할 뿐 아니라 그만큼 정치 불신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일부 판사가 정치적 쟁점에 관해 의견을 피력하는 일도 있다. 그 역시 정치적 주권자라는 점에서 판사가 정치적 논란에 무조건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사의 정치적 의견이 이른바 진영논리 속에서 소비될 경우 사법적 정의가 크게 동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여하튼 국회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사법이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했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점도 사실이다.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 역시 공론장에서 법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판사 개인의 정치적 의견 표명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인이 판사나 법원을 압박하며 사법조차도 정치로 재단하려는 행태다. 정치인의 판사 및 법원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이나 압박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에 반하면서까지 사법에 대한 과도한 정치의 침윤이 일어나는 것은 민주주의 퇴행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문제는 정치의 장에서 풀어 가는 합의를 하기 바란다. 정치와 법의 관계에서는 법 만능도, 정치 만능도 경계해야 하며 정치와 법의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 비로소 민주주의는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석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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