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의 행적을 알리는 탑비로 창성사터에 있다. 직사각형의 비받침 위에 비몸돌을 세운 다음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비문에는 진각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浮石寺)를 중수하는 등 76세에 소백산에서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간략화된 고려 후기 석비의 형식을 보이며, 칠곡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와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보물) 등과 비교할 만하다.
글씨는 고려 전기의 힘 있는 풍모가 사라진 투박한 것으로, 고려 후기의 글씨가 퇴보했음을 보여준다. 비문은 이색이 짓고 승려인 혜잠이 글씨를 새겼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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