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의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 정책

image
한민주 영국 유학생·미술사 전공

영국에는 방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는 뮤지엄과 갤러리들이 런던에만 여러 곳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빅토리아&앨버트, 테이트 모던 등이 그 예로, 리스트는 계속된다. 한 번쯤은 누구나 들어봤을 이 뮤지엄들은 국제적으로 압도적인 수와 명성을 가진 유물 및 작품들을 가지고 있지만 입장료가 모두 무료다. 참고로 영국 박물관의 관람이 박물관 무료 입장 정책과 상관없이 유료화될 수 없는 이유는 자국의 예술품 비율이 외국의 예술품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박물관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한다면 옛 대영제국이 약탈한 외국의 유물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 가는 수준이다.

무료 입장을 고수하는 영국의 박물관들도 유료 입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국·공립 박물관이 아닌 개인 박물관일 경우나 특별 전시회의 입장일 경우다.

이러한 영국의 박물관 무료 관람 정책은 1960년대부터 논의돼 2001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영국의 문화장관인 크리스 스미스가 유료 입장을 지지하던 보수당 정권의 반대에도 굳건하게 무료 관람 정책을 지켜낸 결과물이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영국과 노동당은 모든 사회계층이 즐겨 마땅한 문화예술 활동의 기회를 넓히는 것에 가치를 둔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영국도 그 가치관이 달라지진 않았다.

BBC 뉴스 기사에 따르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관람 정책 이후로 방문객 수가 2배 이상으로 늘고, 특히 하위계층 시민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증가한 관람객의 대부분은 이미 방문한 기존의 관람객이 중복으로 박물관을 방문한 경우였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항상 예산이다.100% 정부의 재정 지원만으로 모든 박물관이 살아갈 순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예산 문제를 보조하기 위해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 같은 상점 운영을 하고, VIP 고객의 예술품 구매 및 후원, 그리고 방문객의 기부금과 자원봉사자 모집으로 운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무료 입장 정책 시행 이후 21년이 된 지금 영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굳건하게 무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로 박물관, 미술관 무료 관람은 이제 영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한국에서도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관람 정책이 2002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유료화와 무료화를 번복한 기록이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무료 입장 정책이 반드시 옳은 결단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관람정책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무료 입장이 국립박물관의 관람객 총수를 증가시켰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는 오히려 관람객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이렇듯 박물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관람객 증가치가 달라 한국에서의 박물관 무료 관람 정책이 관람객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박물관 입장료 무료화 찬반론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둘 다 합당하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문화 의식과 교육의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회계층을 위한 문화예술 경험의 기회를 줄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인 필자의 친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국 정부의 억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술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부에서 억압해야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무료 관람 정책의 전면화가 예술을 ‘공짜’라는 인식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무료화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기 전에 현재 한국의 교육과 박물관이 ‘공공성’과 더불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평소 문화예술을 접하게 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교육과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담론이 이뤄져야 할 주제일 것이다.

한민주 영국 유학생·미술사 전공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