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 타국에서 첫 겨울] 국내 지원책 전무... 우크라 난민들 ‘생존 전쟁’

한국 온 피란민 2천여명… 도내선 안산·평택 등 집중 
정부, 폴란드 사는 우크라 난민에 총 600만달러 지원
정작 국내 피란민엔 지원 無… 도내 전담인력도 부재
봉사단체·NGO 등이 돕지만 해외 구호활동에만 초점
2~10월 우크라 국적 난민 신청자 15명, 인정자 수 ‘0명’
“대다수 취약계층, 지자체·시민단체 협력 인도적 통합해야”

②한국의 우크라이나 난민, 어디에 있을까

우크라이나 난민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국내에 ‘난민’ 지원책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난민 지위’를 얻기가 쉽지 않아 당사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꼭꼭 감추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국가 전쟁을 피해 이국 땅을 밟았더니 이번엔 겨울철 생존이 전쟁인 상황. 경기도에 사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지금 이 추위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 고려인 많은 안산·평택·화성 등지에 거주... 지원책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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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러·우 전쟁 발발 후 한국으로 터를 옮긴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2천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거주지가 불분명한 피란민 특성상 정확한 수치를 파악할 순 없지만 경기도내에는 안산, 안성, 평택, 화성 등 고려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도내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안산시의 경우 165가구, 350여명의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쉽게 통용되지 않다 보니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힘들뿐더러, 피란민 대부분이 엄마와 아이들로 구성된 한부모가정(아빠는 징집 대상)이기 때문에 육아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워서다.

무엇보다 난민이 아닌 피란민 신분에 그치는 상황이라 공적인 모든 활동을 하기가 마땅치 않다. 정부·지자체 역시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민간단체 등에서 개별적으로 이들을 돕긴 하지만 한계가 있긴 마찬가지다. 각종 봉사단체와 비정부기구(NGO)의 초점이 ‘해외(우크라이나 현지) 구호활동’에 맞춰져 있어 ‘국내 거주자(우크라이나인) 지원’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김영숙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장은 “사실상 우리나라에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지원책은 전무하다”며 “정부와 경기도, 여러 시·군 등 지자체에도 지원책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영하권 강추위에 이불 한 장 살 돈도 없이 한국살이를 버티고 있다. 관계기관 등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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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보다 국외 도움에 초점...경기도 “지자체에서 나서긴 어려워”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이 정말 없을까. 사실은 소소하게나마 있다. 하지만 딱히 한국 정착에 도움이 안 된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2월 당시 국내 체류 중인 3천800여명(전쟁 전)의 우크라이나인에게 현지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하고,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비자 신청 서류를 간소화한 바 있다.

다만 이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동포’나 ‘한국에 91일 이상 장기 체류한 우크라이나인이 초청하는 가족’ 등 소수만 해당돼 사실상 ‘고려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에 그쳤다.

이와 함께 정부는 폴란드에 사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총 600만달러(약 76억7천만원)를 지원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150만달러(19억2천만원)를 기부했고 6월에는 200만달러(약 25억6천만원)를 추가로 기부하며 식량과 의료용품, 생필품 등을 구매토록 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 있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위한 지원은 없는 실정이다. 경기도 내부적으로만 봐도 전담 인력이나 지원 계획 등은 부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 관계자는 “난민은 법무부 관할이기 때문에 경기도 차원의 난민 관련 정책은 없으며 현황이나 인원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법무부 관계자 역시 “우크라이나 등 특정 국가 출신의 난민만을 지원하기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있다”며 “전쟁 상황 및 피란민 현황 등 우크라이나 관련 동향은 모니터링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人 ‘난민’ 아닌 ‘피란민’ 신세... 인도적 통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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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피란민을 돕기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모색되지 않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예컨대 일각에서는 난민을 수용했을 때 동반되는 사회복지 비용에 대한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거나, 한국 사회에 동화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식이다.

그 속에서 무엇보다 ‘난민법’이 가지고 있는 맹점이 크다. 현행 난민법에 따라 정부는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에만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해줄 수 있는데, 관할 당국이 ‘난민 지위’를 쉽사리 내주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피란민도 ‘난민’으로 칭하지 못한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2년 처음으로 제정된 우리나라의 난민법은 난민 인정자에 대한 기초생활, 교육 등 기본적인 처우를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서 정한 ‘난민’ 인정 기준은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정치적 견해 등 5가지 이유로 박해를 받고 출신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한다.

여기에 ‘전쟁’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비자를 챙겨 한국 땅에 건너오기도 힘들지만, 건너와도 각종 서류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2월부터 10월까지 우크라이나 국적의 난민 신청자 수는 15명, 인정자 수는 0명이다. 즉 러·우 전쟁 발발 후 현재까지 한국에서 인정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은 단 한 명도 없으므로, 정부·지자체 차원의 공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가영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80%가 여성과 아이 등 취약계층”이라며 “전쟁이 장기화하는 만큼 경기도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인도적 차원의 통합을 하려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난민법 시행 첫해(2013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난민 신청 건수가 늘어남에도 인정 건수는 평균 2%에도 못 미친다. 최근 5년(2017~2021년) 통계만 봐도 연도별 난민 인정 비율은 평균 1.3%에 그친다. 이는 유엔 가입국 평균(38%)과 비교해도 3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은 수치다. 국내 난민 인정 심사의 소요 시간은 2020년 평균 16.9개월에서 2021년 23.9개월로 늘었다.

오민주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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