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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 타국에서 첫 겨울] 유난히 추운 낯선 한국 겨울우크라 ‘고향의 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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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 타국에서 첫 겨울] 유난히 추운 낯선 한국 겨울우크라 ‘고향의 봄’ 기다려요

결혼한지 한달만에 전쟁, 간신히 한국왔지만… 살길 ‘막막’

① ‘율리아의 코리아 겨울나기’…나의 고향 우크라이나에게

지난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재까지 약 1천400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했다. 이 중 한국으로 온 피란민은 2천500명, 상당수가 경기도에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한국에서 맞는 첫 겨울은 어떨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어렵게 탈출해 타국 땅을 밟았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간다. 본보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원책 등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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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피란민 율리야 씨(33)는 러·우 전쟁을 피해 지난 9월 한국에 입국했다. 지난 11월30일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에서 만난 율리야 씨가 한국에서의 첫 겨울,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오민주수습기자

잘 지내는지 물어도 될까요. 누군가에겐 쉬운 인삿말이 저에겐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네요.

올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이 겨울이 야속하기만 하네요.

10월부터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에도 무차별 폭격이 일어나 주요 시설과 시스템이 마비됐다고 들었습니다. 전기가 끊겨 한동안 아무런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터진 전쟁에 저도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몰라요. 그나마 남편이 우크라이나 국적의 고려인이라 다행히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우리 부부는 우크라이나 동쪽에 있는 자포르지에서 기차로 12시간을 이동해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에 겨우 올라탔어요. 24시간을 달려 도착한 국경에는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가 줄을 지어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국경까지 걸어가기 시작했고 기나긴 행렬은 8시간 동안 이어졌어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여성과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아이는 그렇게 남편, 아빠, 가족들과 작별했어요.

겨우겨우 한국에 왔는데 생각보다 더 추운 현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어요. 방문동거 비자(F-1)를 받은 저는 단순노무 직업만 가능해 고향에서 선생님으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한국에서 일을 구하긴 힘들더라고요. 한쪽 귀 50%만 들리는 청각장애인 남편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한정적이고요.

경기도의 한 가구공장에서 목재를 나르는 일을 했지만 그마저도 한파가 찾아오면서 일을 구하기 힘들어졌어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8만원인 작은 원룸 월세 내는 것도 버겁습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없대요. 난민법이 있지만 진정한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고요. 주변에 저와 같은 처지의 우크라이나인은 한국에서의 살길이 막막해 결국 타국으로 다시 떠났어요. 유럽 국가들은 피란민을 위해 임시주거시설을 지원하고 생활지원금도 지급한다고 들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요?

길거리에 알록달록 꾸며진 트리 장식과 흘러나오는 캐럴이 더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고향에 있다면 저도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음식을 만들었겠죠. 그리고 동네 남자아이들이 빵과 꿀을 달라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렸을 테고요.

어서 그날이 무사히 오길 바랍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부디, 잘 지내고 계세요.

※ 이 기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지난 9월 한국으로 건너온 우크라이나 피란민 율리아씨(33)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편지 형태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인터뷰에는 허유진 통역사가 함께 했습니다.

오민주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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