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특별한 여행이나 큰 프로젝트에서만 얻는 게 아니다. 일상을 돌아보면서도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보는 사람의 높이, 그때의 상황, 시간, 위치, 배경 등에 따라 대상에서 느껴지는 것은 달라진다.
수원시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는 대상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움직임을 조각에 담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1일부터 일상의 순간들을 이야기와 함께 조형적으로 풀어가는 양정욱 작가의 ‘어제 본 하루 중에서’다.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111CM의 장소적 특성과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는 작가의 작품은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지나간 것들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번 전시에선 총 9개 작품이 관람객과 만난다. 조각 ‘균형에 대하여’는 집안일, 친구 만나기, 아이 돌보기, 일, 독서 등에 쏟는 시간을 일정하게 보내던 화자가 어느 날 하루를 통째로 한 곳에만 모든 시간을 쏟고,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매번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키며 균형을 맞추는 일상의 모습을 조각에 투영했다. 반복적인 움직임을 조각에 담아 시간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단지 한순간만을 담지 않는다. 사진 한 장으로는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 주변의 모습, 사람들의 사연 등을 멈춰진 형태가 아닌 어떤 순간을 반복시켜서 관객에게 설명한다.
공중에 걸린 조형물을 중심으로 양쪽 구조물이 마주보고 도는 작품 ‘그는 옆이라 말했고, 나는 왼쪽이라고 말했다’는 ‘균형’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부부가 그림을 벽에 걸기 위해 못 박을 위치와 그림 액자를 이리저리 옮겨보고 오랫동안 맞춰가는 과정을 나타낸 이번 작품은 서로 간의 설득이 오가는 순간에 맞춰지는 균형이 생동감 있게 드러난다.
반복하는 그의 작품 속 우리가 얻는 것은 위로다. 작가가 표현하는 누군가의 일상은,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무로 만든 낱개의 작은 날개들이 하나의 쌍을 이뤄 날갯짓을 반복하는 모양의 ‘같은 마음으로’는 한쪽 날개만 남은 사람들이 작고 좁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날개를 젓는 순간을 담아 보는 사람을 달래 준다. 작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누군가의 일하는 모습, 액자 거는 부부 이야기 등 일·관계로 만들어진 균형·습관은 움직이는 조각에 녹아들어 삶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사유할 수 있다.
작품을 만들기 전 작가가 느꼈던 특정한 인상을 글로 세상에 꺼낸 뒤 그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들어 간 점도 예술로 포용된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에 어울리는 안경의 크기, 바지의 색, 걸음의 속도, 들썩이는 어깨, 재채기 소리까지 모두 모양으로 재정립했다. 작가가 직접 쓴 소설, 시, 수필 등은 이렇게 벽에 메모지와 테이프로 붙여져 작품을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양 작가는 “작품들을 만들 때 한 가지 상태가 아니라, 계속 맞추고 변화하려고 움직이며 노력하는 ‘균형’을 나타내기 위해 반복적인 순간을 표현했다”며 “111CM에 부분적으로 남은 연초제조창의 골조나 일하던 사람들의 동선 등 은유적 사건을 떠올리며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을 독특한 그 무엇으로 골똘히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19일까지 열린다.
김건주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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