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2022년 중동과 제구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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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점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해마다 ‘다사다난’했던 365일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어 본다.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의 주석서인 춘추좌씨전에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롭게 변화를 주거나 개혁을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사자성어로 사용된다.

2022년 중동의 한 해를 되짚어 보며 ‘제구포신’을 떠올린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짧은 방한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40조원의 선물 보따리를 풀며 8대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던 38세의 젊고 개혁적인 아랍 지도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사우디비전2030’과 그 일환으로 진행되는 ‘네옴시티(NEOM City)’ 프로젝트를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깊이 각인시키며 제2의 중동 특수에 대한 기대를 한층 부풀렸다.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으로 불과 4년 전에야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2019년 BTS의 사우디 공연에 즈음해서야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아프리카의 아랍 국가인 모로코가 2022 카타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으로 중동 전역이 축제 분위기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개최되는 월드컵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인구 280만명, 경기도 크기의 작은 아랍 국가인 카타르가 중동지역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써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 원유 매장량 14위의 에너지 부국인 카타르의 월드컵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노력은 유치 과정의 문제점,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월드컵 기간 중 복장 및 음주 규정 등 민감한 사안에도 불구하고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9월 히잡 착용 문제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사망한 이란의 젊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 여성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테헤란을 비롯한 중소도시에서 석 달째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시위는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통해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이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 내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신정국가로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최고 지도자로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독특한 정치구조를 가진 나라다. 서방의 경제 제재와 이슬람 정부의 정책적 무능 및 부패로 인한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청년층 실업 문제로 이란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부패한 정부에 대한 이란 여성과 젊은층의 분노이며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의 표출인 것이다.

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 올 한 해 중동의 시간은 제구포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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