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사회적 약자의 문화예술 향유 권리 ‘배리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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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비장애인에게 문화예술 향유는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공연·전시 관람 등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일차적으로 수반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비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는 근본적으로 개방성의 특징을 지닌다.

문화예술 소비는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기실현’ 욕구, 즉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에 해당한다. 소비자는 다양한 문화예술 참여 활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비장애인의 거침없는 문화예술 소비 접근과 달리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문화 향유에는 커다란 장벽이 버티고 있다. 이를 전문 용어로 ‘배리어'(Barrier)’라 부르며 자막이나 수어 통역, 음성 해설 등을 통해 문화예술 관람 장애를 없애려는 시도를 ‘배리어프리’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문화예술 소비는 설렘과 즐거움의 대상이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 원인은 접근성의 결여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적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이 보고 싶은 연극이나 콘서트, 전시, 영화 등 문화예술 콘텐츠 제공 시설에 무난하게 접근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가족이나 친구 같은 조력자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문화예술 공간 접근 자체가 버거운 일이다.

가까스로 문화예술 시설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리어프리 인프라가 확보돼 있지 않으면 문화예술 향유는 또 한 차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1 공연예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석을 갖춘 공연장은 전체의 57.5%에 불과했고 대학로 공연장 120곳에 대한 조사(2018년 기준)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도움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연장은 불과 14곳뿐이었다. 대학로 공연장의 대부분이 통로가 비좁고 계단이 가팔라 사회적 약자에게 심각한 ‘배리어’가 되고 있다는 결론이다. 장애인 전용석은 거의 맨 앞이나 맨 뒤에 위치해 시야가 보장되지 않거나 선택의 자유를 막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배리어프리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배리어프리가 적용되고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은 콘텐츠가 사실상 전부나 마찬가지다.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고 있는 민간 극단이나 제작사 등은 배리어프리 도입 시 소요될 별도의 예산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관람 방해 등을 이유로 배리어프리에 부정적인 비장애인들의 인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들이 배리어 걱정 없이 비장애인처럼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즐기고, 인기 뮤지컬에 환호하고, 클래식 연주에 푹 빠져 드는 경험을 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문화기본법에도 규정된 문화적 권리다. 주말에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장애인은 6.9%에 불과한 반면 비장애인은 20.1%라는 정부 통계 수치(2019년 기준)는 사회적 약자 대상의 배리어프리 확대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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