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월경 사적영역 아닌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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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장

과거에는 ‘월경’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불편해하면서 ‘그날’ ‘마법’ 등 우회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깔창생리대’ 사건을 계기로 월경을 ‘인권’ 문제로 인식하는 월경담론이 공론화되면서 시민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과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지난 21일 ‘경기도 여성청소년 월경권’을 주제로 온라인 정책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월경권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월경을 사적 문제로 보지는 않지만 아직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고, 월경 평등은 더욱더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는 학부모 대표의 토론, 그리고 학교에서 ‘월경’이 여성 비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학생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직까지는 월경이 인권 의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은 자궁내막이 성숙해지고, 배란이 발생하며 자궁내막이 배출되는 월경을 평균 12세부터 52세까지 약 28일 주기로 40년간 반복하며 전 생애 동안 2천만원 정도의 비용을 생리대 구매에 소비한다. 2013년 유엔은 ‘월경의 위생 문제는 공공보건 사안이자 인권의 문제’라고 명시하고 세대, 계급, 장애, 지역, 종교 등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월경으로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전 세계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월경을 여성 비하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장애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생리대를 사용하고, 여성 노숙인은 박스를 깔고 앉아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방식으로 월경을 견뎌내고 있다. 또 한편의 여성들은 월경용품 비용 부담을 줄이려다가, 혹은 객관적인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채 비위생적인 상황에서 생식기 감염 등의 위험에 처한다.

 

유엔인구기금에서는 월경 중 여성과 소녀의 보편적 인권 목록으로 ‘인간 존엄성의 권리’, ‘건강과 복지 표준의 권리’, ‘교육의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차별금지 및 남녀 평등의 권리’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권목록은 한국 사회에서 지켜지고 있는가? 아울러 국가는 월경을 보편적 권리로서 인정하고 정책을 수립하고 책임지고 있는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는 참담한 자기 미래를 꿈에서 만난 후 뜨겁게 반성하며 변신한다. 스크루지가 잠에서 깨어 세상을 고쳐 살았던 것처럼 참된 빛의 탄생을 경축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여성 노숙인,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여성의 월경을 존엄하게 관리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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