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고 금방 지나가 우리는 금세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대부분의 연말과 새해를 영국에서 혼자 보내는 필자는 운좋게도 이번 연말을 영국인 친구와 보내면서 영국의 크리스마스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널리 기념 되는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면 길가와 집 안에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지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인 유럽의 크리스마스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급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점점 다가오면서 10월이 끝나갈 때쯤이면 영국에선 핼러윈을 기념하는데 핼러윈의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이들이 유령 또는 여러 캐릭터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이웃집을 돌며 사탕을 받아 간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주로 분장하고 파티를 하기도 한다.
핼러윈이 끝나고 11월에 돌입하면 영국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를 한다. 사람마다 얼마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집을 꾸미기 시작하는 시기도 다르다. 그러다가 12월이 되면 ‘어드벤트 캘린더’라 불리는 강림절 달력을 열기 시작한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크리스마스 당일 전날인 12월1일부터 24일까지 기재돼 있는 달력으로 보통은 각각의 날짜에 맞춰 열어 볼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들어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오는 날까지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사람들은 24일동안 매일 하나씩 그날의 선물을 열어본다.
이러한 이유로 11월 즈음부터 슈퍼마켓에 가면 과자와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가 진열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말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면서 영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연극을 준비, 부모를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이 되면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집 안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영국에서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고유의 다른 전통이 있다. 가족보다는 연인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대부분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는 어차피 외출해 봤자 문을 연 가게도 없기 때문이다. ‘멀드 와인’이라고 불리는 따뜻하고 크리스마스 향이 나는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장작불을 지피는 집도 있어 이 시기에 밖을 돌아다니면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국 사람들도 눈이 오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소원하지만(런던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대부분 먹통이 되는 터라 막상 눈이 오면 사람들이 불평하는 영국스러운 정서도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렇게 보내고 25일이 되는 밤 12시에 맞춰 각자 선물을 하나씩 뜯어보고 잠에 든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트리 밑에 놔둔 선물을 열어 보고 서로에게 사랑을 담아 써준 카드를 읽는다. 그러고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긴다. 이때 식탁에 오르는 영국만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으로 칠면조, 크랜베리 잼, 그레이비, 그리고 브러셀스프라우트라 불리는 작은 양배추와 감자, 당근 등을 먹는다.
만찬을 즐기고 나면 영국의 전통 푸딩인 크리스마스 푸딩을 먹는데 이 푸딩은 먹기 전에 도수가 높은 술을 위에 붓고 불을 붙인 다음 그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다 크림을 부어 먹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렇게 영국인들에게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매우 가족적인 행사다.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만찬을 위해 음식 준비도 많이 해야 해 피곤한 날이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진심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하고 1년 동안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진정한 명절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후회 없는 새해를 보내리라 다짐했던 더없이 따뜻한 성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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