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언제나처럼 누구나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때다. 연말이 됐을 때 연초에 세운 계획이 나름대로 잘 실천됐다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생사나 사회사를 돌이켜보면, 일반인들에게 모든 일이 실제 계획대로 진행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누구나 연초에는 용머리를 그리겠다고 의지를 불태우지만, 연말이 되어 살펴보면 용머리는 온데간데없이 뱀 꼬리만 남아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계획은 창대했으나 실천 결과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계획에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과도한 자책감에 괴로워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또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필부에게는 계획 있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과 실천 사이의 차이가 개인이 아닌 정부나 정당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계획과 실천 사이의 간극은 그 이상의 신뢰의 위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각 정당은 국민통합, 한반도 평화, 경제 성장, 국운 융성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창대한 결실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이념 갈등, 지역 갈등, 계층 갈등에서 시작된 우리 사회의 갈등이 다문화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으로 갈등의 층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있는 이른바 복합갈등의 시대이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인데, 시원한 해결이 무망하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갈등을 어루만지며 통합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은 그들 스스로가 오늘도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아마도 내일이 된다고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말로는 국민통합을 외치면서도 국민을 편 가르고 당 짓기를 반복한다. 팬덤은 결코 민주주의의 양념일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원칙이지만, 팬덤은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기는커녕 마치 적과 동일시하는 곳에서 타협의 예술은 꽃피울 수 없다. 타협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변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통합, 평화, 정의, 민주주의는 그 의미와 함께 이미 말 자체가 아름답다. 그래서 정치인은 이러한 용어를 입에 달고 산다. 부모가 자녀에게 참된 인간이 되라고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지만, 자녀를 참된 인간이 되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만큼 말보다 행동, 계획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은 통합과 평화와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필부와는 달리 계획보다 실천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새해가 지난해와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통합되고 평화로우며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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