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우리는 무엇에 갈증을 느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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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종 경기대 행정복지상담대학원장

엊그제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한 개인의 삶 또는 일상에 대한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청하는 내내 몰입하게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무엇이 우리를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너무 무덤덤했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버라이어티하지도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反轉) 또는 어떤 특별한 사건을 통한 긴장감도 없다. 누구에게서나 또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진짜 일상 속의 이야기를 평범하게 풀어내고 있다. 프로그램의 이런 매력이 우리의 시선뿐만 아니라 관심(마음)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일상, 아니 아침 출근길 15분만 묘사해 보자. 자명종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일어나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뛰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중삼중 주차돼 있는 차를 헐크가 돼 민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지친다. 게다가 이중 주차된 차의 사이드브레이크가 걸려 있고 전화는 받지 않는다. 수차례 시도 끝에 차 주인이 내려와서 차를 빼준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긴장과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15분짜리 드라마! 어떤 드라마도 이보다 스펙터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화면 속의 드라마는 허구이고 가상이지만 방금 경험한 출근길 드라마(?)는 나에게 닥친 현실로서의 긴장이고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드라마를 하루 종일 경험하는 현대인은 위에서 언급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의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자 할 것이다.

 

그럼 과연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 등을 통해 현실에서의 긴장감이 해소되고 지친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까? 메스트로비치는 그의 저서 ‘탈감정사회’에서 현대인은 자본주의의 다양한 문화장치(미디어)에 의해 제조된 가짜 감정을 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탈감정사회에서 감정은 나로부터 만들어지고 체현(體現)된 직접적인 감정이 아니라 감정 제조산업으로부터 생산된 감정을 재연(再演)하고 소비할 뿐이라고 한다. 이 같은 탈감정사회에서 우리는 제조된 외재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본래적이고 내재적인 감정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마 우리가 이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소비재로서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있는 감정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프로그램 출연자의 평범한 경험에 우리의 감정을 이입하고 또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누군가와 감정을 동일시할 수 있는 기회가 결여된 현대인이 느끼는 공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우리 사회가 함께 웃고 울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고 아파도 하는 공동체적 공감(共感)이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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