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초원의 건기는 모든 동물에게 시련이다. 비가 내리지 않고 초목이 자라지 않아 초식 동물이 이동한다. 초식 동물을 먹고 사는 육식 동물도 생존을 위해 이동한다.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자 무리. 어린 사자가 무리에서 뒤처지기 시작한다. 굶주림에 지쳐 무리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어미 사자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지만 결국은 돌아선다. 어미에겐 돌봐야 할 다른 어린 사자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일본에서 ‘플랜 75’ 영화를 개봉했다. 영화는 동물 세계의 건기처럼, 경제적 이유로 고령자에게 죽음을 권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버림받은 사자와 같다. 의료비, 사회보장비 증가,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경기 악화 등으로 75세 이상은 죽어야 한다. 공무원은 공원의 노인에게 따뜻한 스프를 대접하며 죽음을 권한다. TV에서 ‘태어날 때는 선택할 수 없지만,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광고가 나온다. 죽음을 권하는 사회다.
플랜 75에 따라 죽음을 결심한 노인에게 콜 센터에서 전화를 한다. 상담직원은 고령자가 하고 싶은 말을 듣는다. 정부는 위로금으로 10만 엔을 주고 노인은 온천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처음부터 플랜 75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에 큰 반발 없이 순응하는 일본의 ‘공기를 읽는 문화’가 인간의 존엄을 말살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일본만 해당 될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65세 이상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라는 질문에 26%가 그렇다고 했다. 건강과 경제 상태가 나쁜 노인일수록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높았다. 고독사를 우려한다는 비율도 23.6%에 달했다. 83.1%는 존엄사를 찬성하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한다고 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 절망하는 대한민국 노인의 현주소가 아닐까.
정부의 요양병원 정책은 어떤가. 동물 세계의 경제 논리를 따르는가. 아니면 고령자의 인권과 건강할 권리, 치료받을 권리를 인정하는가.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경우, 간병비 부담이 크다. 대국민 설문 조사에서도 간병비 제도화를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정부의 요양병원 간병비 정책은 유지기 재활 기능의 요양병원만 우선 적용한다고 한다. 요양 병원만 적용되는 본인부담 상한금 인상도 고령자의 인권보다 경제 논리가 우선한 정책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이 나타난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나이든 사람이 일할 곳은 제한적이다. 은퇴 후 여생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대비해야 한다. 부양 대상자로서 노인이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치료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 플랜 75와 같은 사회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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