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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 꽃
오피니언 시가있는 아침

[詩가 있는 아침] 꽃

산길에서 마주친

꽃 한 송이

 

먼 허공을 끌고 온 나와

깊은 지층을 끌고 온 꽃이

이렇게 마주치는 건

신조차 몰랐을 일

 

어쩌면 우리의 뿌리가 같았을 것

발바닥의 실금이 그 증거

갈라지다 만 뿌리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끝내 주저앉게 만든다는

 

꽃의 귀는 벌의 붕붕 소리에 팔랑이고

내 발은 땅을 오래 믿는다

 

꽃은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내밀고

 

꽃도 뒤돌아보았을까

 

뿌리를 거슬러 반추했을까

 

신열을 앓고 있는

자줏빛 꽃봉오리,

마그마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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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시인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한국민예총 수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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