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마주친
꽃 한 송이
먼 허공을 끌고 온 나와
깊은 지층을 끌고 온 꽃이
이렇게 마주치는 건
신조차 몰랐을 일
어쩌면 우리의 뿌리가 같았을 것
발바닥의 실금이 그 증거
갈라지다 만 뿌리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끝내 주저앉게 만든다는
꽃의 귀는 벌의 붕붕 소리에 팔랑이고
내 발은 땅을 오래 믿는다
꽃은 매일매일 다른 얼굴을 내밀고
꽃도 뒤돌아보았을까
뿌리를 거슬러 반추했을까
신열을 앓고 있는
자줏빛 꽃봉오리,
마그마 같은 것
박설희 시인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한국민예총 수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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