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이제 ‘제2의 르네상스’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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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종 경기대 행정복지상담대학원장

지난 주말 미세먼지는 심했지만 날씨는 무척 따뜻했다. 그러고 보니 21일이 춘분이었다. 벌써 4월이구나! 이걸 인식하고 나서야 봄도 온 것 같고 산책하는 길가의 꽃도 보인다. 지난 칼럼에서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한 글이 부끄럽다. 춘분 아니면 4월 등의 단어를 가지고 ‘머리로 생각하는 봄’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가슴이 먼저 느끼는 그런 봄’을 발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어디 계절뿐인가? 시간도 마찬가지다. 엘리아스의 지적처럼 삶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만든 시간(die Zeit)에 우리 스스로 억압(Selbst Zwang)되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시간이 우리를 컨트롤한다. 또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은 (나와는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룰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기보다는 외부에서 정해진 어떤 기준에 의해 살아가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를 지배하는 기준(rule)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룰의 실체가 있긴 한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피조물(허상)에 우리 스스로 순종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은 필자에게 15세기 전후 유럽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복고 또는 부활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Renaissance)는 중세 기독교의 신 중심의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였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 회귀하고자 한 운동이다. 르네상스를 문화적 사조로 보든 아니면 역사 속의 한 시대(예를 들면 중세의 종말)로 인식하든 당시 이 운동의 핵심은 신본주의적(神本主義的) 세계관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벗어나 인본주의를 복원함으로써 야만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신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했는가? 소위 ‘주술로부터 탈출’(Entzauberung)한 현대인은 또 다른 마법에 걸린 것 아닌가? 우리 현대인이 그토록 믿는 합리적 이성은 단지 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는 ‘제2의 르네상스’를 시작해야 한다. 15세기 르네상스가 신과 주술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면 지금의 르네상스는 제도(System)로부터 벗어나 인간 삶(Lebenswelt)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운동이다. 또 과거의 르네상스가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도구적 이성을 필요로 했다면 제2의 르네상스는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중요시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성찰적 이성의 실천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바람을 타고 봄의 상큼함이 밀려온다. 봄꽃 내음처럼 제2의 르네상스 물결이 우리 사회에 번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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