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정당 현수막, 프리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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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보이는 게 있다. 바로 각 정당이 내건 현수막들이다. 현수막의 내용은 단순명료하다. 상대 정당이나 인물을 비하하거나, 특정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루하루 생계에 쫓겨사는 국민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끌어보고자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기본이다. 여기에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얼굴과 이름까지 붙여 홍보에 열을 올리는 건 덤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게 있다. 보통의 현수막은 지정게시대에 부착되는데, 정당 현수막은 사람이나 차량이 자주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난 2022년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전만 해도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장의 허가하에 정해진 기간 동안 오직 지정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게시 기간이 지나거나, 지정게시대가 아닌 곳에 내건 정당현수막은 지자체에서 일괄수거해 폐기처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국회는 정당활동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반발했고, 급기야 지자체장 허가 없이 어디든 정당 현수막을 내걸수 있도록 법 자체를 바꿔 버렸다. 국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이토록 가혹하다. 뒤늦게 행안부에서 시행령을 통해 게시 기간을 15일로 제한하긴 했지만 정치권은 15일마다 새로운 현수막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사실상 무제한 권리를 행사 중이다.

 

문득 정치권의 현수막만큼이나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게 떠오른다. 유흥가 길바닥에 흩뿌려진 각종 불법업소 홍보전단이 그것이다. 굳이 둘의 차이를 찾자면 전자는 합법이고 후자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을 상대로 일방적 주장이나 정제되지 않은 정보를 강요하고, 거리의 미관을 해치며, 때론 행인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인다.

 

소상공인들은 식당 오픈을 홍보하기 위한 현수막 하나 내거는 것도 쉽지 않다. 각종 규제에 치이면서도 그래도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이를 감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소위 나랏일 한다는 정치인들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현수막 프리패스’의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생계와 정치인들의 표현의 자유, 굳이 이 둘을 비교형량한다면 무엇이 더 중요할까? 민초들의 생계를 돌보는 건 정치인들의 가장 큰 덕목임에도 왠지 그들의 정치에는 국민은 없고 오로지 정쟁(政爭)만 있는 듯하다. 환영받지 못하는 그들의 현수막, 과연 그 운명은 어찌 될지,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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