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여행은 시인의 산책길처럼 사색적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종적 삶보다 좌우를 여유롭게 보는 횡적 삶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획득한다.
섬진강 길 옆 천은사 일주문엔 조선의 명필 이광사가 쓴 현판이 휘황했고, 탁한 마음을 담가 본 초록빛 물소리도 청량했다.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의 위용과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의 풍정도 오르고 싶은 멋진 정취다.
순천의 꼬막 정식과 짱뚱어탕, 장흥의 한우 육회, 해남의 장어탕, 보성의 녹차 맛, 목포의 홍어 정식 또한 잊지 못할 남도의 맛이다. 웅건한 수필의 힘 청춘 예찬, 신록 예찬의 추억과 동행한 싱그러운 봄 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영랑의 모란꽃밭을 지나친 후 미황사 가는 길목 월송리에서 머물렀다.
라일락다방, 부흥다방이란 간판과 목적을 잃은 월송자동차여객터미널이라는 거창한 간판이 걸린 삼거리 상회도 정겨운 풍경이다. 다시 미황사 노을을 보려고 모퉁이를 돌 때 이 근대적 낡은 건물을 발견했다. 남도의 청보리 바람이 스쳐 가는 길, 황량한 서정은 기억 창고를 아련히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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