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한가득’ 옥외대피소…‘지진 피해 양산’ 우려 [현장, 그곳&]

대피소 가는 길도 주차차량 ‘빼곡’... 지진 발생 시 동선 막아 피해 우려
행안부 “지자체에 관리 강화 공문”

15일 오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부부로주차장에 설치된 ‘지진 옥외대피장소’ 안내판 너머로 차량들이 가득 주차돼 있다. 김기현기자

 

“지진 대피공간이 차량으로 가득한데, 안전이 보장되긴 하는 건가요?”

 

15일 오후 2시께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부부로주차장. 출입구 앞에 다다르자 좌측에 세워진 노란색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지진 옥외대피장소(Emergency Assembly Area)’라는 제목의 안내판에는 ‘이곳은 지진 발생에 대비해 지정된 긴급 대피장소입니다’라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안내판이 무색하게도 주차장은 이미 주차된 차량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날 목격한 차량만 자그마치 141대.

 

지진 발생 시 짧은 시간에 다수의 주민이 몰리는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피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특히 이곳 바로 앞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영유료주차장에도 일렬 주차된 차량 26대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옥외대피장소를 오가는데 불편이 빚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고모씨(23·여)는 “차량들로 가득한 이곳이 옥외대피장소라는 게 놀랍다”며 “충격으로 차량이 밀리기라도 하면 더 많은 피해를 낳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날 수원특례시 영통구 원천동 꿈틀이어린이공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 역시 옥외대피장소로 운영되고 있으나 사방이 불법 주·정차 차량 21대로 가로막혀 있었다.

 

때마침 이 일대를 배회하던 회색 승용차 한 대가 보란 듯이 옥외대피장소 안내판 바로 앞에 주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다.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신모씨(27)는 “한국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지 않느냐”며 “미리 대비해도 모자를 판에 지진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한참 저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15일 오후 ‘지진 옥외대피장소’로 운영되고 있는 수원특례시 영통구 원천동 소재 꿈틀이어린이공원 출입구 주변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즐비해 있다. 김기현기자

 

최근 강원 동해 인근 해역에서 규모 4.5 지진이 발생하는 등 국내 지진 위험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옥외대피장소 안전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행정안전부와 경기도내 일부 지자체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 지진은 2020년 68건, 2021년 70건, 지난해 77건으로 매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해(지난달 말 기준) 들어서도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서 규모 2.0 이상 지진이 36차례나 이어졌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지진 발생 초기 충격으로 파손되는 구조물과 낙하물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진 옥외대피장소’를 운영 중이다.

 

지난 12일 기준 전국 옥외대피장소는 총 1만1천158개소로, 이 중 도에는 1천884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각 지자체는 지진·화산재해대책법을 근거로 두는 행정안전부 ‘지진 옥외대피장소 지정 및 관리지침’에 따라 운동장, 공원 등을 옥외대피장소로 선정·관리하고 있다.

 

지자체장은 인구밀도,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지침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나 ▲규모 적정성 ▲시설 접근성 ▲고층건물 이격거리 ▲대피가능인원 등을 최대한 고려해 지정해야 한다.

 

문제는 주차장이 옥외대피장소로 지정돼 있는가 하면 일부 옥외대피장소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접근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는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충격으로 밀리는 차량에 의한 사고는 물론 동선 부족으로 피해가 양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식 우석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지진 발생 시 옥외대피장소 안팎에 주차된 차량이 더 큰 피해를 부를 수 있다”며 “지진 위험이 지속 증가하고 있는 만큼 행정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 공문을 하달해 옥외대피장소를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보다 안전한 옥외대피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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