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설치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급속충전기를 설치해야지, 완속충전기를 왜 이리 많이 설치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19일 오후 2시께 성남시 수정구청 내 주차장. 줄줄이 늘어선 전기차 충전기 13개 중 급속충전기(50㎾)는 단 1개 뿐이었다. 이마저도 차량 1대가 사용 중이라 충전은 불가능했다. 반면 완속충전기(7㎾)는 12개 중 단 2개만 이용되고 있었고, 이용 중인 차량 2대는 모두 관용차량이었다.
급속충전기를 찾아 주차장을 돌다 결국 발길을 돌린 이모씨(26)는 “구청에 민원업무를 처리하러 오가는 시간 잠깐이라도 충전을 하려고 공공기관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게 한 것 아니냐”며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누가 완속충전기를 이용하겠냐”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비슷한 시각 수원특례시 경기남부보훈지청 상황도 마찬가지. 이곳에는 급속충전기가 아예 설치돼 있지 않고, 완속충전기만 2개가 설치돼 있다. 한참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동안 완속충전기를 이용하는 시민은 단 1명도 없었다.
전기차주 한모씨(50대)는 “공공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완속충전기가 주로 설치돼 있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실용성이 떨어지는데, 수는 계속 늘어나니 이상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내 공공기관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10대 중 6대 이상이 완속충전기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안이 도입되면서 공공기관·시설 내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공공기관 등이 예산을 이유로 저렴한 완속충전기를 주로 설치하면서 면피용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관련 법 등에 따르면 공공건물과 공중이용시설, 공동주택 등은 전기차 충전 전용 주차 공간과 충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신축시설은 총 주차대수의 5% 이상, 지난해 1월28일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기축시설은 2% 이상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기축건물 가운데 공공기관은 1년, 공중이용시설은 2년, 아파트는 3년 등의 유예기관을 둔 만큼 올해 1월28일까지는 모든 공공기관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도내 공공기관에 설치된 충전시설 2천205개 중 60.5%에 달하는 1천334대가 완속충전기로 나타났다. 완속충전기는 64㎾ 전기차를 기준으로 완충까지 최소 9시간 이상이 걸린다. 반면 50~100㎾ 급속충전기는 최소 40분만에 완전 충전이 가능하다.
이 같은 상황에도 수정구청은 올해 4월 완속충전기 4개를 추가로 구매해 설치하면서 모두 완속충전기를 구매했고, 경기남부보훈지청 역시 유예기간 종료를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 충전기 2개를 모두 완속으로 설치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사실상 관련 법 저촉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완속충전기를 주로 설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으로 급속충전기를 더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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