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과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 차이

한민주 영국 유학생∙미술사 전공

타국에 거주하다 보면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자국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 또한 유학생으로서 런던의 일상을 살아가며 영국의 다양한 국가적 특성을 발견하곤 한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영국과 한국은 다방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런던의 일상생활에서 고국과의 차이를 가장 쉽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인데, 바로 ‘장애인의 이동권’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가 영국에서 살기 시작하며 바로 인식한 색다른 풍경은 밖에 나가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었다. 고국에서 살 때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것은 영국에 훨씬 더 많은 수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장애인이 집 밖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영국 내에서도 특히 런던의 모든 대중교통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런던 밖을 벗어나면 모든 시설이 그렇지는 않지만 전국 대부분이 그렇다. 학생인 필자는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런던에서 외출을 하면 하루에 최소 한 번 이상은 휠체어를 탄 사람의 대중교통 이용을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버스는 장애인 접근성이 98%라고 한다. 모든 지하철과 시내·시외버스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자리가 백프로 마련돼 있어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일상을 영위한다는 점이 런던 생활 초기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시설만이 잘 돼 있는 것이 아니라 교통약자가 이러한 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심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잘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된 요소들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친한 친구의 어머니를 보며 더 많이 인식하게 됐다. 친구 어머니는 버스를 자주 이용하시는데 버스기사들은 그가 안전하게 탑승해 자리에 제대로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린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이러한 풍경이 전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영국 일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돼 있어도 이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실제로 본 적이거의  없었고 한두 번 목격했을 때는 주변의 시선이 긍정적이지 못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타기 위해 소비되는 1, 2분의 기다림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어쩌다 한 번 겪어야 하는 ‘불편함’ 정도로 인식되는 느낌이다. 

 

비장애인인 나조차 그 상황이 상당히 불편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리 기술적인 접근성이 발전했어도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이 무슨 소용인가?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보기 드문 것이 별로 놀랍지 않은 현상이다.

 

필자 생각에 현재 한국은 안타깝게도 평등한 사회를 위해 약자들의 권리를 고려하기보다는 기득권과 비장애인들의 편의가 당연시되는 사회인 것 같다. 우리나라는 전쟁 직후부터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빠른 경제성장만을 중요시했으므로 개개인과 약자를 위한 권리의 중요성에 주목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은 그들의 국민성이 원래 남을 배려하거나 월등해서가 아니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인권운동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이 이동권을 위해 지금처럼 ‘투쟁’하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전 국민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회의 일원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중요한 사실에 아직 크게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투쟁이 혐오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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