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생인 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거쳐 공과대학을 나왔다. 1999년 대학에 들어가 바로 변리사 시험을 치르는 등 ‘사회에 나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준비만 했을뿐 ‘사회 그 자체’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2학년이던 시절에 당선된 학생회장이 당시 ‘최초의 비운동권’이라는 것이 화제가 됐고, 축제 때 더 이상 민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나 밴드가 오지 않게 됐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존 롤스의 ‘정의론’ 등을 접할 기회도 없었고 접할 이유도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내가 40대가 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많은 발명가와 사업가를 만나는 변리사 업무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사업이 더 잘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언론과 정치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못하면 나라는 후진국이 됨을 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우리 스스로의 ‘철학’을 갖지 못한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달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멘토들로부터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했던 나에게 ‘시대정신’은 멋지긴 하지만 추상적인 단어였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정신적 경향이라고 한다. 국가를 이루는 사회 구성원들 중 80% 이상이 공감하는 정신이 바로 시대정신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0년대부터의 건국 세대들은 “대한독립만세”, 1960년대부터의 산업화 세대들은 “잘 살아 보세”, 1980년대부터의 민주화 세대들은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치며 우리나라를 만들어 왔다. 짧지만 명확한 표어들은 시대정신을 그대로 담아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국민들은 하나가 돼 사회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갖고 있을까?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생각을 모아 발전적인 시대정신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건국, 산업화, 민주화라는 큰 산을 세 번이나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그래야 함께 행복할 수 있고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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