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장마철인 7월 강수량이 전국 평균 178.4㎜로 평년 전국 평균(296.5㎜)과 비교해 120㎜가량 적게 나타났다. 그런데도 장마 피해는 엄청났다. 장마와 태풍이 8월과 9월까지 이어지면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 큰 피해를 안겼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강남에 시간당 116㎜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반지하주택이 침수되면서 장애인 가족 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장마지만 항상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와 저지대 가옥 침수, 도로유실, 산사태, 공사장 붕괴 등 많은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장마 대비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매년 반복된다. 문제는 올해 장마도 역대급일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적으로 폭우가 집중하고 엘니뇨 현상으로 강수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이제 기상이변은 이변이 아니라 일상적인 현상이 됐다. 장마철에 비가 안 오거나 장마철이 아닌데 비가 쏟아지는 일은 더 이상 이변 축에도 못 낀다. 기후변화는 재해 발생의 규모와 빈도를 증가시키고, 이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도 가중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기후변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재해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배수관로 등 도시의 기반시설은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 시설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 패턴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관련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며, 그중 재난 기반시설 확충과 안전성 강화가 절실하다. 이에 정부는 이상기후로 빈발하는 홍수와 도시 침수에 대비해 대심도 빗물터널과 지하방수로 등 파격적인 홍수 방지용 기반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 기반시설 확충과 안전성 강화 시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설계기준이다. 대부분의 재난 기반시설은 과거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설계기준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댐의 경우 기상자료에 기초한 모든 악조건을 고려한 가능 최대 홍수량을 기준으로 규모를 설정한다. 실제로 영국은 북해 쪽 해수면의 상승으로 수위가 높아진 바닷물이 템스강을 타고 올라와 런던시내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템스 배리어(Thames Barrier)의 설계기준을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연평균 1.8㎜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8㎜로 변경한 바 있다.
그러나 재난 기반시설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지는 설계기준 강화 시 항상 따라붙는 것은 과대 설계로 인한 경제성 논란이다. 기후변화에 의한 홍수 등 이상기후는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 설계기준 강화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딜레마에 봉착하곤 한다. 재난 기반시설의 확충과 안전성 강화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과소보다는 과대가 낫다.
여름 장마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난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보완되지 않는다면 이번 장마도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늦기 전에 장마로 인한 폭우 등 기후변화를 고려한 재난 기반시설 확충과 안전성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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