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관련법 준수 요청하지만 공염불 인사 적체 해소에 수십년째 이어진 관행 사서직 사기 저하·소외감 부를 수 있어
경기도 공공도서관 절반 이상이 장(長)으로 '사서직'이 아닌 '행정직'을 임명, 도서관법을 위반하고 있다.
10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991년 이후 도서관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운영을 총괄하는 관장에는 사서직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사서직은 도서관 및 자료실, 정보기관에서 문헌을 수집·정리·보관하는 전문 직종을 말한다.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다시 반납을 받는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도서관 운영과 도서관 업무에 관한 제도의 조사 연구 등도 한다.
사서직 공무원은 국가직, 지방직, 군무원 등으로 채용되는데 국가직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지방직은 지방자치단체 운영 도서관, 군무원은 군부대 내에 있는 도서관이나 자료실에서 사서로서 업무를 수행한다. 지방공무원임용령상 사서직은 행정직, 기술직, 농업직 등 공무원 직렬의 하나다.
■ 도내 공공도서관, 51.1% 비사서직 관장…전문성 부족 지적
그러나 경기일보가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 2022년 공공도서관 통계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도내 공공도서관 297곳 가운데 152곳(51.1%)에서 사서직이 아닌 다른 직렬의 공무원이 관장을 맡고 있었다.
포천시는 가산도서관 등 8곳의 공공도서관을 운영 중이지만, 교육청이 운영하는 경기포천교육도서관을 제외한 지자체 운영 공공도서관 7곳은 관장 중 단 한명도 사서직이 없는 실정이다.
의왕시도 포일 어울림도서관 등 공공도서관 4곳 모두 비사서직 관장을 발령내 운영 중이다. 의왕시의 경우, 의료기술직 공무원이 도서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양평군과 이천시에서는 농업직과 공업직 출신이 공공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는 등 도내 31개 시·군 대부분이 도서관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공공도서관 관장이 ‘사서 자격증’마저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도내 비사서직 관장 152명 가운데, 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 관장은 12명(7.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도서관장을 비(非)사서들이 맡게 될 경우 운영 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정문 한국도서관협회 정책기획팀장은 "공공도서관 운영의 취지와 목적을 생각하면 문헌정보학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도서관서비스의 목적과 임무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서가 관장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사서직 관장의 우수한 사업성 관련 연구결과들에서도 사서직 관장 보임을 강제한 현 '도서관법'의 당위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기를” 사서들 불만 속출
경기도내 공공도서관 둘 중 한 곳이 사서가 아닌 관장을 임명, 이는 공무원의 인사 적체를 풀기 위한 것이라는 내부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한 지자체의 사서직 공무원 A씨는 "도서관 서비스 활성화나 프로그램 개발 등 도서관 발전을 위해 일하는 행정직 관장은 보기 드물다"며 "관계법을 무시하면서 빚어지는 인사적체로 공직자 사기저하와 소외감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지자체의 사서직 공무원 B씨는 "보통 퇴직을 앞둔 분들이 오셔서 1년 반에서 2년 정도 쉬어가는 자리로 생각한다"며 "도서관 발전을 위해 관장으로 전문성 있는 분들이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도서관법을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자체 사무라는 이유에서 사서직 관장 임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도서관법상 비사서직 임명을 규정하고 있을 뿐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문화체육부 관계자는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하라는 등의 도서관법 준수 요청 공문을 각 지자체에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지자체를 보조하는 공모사업에서 지원기관을 선정할 때 법률 준수 여부에 따라 제약을 두겠다"고 전했다.
■ 수십년째 이어진 관행, 개선 없이 반복
이러한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인사 운영이라는 구조적·제도적 모순 때문이다.
이 중심에는 지자체의 조직 및 인사운영의 근거 중 하나인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이 있다.
10일 경기일보가 도내 31개 시·군의 조례 및 시행규칙 등을 확인한 결과, 30개 시·군(화성시 제외)에서 공공도서관장에 사서직이 아닌 행정, 기술 등 타 직렬 공무원의 임명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안양시 석수도서관과 평촌도서관의 경우, 지방사서사무관뿐 아니라 지방행정사무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정부와 포천, 안산 등 다른 지자체도 공공도서관장에 사서직이나 행정직 뿐만 아니라 토목, 건축 등 시설직이나 농업직이 도서관장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자치법규를 운영 중이다.
결국 지자체가 도서관법을 위반하는 내용의 자치법규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 ‘평생학습 시대’ 도서관 중요성 높아져, 전문가 필요
이에 따라 사서직 공무원뿐 아니라 도서관 전문가, 학계 등에서는 공공도서관장 임명에 도서관법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또 비사서직 공무원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사서직 관장이 근무할 경우, 우수한 사업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한국문헌정보학회지에 실린 ‘공공도서관장의 리더십 역량수준 측정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사서자격증 보유여부에 따른 공공도서관장 리더십 역량수준이 유의한 차이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5월 전국 지자체에 도서관법 준수요청(사서직 관장 임명 및 법정 사서배치) 공문을 보내는 등 수시로 사서직 관장 임명을 권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감사원도 과거(지난 2007년) 행정자치부(현 행안부)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에서 도내 27개 시·군에서 도서관법을 위반한 자치법규를 운영 중이라고 지적한 뒤 자치법규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도서관 발전 및 국민도서 진흥을 위한 전문인력 확보 목적으로 제정된 '도서관법'의 입법취지와 상이하게 공공도서관 관장 보직 직렬을 규정했다"며 "도서관 관장의 보직을 승진이 적체된 지방행정직 등의 인사관리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의 자치법규를 개정하고, 공공도서관의 관장 보직업무에 대한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 지자체 “비현실적인 법”…방안 모색해야
일선 지자체에서는 도서관법이 공직사회 전반적인 인사·조직 운영의 특수성이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사서직의 경우, 시·군 공무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적은데다 공공도서관장을 무조건 사저직에서 임명할 경우, 승진 인사시 직렬별 형평성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보통 9급으로 임용 후 15년에서 20년, 또는 그 이상의 근무기간을 거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는 현실에서 4~6급인 공공도서관장을 사서직으로만 임용할 경우, 다른 직렬보다 훨씬 더 빠른 승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군 인사 담당자들은 "작은도서관 관장 자리만 해도 보통 15년에서 20년 경력인 6급공무원이어야 가능하다"며 "지방자치단체의 특성상 인력 운영 어려움이 있어, 복수 직렬을 배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서관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지자체 인사·조직운영의 합리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김기헌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사서직 공무원이 도입된 지 20년 정도 밖에 안돼 도서관장을 할 정도의 직급이 높은 사서직이 모자랄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전문성을 지닌 사서를 외부에서 뽑는 경우가 많은데, 실질적인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자치단체장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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