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현수막 내걸렸던 자리는 시민 모두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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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겸임교수

사람들은 도시에 모여 산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 보니 공간을 둘러싼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욕망은 무릇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좀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우린 평생 사투를 벌인다. 그렇게 공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럴 때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다면 상대적 약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당할 것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할수록 양상은 폭력적으로 변해 갈 수도 있다. ‘법’은 그래서 필요하다. 법은 강자의 권력을 제한하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사회 정의와 인류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런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논란을 부르는 법이 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 해 12월 개정한 제8조제8호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에 의하면 정당의 현수막은 선거기간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기준을 갖춰 별도 허가 없이 15일 동안 자유로이 내걸 수 있다. 개수도 내용도 아무 제한이 없다. 알다시피 영세업자들이나 일반시민들은 돈을 내고 지정된 게시대에만 현수막을 걸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철거를 당할 뿐 아니라 과태료까지 문다. 이를 정당에만 예외를 둬 허락한 것이다. 같은 ‘정당’ 소속이라도 현직 당원협의회 위원장이거나 국회의원이 아니면 걸 수 없는 대목도 시빗거리다. 여러모로 불평등해 보인다. 전형적인 강자를 위한 법이라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 법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측은 현역 국회의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재석의원 227명 중 204명 찬성). 그것도 수십, 수백건의 민생법안은 뒤로 미뤄둔 채 말이다. 그런 일명 ‘현수막법’의 병폐를 지적하며 인천시가 실력 행사에 나섰다. 관련 조례를 개정해 정당 현수막을 4개 이하로 제한하고 혐오 비방의 내용을 담지 못하게 했다. 지난 7월부터 이를 위반하는 현수막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내 풍경은 한결 말끔해졌다. 시민들의 호응도 크고 언론도 호평일색이다. 권력자들에게 빼앗겼던 시민들의 ‘공간’을 되찾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안부는 인천시가 상위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조례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반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옥외광고물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가 강자 편을 들고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선 형국이다. 현수막이 차지했던 자리는 시민 모두의 공간이다. 어느 하나가 독점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사법기관의 결정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의 결론에 촉각이 곤두서는 이유다. ‘부패한 사회에는 쓸데없이 많은 법이 있다.’ 21대 국회가 새겨들어야 할 석학 새뮤얼 존슨의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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