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민간인 고엽제 피해 지원, 이젠 정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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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파주시장

2023년 9월8일 ‘파주시 고엽제후유증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지난 5월8일 파주시가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이후 4개월 만이다.

 

이로써 국내 최초의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며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이 내년 1월부터 시작된다. 57년간 고엽제로 인한 질병에 시달려 왔지만 제대로 된 보상도, 피해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한을 풀게 된 것이다.

 

그간 고엽제 피해자 지원은 군인과 군무원에게만 한정돼 있었다. 국내 유일의 비무장지대(DMZ) 내 마을인 대성동 마을 주민들도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 받을 길이 없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로 피해를 입었는지조차 조사된 적이 없었다.

 

파주시에서 조례 제정을 위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놀라웠고 또 참담했다. 고엽제가 뿌려진 1967년 10월9일부터 1971년 12월31일까지 대성동 마을에 거주했던 주민 60명을 조사한 결과 무려 85%인 51명이 고엽제로 인한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중 22명은 당뇨병, 뇌경색, 파킨슨병 등을 앓고 있는 중증 질환자였다. 또 당시 거주민 중 이미 사망한 39명이 앓던 질병을 조사한 결과 78%가 고엽제로 인한 질환으로 고통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가 직접 조성한 마을 전체가 국가에 의해 시행된 고엽제 살포로 피해를 입었는데도 민간인만 피해 지원에서 제외된 결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의 증언이 이어지고 실태조사를 진행할수록 안타까움이 더해 갔다. 조금만 더 빨리 지원이 이뤄졌다면, 조금만 더 세세히 살피고 챙겼더라면 그간 국가로부터 외면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더 빨리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조례가 제정됐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는 분단과 냉전이 낳은 역사적 희생자이자 아무런 경고 없이 위험 물질에 국민을 노출시킨 국가의 과오다. 국가가 이들 희생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들이 입은 피해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살피고 챙기는가가 주권자인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고 했을 때,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법령 개정을 통해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파주시뿐만 아니라 경기도내 다른 시·군에도, 또 강원도에도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인 파주시가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물꼬를 텄으니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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